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 이야기 2부
서 마루 반장 상욱이
연초에 뜬금없이 면사무소에서 전화로 남 상욱씨 댁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상욱이 인적사항을 알려달라고 한다. 군 신문에 내려면 정확한 주소가 필요하단다. 아니 신문에는 왜요? 하니 올해부터 OOO 마을 반장님 아니냐고, 마을 이장이 명단을 올렸다고 했다. 그때야 아 맞다, 상욱이가 올해부터 반장을 하기로 했다는 생각이 났다. 담당 주사는 동네 반장이 바뀌면 면사무소에서도 알아야 하고, 업무 관련 보험도 들어주고, 추석에 한번 위로금 조로 오만 원을 준단다. 군 신문에도 실어 알린단다. 그냥 단순 동네 심부름꾼인 줄 알았는데 제법 공식적이다. 우선 이장하고 통화해서 확인할 게 좀 있으니 나중에 전화해 주겠다고 살짝 튕기고 전화를 끊었다.
한때 나에겐 다양한 직업이 있었다. 입시 미술학원 운영을 했었고 나름 화가였었다. 그리고 유아복을 파는 가게의 주인이었던 적도 있었고, 광고디자인 회사, 컴퓨터 교육 프랜차이즈, 보안 운송회사,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 운영 등등 여러 분야의 직업에 적을 둔 적이 있었다. 지금은 유기농 농사를 하면서 공동체 만들기에 전념하고 있다. 나는 이런 직업들을 통해 다양한 직업군의 그룹에 참여할 수 있었다. 각 분야의 동료들과 공통의 관심사를 논하며 사귀고 교류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하고 기회가 많은 사회에서 내 아들은 어디에 참여하고 자기의 존재감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까?’가 내가 삶의 방향을 바꾸어 귀농을 선택한 이유 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리고 난 그에 대한 답을 풀어나가는 전제조건이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내 아들이 평생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직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 경험상 직업이란 생계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일이 있으므로 그 일에 대한 공통의 관심사가 있는 사람들과 동료가 되어서 이 사회에 참여가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내 아이가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분야는 내가 살던 도시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고민 끝에 여기 농촌은 가능할까 해서 귀농을 선택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에야 조금 가능성이 보이는 것이다.
“강원도 정선군 O면 OO리 OOO 반장 남상욱“
23살의 다운증후군 청년 내 아이의 일 년 동안 공식 직함이다. 상욱이는 이제 단순 행정 소식 전달자를 넘어 마을의 회의 소집을 알리고 회의 불참자들에게 회의 결과도 알려주고, 신문이나 각종 정보를 공유하는 중심이 되어야 한다. 교통수단이 열악한 시골 마을이라 반장의 역할이 더욱 많다. 내 아이 상욱이는 이 사회참여의 첫 번째 기회가 마을공동체에서의 최전방 말초신경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다.
몇 년 전에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쓴 ‘세상을 바꾸는 천 개의 직업’이라는 책을 본 적이 있었다. 박 시장은 그 책 속에서 ‘다운증후군 마을을 만들어 이장이 되자.’라는 아이디어 차원의 직업 제안을 했었다. 그 내용은 장애인 마을을 만들어 마을 차원에서 잘 관리하고 보살피자는 뜻이었다. 복지시설에 보내 관리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지만 그래도 장애인들을 모아서 비장애인이 관리하고 통제하자는 뜻으로 읽혀 별로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그때 언 듯 든 생각이 상욱이가 이 마을 이장하면 어떨까? 할 수 있긴 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도 없었던 순간적인 “생각”일뿐이었었고 곧 잊어버렸다. 그랬었는데……. 이런 기회가 온 것이다.
시작은 작년 단오 때 마을 분들이 모여서 반장 집에서 백숙에 막걸리를 먹으며 단오 잔치를 했었다. 술을 한 잔씩 마시고 화기애애한 자리였다. 그때 전 이장을 했던 마을 어른 한 분이 ‘상욱이 대학은 안 가나?’고 물었고, 난 ‘요즘은 대학을 나와도 취직할 수도 없는데….’ 하고 상욱이는 대학은 안 가고 이제 고등학교 졸업했으니 농사를 열심히 가르쳐 영농 후계자로 만들 생각이라고 했다. 그때 그분이 ‘그럼 내년에는 상욱이가 반장을 해라. 마을을 위해 심부름하는 것부터 가르쳐야제’ 했다. 그 자리에 오셨던 마을 분들은 모두 웃으며 손뼉 쳤다. 상욱이는 ‘아~예, 그럼 다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마을을 위해 한번 해 볼게요.’ 하며 마치 큰일을 하듯이 나섰다. 