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 시작 전, 감독님과 배우들이 무대 인사를 했다. 감독님의 말에 ‘가족‘에 대해서 생각하며 보고 싶었고 수연이를 연기한 김보민 배우는 수연이가 나쁘게 비칠 수도 있는 아이라고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먹먹한 마음이 들었다. 어른들 없이 수연, 선율만 남겨진 상황에서 이 둘이 보란 듯이 잘 살았으면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으로 영화가 펼쳐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현실보단 꿈과 환상적인 장면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대사가 떠올랐다. 이 드라마에서는 아래와 같은 대사가 나온다.
"너 법이 왜 미성년자를 보호하는 줄 알아?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야. 너 여기서 무슨 일에 휘말리는 상상 했어? 실제로 일어날 일이 네 상상의 범주 안에나 있을 것 같아? 전혀 아니야. 이런 데 오면 네 인생에 없어도 되는 일, 없어야 되는 일, 없는 게 훨씬 나은 일들이 생겨. 나쁜 일을 저지를 때 성인의 상상력과 미성년자의 상상력이 천지 차이라서..."
이 대사처럼 수연이가 선율이의 가족이 되고 싶었을 때 했던 생각의 상상력에는 나쁜 생각은 전혀 없었을 것 같다.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할머니와 살았던 수연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보호소에 들어갈 상황에 처한다. 어린아이가 보호자 없이 있을 때 얼마나 많은 위험한 일이 생기는지 직접적으로 보여주진 않아도 상황, 눈빛, 대사에서 알게끔 해줬다.
선율이가 혼자 집으로 가는 것을 보고 알았다. 부모가 심상치 않겠다고. 내가 일하는 가게 근처에 어린이집, 유치원이 있기 때문에 나는 많은 부모님, 조부모님이 아이들을 데리러 오고 가는 모습을 정말 많이 봤다. 영화 속에서도 부모님이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데 선율이는 혼자 집에 간다. 그 모습에서 나는 의심을 했다.
너무 잘 풀리는 거 같고 밝은 웃음을 지을 때 관객인 나는 너무 불안했다. 이상하다고 생각이 충분히 들 법도 한데 의심조차 하지 않는 수연이의 순수함, 아이이기 때문에 생각의 정도가 거기까지 인 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걱정됐다.
의문투성이, 보여주기식 입양의 허점. 그 어두운 면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수연은 자신을 보살펴 줄 어른을 원했지만 그 보호자가 사라지자 어린 선율의 보호하는 어른의 위치에 있게 된다. 수연 역시 13살밖에 안된 아이였는데 이 상황이 두 아이에게 너무나도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 선율이 그린 가족 그림에는 수연과 자신밖에 없다. 나는 그 그림이 기억에 남는다.
왜 기억에 남을까? 생각했을 때 선율이가 살았던 엄마, 아빠와의 기억보단 생판 처음 봤던 수연이가 더 든든하고 기억에 남았던 것이 아닐까. 그럼 이 아이는 그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다는 것일까를 짐작하면서 마음이 아팠다. 살아가면서 둘이 계속 의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이었다.
이 영화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매장 밖에서 키우고 있는 석류나무를 한 남자아이가 열매만 따간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지나가는 그 아이를 몇 번이나 봤지만 남의 물건을 그렇게 뜯어가면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 아이가 늘 친구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이 아이가 다른 친구들과 있을 때 들으면 잘못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치심이나 겪지 않아도 될 감정을 느낄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그냥 조금은 진실되고 다정한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면서 사각지대에서 방치되거나 도움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