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무슨, 그래 까짓 거 서울대 가자

by 상욱애비


장애는 무슨, 그래 까짓 거 서울대 가자



아침에 가방을 챙기는 수다쟁이 아이 표정이 비장해 보였다. 평소에 학교 갈 때는 친구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은지 말이 많은데 오늘은 그렇지가 않다. 특히 오늘은 내가 비장한 마음이 전염되어 아이의 눈치를 보게 된다.


어제 학교 마치고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일은 시작됐다. 차를 타는 아이 미간 사이가 벌건 게 표정이 별로 안 좋아 보였다. 아이는 화가 나면 미간 사이가 벌건 색이 번지듯 올라온다.

“너 오늘 무슨 일 있었니? 조금 늦게 나왔다.”

“응, 아빠 별일 아냐, 친구랑 조금 싸웠어.”

“그래? 누가 너를 괴롭혀?”

“상호가 나보고 욕하면서 장애인이래, 그래서 내가 아니라고 했더니 주먹을 쥐면서 협박을 해, 그래서 선생님께 일렀어.” 하는 거였다.

“아니 ‘쌍쌍 브라더스의 상호, 상호가 왜? 너랑 친하잖아.”

아이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 씩씩거리더니

“근데 아빠 장애인이 뭐야? “하고 물었다.


가슴이 덜컹했다. 이문제는 사실 생각 자체를 하기 싫은 부분이었다. 그냥 살면서 아이가 자신에게 씌워진 그런 낙인에 대해 고민하는 게 싫었다. 막연하게 언젠가는 그런 날이 맞닥뜨려질 줄은 예감하고 있었지만. 제발 그런 날이 오지 않기만 바라고만 있었다.

나는 그동안 아이가 장애인이라는 생각보다는 아프다고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에 굉장히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장애를 등록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캐나다 이민하려 할 때 절차상 할 수 없이 하게 됐다. 그때 아이의 나이가 14살이었다. 아이 본인도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집에서는 그 단어가 금기시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장애인’이라는 막연하게 불편한 이미지가 싫었다. 그렇게 나도 납득이 되지 않는 ‘장애인’이라는 말을 아이에게 설명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 상호가 왜 그랬어? 너하고 잘 지냈잖아. "다시 묻자

"잘 모르겠어, 아빠. 아침엔 안 그랬는데……. 나한테 삐졌나 봐? 그래도 그렇지 장애인 새끼가 뭐야? 욕이 맞지?"

나는 선뜻 뭐라고 설명할 말이 안 나왔다. 그러다가

"아냐 상욱아 장애인은 욕이 아니야. 걔가 말뜻을 잘 몰라서 잘못 쓴 거야. 장애는 뭔가 잘하지 못하는 거야. 너 장애물 경주라고 알지? 뛸 때 잘 뛰지 못하라고 중간에 방해물을 갖다 놓잖아, 그런 게 장애야.”

“아하 방해하는 거구나?”

“그래, 그냥 방해만 하는 게 아니라 방해를 해서 잘하지 못하는 게 장애라는 거야. 그래서 사람들이 뭔가를 잘하지 못하면 장애가 있어서 그래.라고 이야기하는 거야.”

“알았어. 그러니까 잘하지 못하는 것이 장애구나. 그런데 난 다 잘할 수 있는데 왜 장애라고 해?”

“그건 상호가 잘 몰라서 그렇지. 혹시 너를 질투하나?”

“그건 그래. 나 학교에서 여학생한테 인기가 짱 많아. 상호가 그걸 부러워하긴 해. 히히”

자기 자랑이 나오는 걸 보니 이제 기분이 조금 풀리는 모양이다.


차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이는 혼자 골똘히 생각한다. 나는 그런 아이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말을 삼갔다. 그러더니 아이는 갑자기

“아니, 나 다 잘해! 내가 못 하는 게 없는데 무슨.”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니 나를 쳐다본다.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아부자, 나 다 잘할 수 있어, 장애인은 무슨, 잘하면 되지. 뭐”

되새기듯 반복하며 다짐하는 듯했다. 그때야 표정이 조금 밝아진다. ‘아부자’는 상욱이가 기분이 좋을 때나 아빠를 놀릴 때 쓰는 자기만의 별명이다. 기분이 좋아졌다는 것이다.

