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세상을 그리다.
“거기 상욱이네 농원이죠?”
어떻게 알려졌는지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다. 장애를 주제로 다루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작가가 상욱이와 귀농 이야기를 다루고 싶단다. 그들은 시청자가 장애인의 가족이고 그들에게 뭔가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기 위한 거라고 말했다. 고민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방송에서 뭘 보여줄 수 있겠냐는 내 말에 그들은 주변에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그냥 사시는 게 다른 분들의 희망이 될 수 있을 거란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 이후’의 내 아이의 삶이다. 그 부분이 가장 힘이 들고, 어렵겠지만 그 부분이 해결이 안 되고 어찌 현재가 행복해질 수가 있을까? 지금 당장 일이 아니라고 미뤄두면 과연 어떻게 해결될까? 답이 없어 꺼내기 싫어하는 이야기지만 그래도 그 이야기가 화두가 되어야지 사람들이 생각이라도 하고 관심이라도 가질 게 아닌가?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한번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 출연으로 그동안 조용히 살았던 생활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아내에게 나는 우리가 꿈꾸는 자립형 복지 공동체를 방송에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설득을 시작했다. 아내는 우리가 보여 줄 수 있는 희망이 뭐냐고 나에게 돌직구를 던졌다. 우리가 꿈꾸는 ‘자립형 복지 공동체’는 아직은 꿈이지 현실이 아니지 않으냐고 한다. 나는 아내에게 그 꿈이 있어서 노력하게 되고, 기쁘지 않으냐고 되물었다. 우리가 아이에 대한 미래를 꿈꾸지 않고 그냥 하루하루를 산다면, 나는 사는 자체가 힘들 거라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기회가 왔을 때 방송을 통해 화두라도 던져보자고 했다.
“그리고 또 알아? 혹시 나와 같은 꿈을 품은 사람이 있을지? 꿈이 같은 사람이 모이면 가는 길이 재미있을 거야.”
아내는 아이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자기 의견을 한발 물린다. 아내의 승낙을 반 억지로 받고 방송을 결정했다. 다행히 PD 한 명만 와서 촬영했지만 그래도 3박 4일을 같이 생활하고, 우리 사생활이 모두 노출된다는 생각에 별로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우리 가족의 실생활을 그대로 찍었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PD는 완전 상욱이에게 반한 것 같았다. 서로 카톡을 주고받고, 형 동생이 되고, 밤에 같이 자면서 일본 드라마도 같이 보고 등등 난리다.
그래서인지 PD는 내가 주장하는 ‘자립형 복지 공동체’에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그걸 추진하기에 현실의 벽이 너무 두껍다는 것도 걱정해 주었다. 저녁에 촬영이 끝나면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별빛이 유난히 아름다운 날은 별빛 핑계를 대고 밖으로 나가 담배를 물고 또 이야기했다. 어떻게 보냈는지 정신없이 3박 4일을 보내고 촬영을 끝냈다. 방송에서는 우리의 꿈 이야기는 거의 편집되고 실생활 위주로 방송되었다.
참고 동영상 https://blog.naver.com/wkdusguard/209068299
방송이 나가자 연달아 다른 방송에서 섭외가 들어왔다. 지난번 촬영 때 힘들어서인지, 방영 이후 쏟아진 전화로 신경을 쓴 때문인지 아내는 반대했지만 그래도 뜻이 같은 사람을 모으려면 방송하는 게 도움이 될 거라는 작가의 설득에 또 촬영했다. 사실 귀농 10년 차인 그해는 그동안 생각하고 정리해 왔던 공동체를 추진해 보기로 마음을 굳혔던 시기였고 먼저 동지를 모아야 했다. 그래서 대중적인 방송 출연을 계기로 같은 뜻을 가진 사람을 모아 보기로 생각한 것이다. 지난번의 경험도 있고 해서 이번에는 촬영 내내 공동체를 이야기했지만 결국 그 이야기는 또 편집되고 말았다.
촬영 도중 상욱이의 적극적이고 활달함에 놀라던 담당 PD는 촬영이 끝나고 상욱이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상욱이는 뭐든지 초긍정이네요. 우리 아이도 이렇게 밝게 키울 거예요.’ 하며 상욱이의 밝은 모습을 다시 감탄한다.
헤어지는 섭섭함에 PD 형을 안아주고 하던 상욱이는
“상욱아, 형이 너를 주인공으로 잘 편집해서 보여줄게.”
