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욱애비 Oct 25. 2021

소설 캠프아라리

1화, 들풀 어린이집

1 선우맘 서유재



4 행복이 깨지는 소리     

   

초보 엄마의 삶과 병원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서유재는 선우와 함께하는 시간이 좋았다. 병원에서의 힘든 일도 선우만 보면 다 잊을 정도였다. 신기했던 것은, 그렇게 힘들었는데 힘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선우는 열 번을 힘들게 하면 반드시 열한 번 예쁜 짓을 해서 서유재를 웃게 했다. 매일 열 번을 울고 열한 번 웃으며 행복한 엄마가 되어갔다.   

  

“유재야 선우가 말이 좀 느린 거 같지 않아?”

“그런가? 말문이 늦게 터지는 아이가 말을 잘한대.”

“그래도 체크해 봐야지. 엄마가 정신과 전문의인데.”  

   

엄마는 별일 아닌 듯 가볍게 툭 던지고 나갔다.     

그때부터 선우의 성장 체크리스트에는 발달에 관한 불안한 징조가 기록되기 시작했다.     


1. 불러도 반응을 잘 안 한다. 

2. 눈을 잘 맞추지 않고 자꾸 피한다. 

3. 빨간색 장난감 차만 좋아한다. 

4. 말을 들으려고도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5. 물건들을 입에 집어넣고 빤다. 등등    

 

자폐증 증상과 유사했다. 고민 끝에 서유재는 정신과 학회에서 발달 관련 주제로 발표를 계속하는 선배에게 전화했다. 선배는 두 아이의 엄마고 강남에서 꽤 유명한 정신과 병원의 대표 의사를 맡고 있었다.   

  

“언니 우리 선우 말이 좀 느린 거 같아. 그런데 말만 안 되는 게 아니라 눈 맞춤 잘 안 되고 어쩌다 눈을 마주치면 그리 오래 쳐다보지 않아요.”

“얘는, 아이들은 다 그래. 우리 큰애도 너무 느려서 걱정 많이 했는데 40개월쯤에 말문이 터졌어. 그 뒤로 얼마나 수다스럽던지……. ”

“아니 좀 심각해. 자기 이름을 불러도 잘 쳐다보지도 않고, 혼자 노는 걸 좋아하는 편이고 얼마 전부터 어린이집에 보냈는데 다른 애들이랑은 잘 어울리지 않는 거 같아.”

“벌써 어린이집에 보냈니? 

낯설어서 그럴 거야. 이제 겨우 두 돌 갓 지났어. 정 걱정되면 간단한 검사 해 보든지. 그거 있잖아. K-ASQ”

“..........”

“지금 뇌파 검사는 부정확하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문진밖에 없잖아. ASQ(Ages & Stages Questionnaires)는 출생 후 4개월부터 대상으로 하잖아. 그걸로 발달상태를 확인해봐. 아이가 어려서 정확도는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손 놓고 막연히 걱정만 하는 거보다는 좋지 않을까? 그냥 네가 할 수 있잖아.”

“내가? 객관적일 수 있을까?”

“그냥 편하게 네가 해봐. 그리고 결과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놀이 치료나 열심히 해. 괜찮을 거야. 엄마들은 너무 예민해서 그래. 특히 우리는 직업병이야. 그냥 편하게 설문 조사하듯이 검사해보고 만약 문제가 없다면 아이 발달에 좀 더 신경을 쓰고, 만약 문제가 있다고 의심되면 조기에 적극적으로 치료해야지. 네가 전문의잖아”  

   

선배는 괜찮을 거라며 너무 예민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발달장애에 관한 여러 가지 관찰을 가족들 몰래 하기 시작했다. 전반적 발달 척도(GAS) 검사, K-ASQ 검사, 베일리 영유아 발달검사 등의 결과는 그녀를 힘들게 했다. 더 이상의 미련은 모두에게 좋지 않다. 이제 결론을 내야 했다. 아들의 자폐를 확정해야 하는 그녀의 마음은 그 1년여의 검사 동안 마음이 다 타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힘들었다. 마지막으로 가족에게 알리려고 최종 검사를 선배에게 의뢰해서 결과를 받았다.                

"선우가 자폐인 거 같아."  

    

갑작스러운 말에 모두가 말이 없었다. 남편의 표정에서 절망이 느껴졌다. 엄마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아이고 이일을 우짜노."

“왜들 이래? 죽을병이라도 걸렸어?"

"죽을병이면 차라리 다행이지……."     


말이 늦다고 걱정을 할 때 엄마는 선우를 유난히 감싸줬었다.     

 

"대기만성이래. 선우는 큰 인물이 될 거야. 너는 만날 엉터리라고 하지만 태몽은 태어날 아이의 미래를 얘기해 주는 거야. 네가 그런 태몽을 꾸었는데…. 걱정하지 마.”    

  

그랬던 엄마는 며칠을 앓아누웠다.      


그때부터 그녀의 행복은 손에서 와인 잔이 떨어지듯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작가의 이전글 소설 캠프아라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