그리고 마치 선거에 당선된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막걸리도 한 잔씩 돌렸다. ‘아이 한 명을 키우려면 한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이제 이 마을 분들은 상욱이를 제 몫이 어느 정도는 가능한 사람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전까지는 마을과 동떨어진 상욱이였는데 이제 마을 사람들 안에 포함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의 일을 나는 그냥 재미있는 해프닝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마을 분들이 그 정도로 상욱이를 평가해주고 대우해 주는 게 기분 좋았다. ‘그래 이제 사람들은 상욱이를, 우리 가족을 마을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하는구나.’ 정도였지 진짜 반장으로 생각했을 줄은 몰랐다. 그래서 그때의 해프닝을 자기가 반장 할 거라고 들떠 있는 상욱이 제어용으로만 쓰고 있었다. ‘반장 하려면 그렇게 행동하면 안 돼’ 또는 ‘반장은 마을신문도 돌리고 해야 하니까 많이 걸어야 해.’ 등의 교육을 하거나 운동을 시킬 때 주마가편의 채찍용으로만 썼던 반장이었다. 하지만 속마음은 정말 반장이 될 수 있다면 되었으면 싶었다. 비록 일 년에 오만 원밖에 받지 못하는 반장이지만 그걸 평생 직업으로 살았으면 했다.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심부름을 하고, 마을을 위해 조금이라도 쓸모 있는 그런 삶이면 상욱이로서는 충분히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이 사회가 그들을 위해 만들어 논 매뉴얼대로 사는 ‘삶’에 대해 난 그냥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나는 내 아들이 이 사회에 작더라도 존재가 있었으면 했다. 별종으로 분류되어 ’ 격리해서 관리하는 ‘의 대상으로서 살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려 사람으로 대접받으며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사는 삶을 살았으면 했다. 그런 ’ 삶’으로 시골의 한구석에서 유기농 농사를 하고 자급자족하며 마을 사람들과 어우러져 같이 사는 것을 막연하게 꿈꾸며 귀농을 한 것이었다. 세상에는 강렬한 태양도 있고 그 태양의 빛을 빌려 밤을 밝히는 달도 별도 있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작고 존재가 미미하지만, 자신의 능력만큼 세상을 밝히는, 스스로 빛을 내는 아름다운 반딧불이도 있는 것이다. 비록 그 반딧불이같이 작은 존재일지라도 참여하고, 존중받고, 사랑받으며 살았으면 한 것이었다.
“오~ 예!!!”
올해부터 마을 반장이라고 말했더니 상욱이는 신이 나서 난리다. 작년 반장 이야기가 나온 이후부터 자기가 마을 반장 할 거라고 큰소리치더니 마치 중‧고등학교 때 몇 번 도전에만 그쳤던 반장을 드디어 쟁취한 분위기다. 먼저 스텝부터 임명한다.
“아빠는 이제부터 내 조수 해.”
그리고는 완전 신이 나서 이런 좋은 날을 그냥 보내면 안 된단다. 축하파티를 하자면서 자기가 지갑을 보이며 쏘겠단다. 들꽃 향기 아저씨 아줌마와 중국집에서 저녁을 먹자고 전화해 보라고 난리다. 들꽃 향기 내외분은 정선에 와서 8년을 변함없이 만나왔던 귀촌 선배다. 그분들을 만나면 특히 상욱이가 너무 좋아하고 편해한다. 오늘 상욱이에게 축하할 일이 있다는 소리에 그분들은 운영하시는 찻집의 문까지 닫아놓고 약속 장소로 오셨다. 올해부터 반장이라고 면사무소에서 전화 왔다는 소리에 들꽃 향기 아저씨 아줌마는 진심으로 축하를 해 주신다. 들꽃 형님은 상욱이에게 위엄 섞인 공갈도 치신다.
“상욱아 난 이장을 했었어~, 그러니까 반장이라고 까불지 마~”
저녁을 먹고 정선의 명소이자 작은 문화공간인 ‘들꽃 향기’ 찻집으로 축하용 케이크를 사서 갔다. 손님들이 몇 분 기다리고 계셨다. 미안한 마음에 그분들에게 사과하고 케이크에 불을 붙이며 다시 축하했다. 카페에 놀러 오셨다가 축하파티에 합류한 들꽃 아저씨의 지인분이
“다들 조용히 하고 상욱이 이야기 한번 들어봅시다.”
한다. 올해부터 상욱이가 우리 마을 반장을 하기로 했다는 소리에 신기한 듯 상욱이를 연신 쳐다보시다가 상욱의 변을 들어보자는 거다. 갑자기 시킨 이야기인데도 상욱이는 당황하지 않고 일어서서 말을 했다.
“제가 반장이 됐거든요, 그래서 마을을 위해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서 마을이 잘 되면 이장도 되겠습니다.”
제법 가관이다. 상욱이 이야기가 끝나자 그 아저씨는 상욱이에게 항상 수첩을 갖고 다니고, 어른들 만나면 인사 잘하고, 심부름도 잘하고, 마을 어른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 잘 적어놓고, 등등의 반장을 잘하라고 교육을 한다. 상욱이는 또 진지하게 그 아저씨의 이야기를 두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으고 듣고 있었다.
“네” “그럼요.” “잘 알겠습니다.”
적당히 추임새 넣듯이 맞장구를 치는 상욱이의 눈이 초롱초롱하다. 창밖으로 유난히 별이 반짝인다.
여기 정선에 온 지 8년 만의 조그만 결실이자 시작이다. ‘오랫동안 꿈을 꾸어온 사람은 마침내는 그 꿈을 닮아간다.’라는 말이 있다. 그 꿈이 이제 시작되는 것이다. 우선 이 작은 마을부터 이 아이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꿔 나가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아이들도 참여시켜주면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시작을 상욱이가 이제 해야 한다. 반장이라는 감투에 즐겁기만 한 상욱이를 보며 흥분되기도 했지만 앞으로 전개될 일에 대해 부담스럽기도 한 날이었다.
기회는 우연히 오는 게 아니라 준비된 사람에게만 오는 하늘의 선물 같은 것이다.
2015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