PD의 이 말 한마디에 신이 났다. 상욱이는 마치 자기가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나 보다. 집으로 오면서 상욱이는 언제 이별을 했냐는 듯이 신이 나 있었다.
“아버지, 또 내가 주인공이야?”
“그래, 이놈아, 네가 주인공이다.”
그래, 상욱아 네 인생은 네가 주인공이 되어서 살아라. 아이의 밝은 웃음이 봄꽃처럼 화사하다.
아직 눈이 채 녹지도 않은 앞산에 산수유꽃이 노랗게 봄을 알린다. 깊은 골짜기에 숨어있는 우리 집에 내 아이를 보겠다고 젊은 부부가 찾아왔다. 갓 심장 수술을 한 아이를 데리고 온 부부는 블로그를 보고 찾아왔다고 했다.
“처음에 아이를 낳고 많이 울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그러다 TV에서 상욱군을 보게 되었고 아버님 블로그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혼자 보다가 두 번째는 남편과 같이 보았습니다. 이제 갓 태어나 아직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정말 막연했었는데…. 방향을 잡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영혼이 밝고 건강한 아이였으면 좋겠다.’ 생각했었는데, 맑고 순수한 그리고 사랑스러운 상욱군의 성장한 모습을 보며, 용기를 많이 얻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 주어진 일을 책임감 있게 해내는 모습, 개와 닭, 병아리에게 인사하며 마음을 쓰는 사랑이 많은 모습, 우리 천사를 키우는데 롤모델로 삼고 싶습니다.”
아이 엄마의 말에 이어 아이 아빠도
“막연한 걱정 두려움을 안고 있었는데, 많이 힘들었는데 이제 방향도 섰고 희망을 품었습니다. 마음이 편해져서 꼭 한번 찾아뵙고 싶었습니다.”
하며 내 손을 잡는다. 부부는 우리 가족을 보고 용기를 가졌단다. 나를 쳐다보는 아이의 눈빛이 맑았다.
“우리 천사예요.” 한다.
젊은 부부를 위해 친정엄마처럼 저녁을 준비하는 아내의 바쁜 몸짓에서 안타까움을 본다. 한동안은 모르겠지만 달라진 삶이 앞으로 얼마나 힘들지 아내는 연신 한숨을 내 쉰다. 혹시라도 자신의 한숨 쉬는 모습을 그들이 볼까 가끔 눈치도 본다. 눈동자가 붉어져 있다. 아마 우리 아이가 고만할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하나 보다. 자고 가라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또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들은 갔다.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며 근처의 콘도에 방을 예약해 놨단다. 얼마 전 왔던 젊은 부부는 세상이라도 바꿀 듯한 패기를 보이며 억울함을 토로했는데 이들은 조용히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인다.
일반적으로 내 아이가 발달장애라고 규정하는 판정을 받게 되면 가장 큰 충격을 받는 사람은 부모다. 이들이 충격을 받는 이유는 장애의 사회적 인식에 대한 직, 간접 경험에 의한 세뇌된 편견 때문이다. 남들의 일로만 생각했던 불행이 증폭되어 막연한 두려움이 되고 그러한 감정들이 왜곡되어 아이에 대한 과잉보호로 나타나게 된다. 주변 지인들의 위로에서 상처를 받게 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나 하는 막막한 생각 속에 빠진다. 아이가 자라 가면서 사회의 장애에 대한 불평등한 시스템과 부딪치며 아이의 사회적 인식에 대한 실체를 접하게 된다. 실제 이런 편견은 ‘지능이 높으면 훌륭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크다?’ ‘훌륭한 사람이란 경쟁에서 이겨 부와 권력을 쟁취한 사람’이라는 잘못된 전제와 우생학적 개념에서 비롯된 ‘인간의 지적, 도덕적 능력은 유전적으로 결정된다.’라는 것이다. 이 전제된 개념에서 보면 우리 아이들은 교육도 큰 의미가 없고 함께 살아가는 동료로서 존중받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 미래가 없는 아이를 보듬고 살아가야 하는 가족 모두는 불행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낙망하고 아이가 불쌍하고 하루하루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선생님 어제 정말 고마웠습니다. 저희 이제 서울 올라갑니다. 어제 처음으로 아내와 밤새워 아이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저희는 우리 아이가 이 세상에 적응하기가 힘들면 세상을 바꿔서라도 우리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 보자고 각오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귀찮지 않으시면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늦은 아침 온 전화가 씩씩하다. 그래 앞으로 계속해서 부딪치는 어려움에 견디기 힘들면 쉬러 오고, 제발 포기만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