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군의 아들

3부 세상을 그리다.

by 상욱애비

영농후계자


아이는 농사일을 곧잘 따라 했다. 함께 일해보니 남들보다 느리지만 꾸준하고 성실한 장점이 내 아이에겐 있었다. 그게 또 희망이 되었다. 그래 영농후계자로 만들자. 막연했던 생각이 조금씩 구체화되었다. 농원을 운영하며 고객과 직거래로 생활하고 마을의 심부름꾼이 되어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는 삶, 생각만 해도 뿌듯했다.



준비할 게 많았다. 아이에게 유기농 농법을 가르치고 생활화해야 했다. 고등학교 도움반 특수교사와 상의를 한 뒤에 학교는 일주일에 이틀만 가고 나머지는 집에서 농사를 배우기로 했다. 대신 영농일지를 적어가는 걸로 수업을 대체하기로 했다. 선생님은 학교에서는 유기농 관련 이론적인 걸 가르쳐 보겠단다. 농원 유지 비결은 일정한 숫자의 고정고객과 그에 맞는 생산능력이다. 이 두 가지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에 대한 준비로 먼저 땅을 만들어 주고, 고객을 확보해 주면 된다.



내 아이가 농약을 쓰지 않고 건강하게 농사하기 위해 반드시 땅을 살려놔야 했다. 흙의 구조가 ‘떼알 구조’로 만들어 작물을 키우고 보호해 주는 진짜 엄마 같은 땅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트랙터나 경운기로 일부러 밭을 갈지 않아도 작물들이 잘 자랄 수 있는 그런 땅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 ‘떼알 구조’는 흙의 작은 입자끼리 서로 뭉쳐서 조금 더 큰 알갱이가 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흙의 구조는 알갱이 사이사이에 틈이 생겨 공기가 잘 통하고 배수도 원활해진다. 그러면서 흙 입자의 사이사이에 있는 미세한 공간에 수분과 공기를 적당히 보유하고 있어 식물의 뿌리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최고의 토양환경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부엽토, 쇠똥과 같은 유기물질을 밭에 충분히 넣어줘야 했다. 사람들은 임시적인 방법으로 마사토를 쓰기도 하지만 물이 너무 빨리 빠지고 화학비료를 써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땅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길은 흙이 다져진 땅이지만 밭은 흙이 다져지면 안 된다. 그래서 무거운 경운기나 트랙터를 쓰면 땅이 다져진다. 그나마 가벼운 관리기를 빌려와 밭을 갈면서 파트너 내 아이에게도 관리기를 가르쳤다. 그런데 아이는 생각보다 빨리 관리기를 운용한다. 물론 시동은 내가 켜주고 옆에서 혹시나 모를 위험에 대비는 하였지만 그래도 꽤 잘한다. 방향도 잡고, 돌에 걸리면 살짝 들어주고 하면서 뭔가 능숙한 폼을 잡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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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장, 허 참, 상욱이가 관리기를 제법 잘 다룬다요.”


지나가던 전 이장이 흐뭇하게 웃으며 감탄을 한다.


“하하 아, 그럼요, 좀 더 가르쳐서 나중에 형님 하우스도 갈아드릴게요.”

“아, 우리는 됐고, 저 너머 할배네 고추 하우스 좀 해드리소. 노인이 혼자 얼마나 안 됐던지, 나도 시간이 없어 해드리지는 못하고….”

“네, 이따가 한번 가보지요. 우리 상욱이 데리고.”

“허 그놈 참 신통하네, 남사장 든든하겠소.”



전 이장은 젊은이들이 모두 떠나는 마당에 우리 마을의 유일한 영농후계자라며 잘 가르쳐 보라고 한다. 그래 이제 학교도 졸업했고, 농업을 직업으로 동네 젊은 청년으로 살아가야 한다. 여기 이 마을에서 생활의 터전을 잡고 동네의 나이 많은 어르신들의 밭에 가서 밭을 갈아 주면서 마을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한다.




서마루 반장 상욱이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해였다. 단옷날이라고 동네 반장이 마을 회식을 열었다. 한창 바쁜 농사철이라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서로 얼굴 구경하기가 힘들다는 이유와 이렇게 한번 쉬어가자는 의미라며 반장은 술을 권한다.


이런 동네 회식은 백숙과 부치기 수육 그리고 수리취떡 등 시골 음식과 술이 푸짐하다. 동네 반장은 마을 사람이 다 모인 김에 내년 반장을 미리 뽑아 놓자고 했다. 다들 나이들도 있고 해서 이제 모두 반장을 안 하려 한다. 늘 돌아가면서 했지만, 이번에는 전부 사양만 하고 있다. 아무도 나서지 않고 있는데 전 이장이


“상욱이 이제 졸업했나?” 한다.

"네."

"대학은 안 가나?"


