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K 이야기

by 상욱애비



K라는 친구가 있었다. 30대 중반에 만나 친하게 지냈던 친구다. 벤처기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던 시절에 나도 제법 그럴듯한 벤처기업을 하고 있었다. 그는 벤처기업을 평가하고 자금을 투자하는 캐피털 벤처기업을 하던 친구였다. 열악한 자금으로 사업을 시작했던 나는 투자회사들에 다니며 투자 유치 브리핑을 했고 그때 만나서 친구가 되었다. K는 명문대 경영학 박사 출신으로 메이저 금융회사에 다니다가 직장동료와 동업으로 창업을 했다고 했다. 그의 아내도 제법 괜찮은 회사에 다니는 커리어우먼이었다. 큰 덩치에 남자다운 얼굴의 K는 얼핏 보아도 엘리트 냄새가 풍기는 친구였다.



한 번은 K에게서 저녁에 소주나 한잔하자고 전화가 왔다. 대학 시절에는 막걸리로 인생과 예술을 논했었고, 사업을 시작한 이후 소주로 삶의 공허함을 때우던 시절에 나는 나와 동질성의 사람들과 만남을 즐겼다. K는 그중에서도 손꼽히던 친구였다. K는 술을 한잔하면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것들을 비판했고, 그 정책들이 너무 졸속성과 위주고 이러다가는 많은 젊은 인재들을 죽이겠다고 개탄을 하곤 했다. 열혈 청년인 그와 먹는 소주는 맛이 있었다.



K의 단골집인, 시끌벅적한 삼겹살집에서 소주를 한잔하고 자리를 옮긴 카페는 손님이 별로 없어 조용했다. 맥주를 한 잔씩 하다가 K는 지난 가족 모임 이야기를 꺼냈다.



대학 때 경영이나 상업 관련 과목을 전공하지 않았던 나는 사업을 하면서 젊고 유능하다고 평판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었고, 그러면서 내가 모르는 여러 가지 전문 지식이나 자금 또는 정부 정책들에 대한 정보들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또 그들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사람을 좋아했던 나는 의도적으로 친구를 많이 사귀었고, 그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거의 매일이었다. 그냥 1차, 2차, 3차 소주 먹고, 카페나 룸살롱 가서 폭탄주 마시고 입가심한다고 포장마차에 가서 또 우동에 소주 마시고…….

사람을 만나려고 술을 마시는 것인지 술을 먹기 위해 사람을 만나는 것인지 주객이 전도된 것 같았다. 그런 방식으로 인간적인 가까움의 한계를 느낀 나는 친구들에게 가족 모임을 제안했다. 우리끼리만 전투적으로 술 먹지 말고, 가족들과 식사하면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점수도 따고 하자고 했다.



많은 친구들의 성원에 힘입어 첫 모임이 성사되었고 양재동의 최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첫 모임이 시작되었다. 들뜬 표정의 친구 부부들이 하나씩 들어왔고, 가끔 아이들을 동반하는 부부도 보였다. 약 20여 가족이 모였으니 꽤 많은 사람이다. 모임의 방식은 그냥 식사하면서 테이블들을 편하게 왔다 갔다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프리파티 스타일이다. 그날 아내와 우리 아이들은 주인공(?)처럼 모두의 주목을 받았다. 모두들 내 아들을 보고 잠시 당황하는 표정이었고, 아내에게 뭔가 말을 하러 왔다가 전혀 구김살이 없고 밝은 아내의 모습에 의례적인 인사말들만 하고 그냥 자기 자리로 돌아가곤 했다.



생각을 해 보니 그는 혼자 왔었다. 나는 그의 아내가 많이 바쁜가 하고 내심 생각했었다. K는 약간 술이 오른 상기된 표정으로 조심스레 그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의 아내는 집에서 전업주부로 아이의 육아에 올인한 지 오래되었다고 했다. 큰 애가 내 아들과 같은 다운증후군이고, 내 아들보다 3살 많고, 여자아이고, 그 애로 인해 아내는 직업을 포기했고, 그리고 아이를 보느라 모임에 오지 못했다고……. 자기의 이런 이야기를 처음으로 남에게 한다고도 했다. 그런데 가족 모임에서 상욱이를 보고 생각이 많아졌다는 거다. 나름 유심히 보았는데 상욱이의 밝은 표정과 행동에 너무 가슴 아팠다는 거다.



우리는 그날 많이 취했다. 돈을 많이 벌어 재단을 만들고 하면 어떻게 되겠지 하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생각을 주정했다. 술이 취해 의기투합했고 술에 취해 미래를 구상했다. 이 세상의 잘못된 시스템을 비판했고, 신의 뜻을 이해 못 하는 우리를 한탄했다. 그는 내가 아이를 데리고 나온 게 대단한 용기지만 자랑이냐?라고 했고, 나는 그가 아이를 집에 감춰두는 게 잘못된 거라 비판하면서도 우리는 서로가 이해가 되었다. 이 세상 편견에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하면서 해결되지 않는 억울함을 열변했고, 어깨동무를 하며 노래를 불렀다. 술이 물처럼 넘어갔다. 한동안 그 친구와 자주 만났고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꿈을 이야기하곤 했었다.



그러다가 내가 캐나다 이민 구상을 하면서부터 연락이 뜸해졌다. 후에 그 시기에 K는 여러 이유로 회사를 그만 접고 대기업의 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전해 들었다. 나 또한 아내의 수술과 이민을 하려던 준비로 서로 연락이 끊겼다. 가끔 그 친구 생각이 났었지만, 그냥 잘 살겠지 하고 지나갔다. 어쩌다 답답한 마음에 소주를 한잔할 때면 그 친구의 빨갛게 상기된 표정과 떨리던 입술이 생각나곤 한다. 여기 정선으로 온 지금은 서로 연락을 못 하고 있지만, 가끔 생각이 나고, 생각하면 가슴이 시려지는 친구였다.



작년 어느 늦은 가을날 그 친구는 느닷없이 카톡으로 ‘뉴욕의 장애자 회관에 적힌 시’를 보내왔다. 아마 그 친구가 이 글을 유일하게 보낼 수 있는 친구가 나일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안부를 물어봤지만, 답은 오지 않았다. 서로 살아있는 걸 확인만 하고 말았다.


"난 부탁했다"

* 작자미상(뉴욕 장애자 회관에 적힌 시)


나는 신에게 나를 강하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걸 이룰 수 있도록

하지만 신은 나를 약하게 만들었다.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도록


나는 신에게 건강을 부탁했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지만 신은 내게 허약함을 주었다.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도록


나는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행복할 수 있도록

하지만 난 가난을 선물 받았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나는 재능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지만 난 열등감을 선물 받았다.

신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나는 신에게 모든 것을 부탁했다.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지만 신은 내게 삶을 선물했다.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도록


나는 내가 부탁한 것을 하나도 받지 못했지만

내게 필요한 모든 걸 선물 받았다.

나는 작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신은 내 무언의 기도를 다 들어주셨다.


모든 사람 중에서

나는 가장 축복받은 자이다.



어느 하늘 아래서라도 건강하고, 희망을 잃지 말았으면 하고 바란다. 장마 뒤의 여름 하늘이 가을을 부르는 듯 눈부시게 파랗다.

오늘 또 그 친구 생각에 소주가 당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