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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미 Jan 25. 2020

나는 아직도 불쌍한 16살

어제. 밤 늦게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레바논 여행을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한 안도감과 터키라는 새로운 나라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오빠와 컵라면을 앞에 놓고 밤늦도록 수다를 떨었다.

근데 오빠야. 내하고 여행 오는 게 재밌나?
.
니가 만만해서 데꼬온다. 됐나?
.
만만하기로 따지면 애들 데려가면 되자나.
.
아 됐다. 라면이나 먹어라.
.
아직도 내가 불쌍해서 그러나?
.
니가 뭐가 불쌍.. 앗 뜨거! (컵라면 엎었.. ㄸㅂ)
.
.
.
중3 겨울 방학 때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아빠 없인 못 살 것 같았다. 그래서 엉뚱한 생각을 했다. 한밤중에 깊은 산 속에 들어가 귀신이라도 만나서 아빠를 돌려달라고 빌어보기로 말이다. 나이를 먹을만큼 먹었을 땐 데도 그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한 걸 보면 충격이 제법 컸던 거 같다.

손전등 하나 들고 한밤중에 구덕산을 기어 올라갔다.
하지만 소복이라도 붙잡고 늘어지려는 내가 귀신도 무서웠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무작정 한참을 헤매다 산을 내려왔다. 여기저기 산에서 긁힌 상처에 엄마가 아까쟁기(빨간약)를 발라주며 머리를 자꾸 쓰다듬어 주셨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방학 때 집에 내려온 오빠에게 그 이야기를 했고 그때 오빠가 참 많이 마음 아파했다고 전해 들었다. 막내동생이 아빠를 보내고 힘들어하는 모습이 쨘했던가 보다. 그래서 오빠는 아빠처럼 나를 항상 챙겨줬었다. 어쩌면 지금도 그때 그 철없던 열여섯 살짜리 동생을 데리고 여행을 다니는 건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생각했다.
단단하고 씩씩하게 잘 살아서 오빠 마음 쨘하게 만들지 말자. 아빠의 빈 자리는 그냥 또 그렇게 비워놓고 살면 되는 거라고 말이다. 암튼..
이번 여행에서 나는 내 안의 열여섯 살 그 친구를 잘 떠나보내고 돌아가고 싶다..
..........

작년에 쓴 글인데 앞 뒤 없이 올려보네요.

레바논을 거쳐 터키로 건너간 첫날밤. 친정오빠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던..^^

레바논과 터키 여행기는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올려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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