아이가 머뭇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나는 아이의 등을 두드리며


“대학 가면 뭘 해요? 그냥 여기서 농원 사장하며 사는 게 낫지. 요즘 대학 나와도 취직도 못 하는데.”


전 이장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야 그럼, 딱 맞춤이네, 상욱이가 반장하면 안 되겄소?” 그리고 덧붙인다.

“지난번 보니께 관리기도 잘 다루고, 저 너머 할배네 밭도 갈아주지요, 마을 영농후계자감이여. 이번에 반장 만들어 잘 키워보자고.”


나는 그냥 술김에 하는 흰소리라는 생각에 가만히 있는데 아이가 나선다.


“제가 반장 해요? 그럼 제가 열심히 할 테니 박수쳐 주세요.” 한다.


술들이 적당히 오른 뒤라 모두 어린애처럼 손뼉 치고 좋아한다. 그분들도 20 갓 초반의 상욱이가 나서는 게 귀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한가 보다.


“그래, 상욱이 네가 해라. 네가 우리 동네에서 제일 젊으니까 만년 반장 해도 되겠다.”


이렇게 해서 전원일치 추대로 반장이 되었다. 내 아이의 마을공동체 참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살아오면서 나에겐 다양한 직업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양한 직업군의 그룹에 참여할 수 있었고 각 분야의 동료들과 공통의 관심사를 논하며 사귀고 교류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하고 기회가 많은 사회에서 내 아들은 어디에 참여하고 자기의 존재감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까?’가 내가 삶의 방향을 바꾸어 귀농을 선택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난 그에 대한 답을 풀어나가는 전제조건이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내 아들이 평생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직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 경험상 직업이란 생계의 수단이다. 하지만 또 다른 중요한 의미는 직업이 있으면 그 일에 대한 공통의 관심사가 있는 사람들과 동료가 되어서 이 사회에 참여가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내 아이가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분야를 여기 와서 찾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야 조금 가능성이 보이는 것이다. 이제야 농업을 아이의 가능 직업군 가운데 가장 앞 순위에 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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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정선군 O면 OO리 OOO 반장 남상욱“


20대 초반의 다운증후군 청년 내 아이의 일 년 동안 공식 직함이다. 상욱이는 이제 단순 행정 소식 전달자를 넘어 마을의 회의 소집을 알리고 회의 불참자들에게 회의 결과도 알려주고, 신문이나 각종 정보를 공유하는 중심이 되어야 한다. 교통수단이 열악한 시골 마을이라 반장의 역할이 더욱 많다. 내 아이 상욱이는 이 사회참여의 첫 번째 기회가 마을공동체에서의 최전방 말초신경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다. 동네에서는 공식 심부름꾼이 된 것이기도 하다.




반장 상욱이는 바빴다. 마을 간부회의에 참석하랴, 마을 발전 회의에도, 쓰레기 매립장 문제도 열심히 참석하고 동네에 소식을 전했다. 명절에는 혼자 사시는 노인에게 라면이나 쌀 포대를 전달하기도 한다. 폐농자재 수거도 하고 소식지도 집집이 돌린다. 우리 농원에서 나오는 유정란도 이때부터 면사무소에 기부하기 시작했다. 이장단 회의에 따라갔다가 오는 길에 낸 아이디어였다. 회의 때 나온 복지시설 지원방안을 주의 깊게 듣더니 경로당과 복지시설에 고객께 보내고 남은 달걀을 보내주잖다. 하는 일이 사람을 만든다더니 생각하는 게 달랐다. 아이의 달라지는 모습에 나는 신나게 기사도하고 조수로서 역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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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마을에서 다운증후군 상욱이의 존재감이 인정받고 있다. ‘장애’라는 주홍글씨로 이 사회에 참여할 기회가 없었던 내 아이에게 공동체 사회에 참여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공동체 행정망의 말초신경 일을 맡아하는 사람으로서 이 사회의 발전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 증명으로 정선군에서 ‘상욱이 반장님’ 앞으로 우편으로 신문을 보내주기도 한다.


“오늘은 정선에 무슨 일이 있나 한번 봐야지.”


상욱이가 소파에 앉아 짧은 다리를 꼬는 자세로 신문을 펼쳐 든다.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쳐흐른다. 아이 엄마와 나는 웃는 눈길로 쳐다보며


“상욱아, 좀 자세히 보고 어떤 일이 생겼는지 얘기해줘.” 한다.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동네 사람들의 심부름꾼으로, 마을 일하면서, 농원도 운영하고 동료들과 마을 사람들과 알콩달콩 살았으면 좋겠다. 집에서는 이렇게 거드름도 피우고….



산골에 바람이 분다. 바람의 지휘로 다양한 풀과 잎새들이 연주하고 풀벌레와 매미의 합창이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