그런 아이를 보며 난 마음이 무거워졌다. 오늘은 이렇게 대충 넘어가지만 미뤄놓은 숙제를 풀어야 한다. 어떻게 장애라는 말을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까? 세상이 아이에게 씌워 놓은 ‘주홍글씨’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나는 살면서 실질적으로 아이의 장애로 인한 것보다 장애라는 편견이 주는 힘듦이 더 많았다. 여기 이 산골로 이사 온 이유도 그런 생각이 컸다. 언젠가 아내에게

“나는 장애라는 단어를 포괄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로 어떤 생명체에도 붙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 사람에게는 특히. 장애라는 말은 어떤 일을 하는 데 대한 과정을 설명할 때 들어가는 것이야. 대표적인 예가 장애물 경주인 거지. 뛰는 데 방해가 되는 방해물을 설치해 놓고 시합을 시키는 것이 장애물 경주야. 그런데 ‘장애인’이라는 단어는 사람이 장애물 경주에서 설치해 놓은 장애물 같은 느낌을 주잖아. 사람을 방해물로 취급하는 것 같아. 나는 사람 앞에 붙이는 ‘장애’라는 단어 자체가 싫어. " 했다가

"그게 세상인데 그럼 어떡해, 세상을 바꾸면 몰라도……." 하는 핀잔만 들었다.


다음날 난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간 아이가 혹시 왕따가 되어서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지나 않을까? 화장실 뒤로 끌려가 맞지나 않을까? 그나마 좋아하던 친구들을 싫어하게 되지나 않을까? 이 생각 저 생각에 하루 종일 시간이 멈춰있는 것 같았다. 하교 시간에 데리러 가서도 전전긍긍하며 아이만 나오기를 기다렸다. 다른 아이들이 다 나오는 데 상욱이는 나오지를 않는다. 꾹 참고 기다리는데 아이 반 아이가 지나간다. 인사를 하며 상욱이가 도움반에서 친구와 있다고 말해준다. 일단 염려했던 일은 없는 것 같았다. 안도와 함께 이제 이놈이 빨리 안 나온 게 괘씸했다. 도움반으로 가 슬쩍 창문으로 보니 책을 펴놓고 친구에게 열심히 뭔가를 설명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10분 정도 그렇게 보다가 창문을 두드렸다. 아빠를 쳐다보며 손을 번쩍 들고 흔드는 아이의 모습이 밝아 보였다. 도움 선생님이 나를 보더니 반색을 하며 아이를 데리고 나온다.


“아니, 상욱아 왜 안 나오고……. 친구랑 뭐 했니?”

아이는 도움 선생님 눈치를 슬쩍 보더니

“친구에게 공부 가르쳐 줬어. 곧 시험이 있어서” 한다.

그리고는 “아빠 책 챙겨서 올게요.”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도움 선생님은 웃으며

“아버님 상욱이가 좀 특별한 데가 있어요. 우리 아이들이 일반 수업시간은 흥미를 잃는 편인데 상욱이는 그렇지 않아요. 수업시간에 열심히 들어요. 오늘 시험 일정과 범위를 알려 줬는데 그걸 표시해 놨나 봐요. 친구에게 시험 범위를 알려준다고 저렇게 열심히예요.” 한다.

그럼 그렇지 깜짝 놀랐잖아. 진짜 공부를 가르쳐 준 줄 알고 조금이라도 기대한 내가……. 흐흐


아이가 씩씩하게 걸어왔다. 차에 타자마자 내가 묻기도 전에 먼저 전쟁터의 무용담 꺼내듯이 이야기를 꺼낸다.

“아부자 내가 어제 아부자한테 들은 대로 이야기했어. 나는 장애인이 아니라고, 나는 다 잘할 수 있다고 했어.” 하는 거였다.

표정이 활기차 보였고 용감해 보였다.

“그래?, 잘했다. 근데 상호는 뭐래?” 하니

겸연쩍게 웃으며(쑥스러울 때 짓는 특유의 표정이 있다. 나는 이 표정이 너무 귀엽다)

“나 보고 공부 못한대, 그래서 내가 서울대 간다고 했어. 지금부터 공부 열심히 해서. 그랬더니 친구들이랑 선생님이 박수를 쳐줬어.” 했다.

아이의 표정이 그렇게 당당하고 의기양양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래, 열심히 해서 까짓 거 서울대 가자. 아빠는 당당한 상욱이가 좋아. 하하 ”

“알았어, 아부자. 오늘 술 한잔?”

신난 아이가 손으로 술잔을 들어, 마시는 모습을 취하며 입으로 쪽 소리를 낸다.


나는 아이와 가끔 집에서 술판을 벌인다. 나는 소주를 아이는 사이다지만 서로 주거니 받거니 여기에서 술친구 역할을 아이가 톡톡히 한다. 아내는 그걸 보고 웃으며

“자알 한다. 아이에게 그런 거나 가르치고”

“왜 그래 엄마 보기만 좋은데 뭘, 원래 술은 아빠한테 배우는 거래.”

옆에서 편드는 딸이 웃으며 엄지 척을 한다.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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