어제 밤늦게 들어온 남편이 갑자기 화를 냈다.
사람이 들어왔으면 아는 체 좀 해라.
책읽고 있느라 들어온 지 몰랐어.
그게 말이냐?
그럼 소냐?
하여튼 넌.
하여튼 내가 뭐?
됐다. 말을 말자.
말을 누가 먼저 시작했는데.
책을 보다가도 사람이 들어오면..
발딱 일어나 인사하라고?
아니. 인사까진 아니더라도..
그럼 뭐 하라고. 인사 말고.
밥은 먹었냐든지..
어차피 먹었을 거자나.
내 말은 그러니까!
남편은 잠시 말을 멈추고 이런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괜히 건드렸다 ㄸㅂ.
조용히 욕실로 들어가려는 남편을 막아섰다.
어딜 가. 내가 지금 아는 체를 열심히 하려는데.
아니. 씻으러 들어가는 거잖아.
나만 놔두고 씻으러 들어가겠다고?
고마해라.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아까 나보고 뭐랬어.
내가 뭘?
위클리 글 쓴 거 이번주 1위 했다고 문자했더니 댓글조작. 순위조작 아니냐고?!!
아 그건.. 장난으로 그런 거자노..
.
.
.
고수는 그러하다.
어디서 말을 멈추고 언제 돌아서야 할 지를 안다.
나는 방으로 들어와 다시 조용히 책을 읽었다.
씻고 나온 남편은 조용히 설거지를 하고 조용히 집을 치운 뒤 조용히 빨래를 거둬 서랍 속에다 접어 넣고 조용히 자러 들어갔다. 그리고 아침에 이렇게 문자가 왔다.
진짜 농담이었어. 미안해.
그렇다. 고수는 상대의 죄책감을 자극하여 스스로의 잘못을 극대화 시킨다음 공손히 머리를 숙여 반성과 사과를 받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다.
나는 고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