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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미 Apr 24. 2020

너무 늦은 건 아닐까

누군가로 부터 <여기 들어와도 좋아>라고 초대 받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특히나 이번 경우는 더더욱이나 그랬다. 우연한 기회에, 마음은 간절했으나 기대는 없이 응모했던 수업이었다. <될 리가 있나>였던 마음이 <될 수도 있어>로 바뀌었다가 <안 되면 어쩌지>라는 조바심의 시간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받게 된 고마운 소식이었다.
 
사실 나에겐 뭔가 새로운 계기가 필요했다. 늘 똑같은 일상에서 해가 뜨고 지듯 내 인생도 무한 반복 중이었다. 하고 싶은 게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많았던 나는 어느새 꿈 따위와는 멀어져 먹고 싶은 것만 밝히는 아줌마가 되어있었다.
글 쓰는 능력은 안 되어도 책 읽기는 좋아했고 시나리오 쓰는 재능은 없지만 좋은 영화들은 죄다 보고다니며 우리 나라 영화 발전에 조금이나마 돈을 보탰다. 하지만 그게 뭐. 그게 다였다. 인간에게 최대 거름이자 재산은 주어진 환경이라는데 나에게 주어진 환경은 거름이 아니라 그냥 똥으로 끝나가고 있었다.
 
늘어진 면티마냥 날강날강 낡아서는 편하고 익숙해서 뭐 달리 다른 것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루의 끝은 시원한 캔 맥주 한 잔을 때리며 <아~ 좋다!> 이렇게 자위했다. 그래 이 정도 살면 됐지 뭐. 세상 둘째가라면 서러울 별난 두 아들. 아니 남편까지 셋이구나. 키워내면서 지금까지 버티고 살아있는 것도 용한거야. 암 그렇고말고 이젠 좀 편하게 맥주도 두 캔이나 세 캔으로 늘려 마시고 잠도 두 세시간 더 자고 동네 아줌마들하고 어울려 등산도 다니고 토요일엔 브런치도 먹으러 다니자. 지금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너무 늦은거야. 너무 위험한거야. 그러는거 아니야. 이러며 나를 눌러앉혔다. 적당히 낙관주의자로 살아가자고.
그랬던 어느날. 날아가던 파리가 유리창에 <틱> 하고 부딪히듯 정말 우연히 그렇게 보게 된 글이었다. 
<이외수 선생님이 문학연수생을 뽑으신다네. 아. 그렇구나. 저런 것도 있구나. 하면 재밌겠네. 그렇긴 하겠지. 음.. 그런데 저녁은 뭘 먹지?>
 
이러고 집 밖을 나섰다. 그리고 나는 마트가 아닌 우리 동네 문구점에서 편지지와 봉투와 우표를 고르고 있었다. 그냥 사 보는 거지 뭐. 쓸 건 아니야. 사 놓고 안 하는 게, 안 사고 못하는 거 보다는 덜 억울하잖아. 그래서 사 두기만 하는 거라고. 그런데 이외수 선생님은 무슨 색의 편지지를 좋아 하시려나. 보라색은 너무 우울한가. 그래도 난 바이올렛 색이 참 좋아. 그래 이걸 사자. 봉투는 또 뭘로 사야하나? 지금 써서 부치면 늦지는 않겠지? 아.. 뭔대? 안 쓰기로 했잖아. 그냥 사기만 해. 잔잔한 너의 일상에 풍파를 만들지 마. 도대체 거기가 어디라고 겁도 없이 가겠다는 건대?
아 몰랑~~~~~~~~~~~~~~~
 
이렇게 나는 나와의 싸움 끝에 선생님께 보라색 편지 봉투를 기어이 보내고 말았다.
보라색 편지봉투는 생각지도 못한 이메일로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이 곳에 와도 된다고, 너를 정식으로 초대해 주겠다고. 그 이메일을 받고 한 동안 멍 하게 앉아 있었다. 뭐야 내가 지금 내 일상을 조금 비틀어 버렸잖아. 그렇다면 어떤 여파가 나에게 닥칠지 생각해야만 했다. 괜히 뭔가를 시작하겠다고 나에게 기대와 빌미를 주어서 근근히 적응하고 사는 나의 미친 근성을 건드린 건 아닐까. 이러다 정말 어제의 나와 결별을 하고 새로운 나를 찾아 휘딱 떠나버렸다가 쑥대머리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정말 며칠을 쑤욱~~~대에 머어~리가 되어 고민을 했다. 삶던 행주를 두 번이나 태워 먹었고 잠도 드문드문 설쳤으며 씻던 쌀이 씽크대 거름망 속에 얌전히 쌓여있기도 했다. 탈핵반전 시위를 한다고 일본까지 가서 천지를 휘졋고 돌아다니고 있는 남편에게 <나 어떡하지?> 물어본다고 뭐 현명한 답이 나올 거 같지도 않았다. 대학생인 큰아들은 영어과를 거쳐 기어이 일본어과로 전과를 한 다음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 미술 학원을 다니고있는.. 한 마디로 상담의 객체가 될 수 없는 놈이다. 둘째는 고3인데 지 코가 석자에다 패션디자인과에 가겠다고 옷만 열심히 사입고 사는 놈인지라 엄마의 고민을 새로나온 운동화 밑창으로도 여기지 않을 놈이고.
 
<그냥 해. 무조건 해. 아무 생각없이 막 하는거야.>
남편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 다운 조언을 했다. 옆에서 듣고있던 아들들이 거들었다.
<그냥 해. 우린 다 컸잖아. 엄마 인생 엄마가 알아서 막 살아.>
아들들 다운 조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조언이 나에게 얼마만큼의 힘이 되었다. 남편은 자기만 하고 싶은 거 하고 돈도 못 벌면서 이렇게 사는 게 나한테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니가 하고 싶은 거 하는 거 보고 살면 숨이 좀 쉬어지겠다고 했다. 입에 침을 발라가며 그렇게 입발린 소리를 해 주었다. 아들들 또한 엄마가 집에 있으나 없으나 거의 차이가 없다고 했다. 
암튼 뭐 그래서... 남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미약한 시작이지만 그냥 해 보기로 한 거다.
 
첫 날. 달리고 달려 이외수 선생님이 계시는 <모월당>에 도착해보니 나의 자리는 선생님의 코 밑. 제일 앞자리 그것도 정 중앙에 내 방석과 내 이름표가 똭~하니 놓여있었다. 그토록 존경하는 이외수 선생님의 콧구멍을 올려다보며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다니 이게 꿈이야 생시야. 이러며 그 감동의 수업을 졸지도 않고 내내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꿈만 같고 내일 생각해도 꿈만 같으리라.
인생은 저지르는 자의 것이라고 했다. 저질렀고 시작했으며 노력할 것이고 끝을 볼 것이다.
선생님이 말씀하시지 않으셨나 말이다.
 
<포기하지 말라. 절망의 이빨에 심장를 물어 뜯겨 본 자만이 희망을 사냥할 자격이 있다>고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절망을 접어둔 채 그냥 전진해 보기로 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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