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나의 공동체 동지 한 분에게 공개편지를 카페에 올린 적이 있었다. 그 글을 쓰기는 빨리 썼지만 올리기 전에 보름을 넘게 망설였었다. 공동체를 만들려는 많은 사람이 공동체의 목적과 방향을 잘못 잡으려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본의 아니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것도 같아서였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장애인 공동체로 ‘캠프힐’ 공동체가 알려지면서 발달장애의 부모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나도 그런 공동체를 목적으로 희망을 품기도 했었다. 그러나 장애와 공동체에 관해 공부하면 할수록 그 또한 문제가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의 우리나라 시설보다는 좋은 시스템이지만 ‘캠프힐’ 역시 격리 시스템이라는 사실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누군가를 돌보기 위한 것이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그런 구조는 지속하기 힘들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또 발달장애인의 삶이 돌봄을 전제로 생각한다는 것도 문제였다. 그들의 삶의 과정에도 성장기가 있어야 하고 성장기를 잘 관리하면 독립된 삶도 가능할 것이라는 내 판단이었다. 그 가장 중심에 부모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 부모들이 자각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쓴 글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용기를 내 브런치에 공개해 본다.
안녕하세요, 먼 여행 다녀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영국까지 가셔서 견학하신 Botton Village는 ‘캠프힐’ 성인 공동체 중에서 가장 역사가 길고 규모가 큰 곳이라 들었습니다. 자세한 견학 소감은 다음에 뵙고 듣기로 하겠습니다. 항상 밝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사시는 S 어머니의 발걸음이 우리에게 얼마나 용기를 주고 계시는지 모두 느끼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밝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동지로서 또 이 일에 대한 여러 가지를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제가 생각해 오던 것을 말씀드려 보고자 합니다.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고 내 아이가 행복하게 사는 걸 원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아이들에 대한 행복은 개념이 좀 달라져 있습니다.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우리 아이들의 자기 발전에 대한 공통적인 목표와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건 복지 선진국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지 선진국이라 불릴 만큼 국가의 훌륭한 복지 서비스 제도가 있는데도 ‘라쉬‘나 ’캠프힐‘ 등 사설 복지 공동체가 생기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끊임없이 복지에 대해 요구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건 복지에 대한 근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좋은 집과 부대시설, 맛있는 먹거리와 자유로운 공간 그리고 자원봉사자들’ 생각만 해도 벅찬 우리의 꿈입니다. 그런데 그런 곳이면 될까요? 밀림의 야생 맹수를 훌륭한 시설에 데려다 가둬두고 맛있는 먹이를 주면 그들은 행복할까요? 행복은 정신적이지 육체적인 만족에서 오는 게 아닙니다. 결국은 하드웨어가 답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복지정책의 입안자들이나 관련 종사자들은 모두 하드웨어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고 복지 수혜자 당사자들이나 가족들은 인권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인권은 하드웨어적 발상으로 해결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해결이 안 되고 비용만 많이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현재보다는 20대의 우리 아이들이, 30대 그리고 그 이후의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려면 어떻게 되어야 하나? 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부모가 없어도 걱정 없이 살 수 있어야 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고 구상하는 부모들이 먼저 모여야 하고 서로의 의견을 교환해야 합니다.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먼저입니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각자가 자기 분야에 소속이 되어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할지를 먼저 화두로 꺼내야 합니다.
모든 일은 목적과 목표가 정확해야지 방향이 바로 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이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내 아이가 행복해지는 것이 목표인지 아니면 내가 이 짐에서 벗어나고 싶은 건지부터 냉정하게 시작해야 합니다. 당연히 내 아이의 행복이 목표라 생각하시겠죠. 그러면 내 아이가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하게 사는 건지도 한번 따져봐야 합니다. (이 사회에 존재하는 내 아이에 대한 선입견에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머리가 아파집니다) 그래도 그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더욱더 구체적으로는 내 아이가 안전하게 보호만 받고 살기를 원하는 건지 아니면 내 아이가 인간으로 존중받고 살기를 원하는지에 따라 방향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적장애인들이 인격적인 대우를 받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캠프힐’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캠프힐’ 안에서 보호받고 살고는 있지만, 그들은 장애인으로서 행복하게 보호받고 살고 있을지는 몰라도 보통사람들처럼 권리와 의무를 갖고 사는 것 같지 않습니다. 최대한의 안전장치와 주어진 조건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겠지만 결국은 격리 수용인 것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내 아이의 장애를 ‘불가능한’으로 받아들이고 식물인간과 같은 ‘안전한 삶’ 만을 원하면 럭셔리한 시설 형식으로 만들면 됩니다. ‘캠프힐’을 적당히 벤치마킹하고 외부와 격리해 운영하면 되는 겁니다. 사회 복지사와 특수교사를 고용하고 또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사람들을 고용해 쓰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점은 지속적인 자금과 철저한 관리 그리고 ‘나 이후’의 문제인 영속성이 문제가 되는 겁니다. 좋고 건전한 뜻으로 만들어졌던 많은 시설이 처음의 훌륭한 뜻이 사라져 버리고 비리의 온상이 되어 장애인들을 착취하고 노동을 시키는 곳으로 변해버린 이유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뭘 만들려고 하는지? 어떻게 만들어야 우리 아이들의 삶이 행복해질 수 있는지? 또 어떻게 해야 지속적인 유지가 가능해 ‘나 이후’에도 걱정 안 해도 되는지? 하는 부분이 먼저 계획이 잡혀야 하는 겁니다. 이 부분은 나 혼자 생각해서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가 모여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서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지금까지 이 일을 전문가들에게 맡긴 결론이 현실이라면 이제 미래는 ‘우리’가 모여서 방향을 잡아야 하는 겁니다. ‘캠프힐’도 그렇게 시작이 된 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우리 가족들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려면 우리 아이들의 인권과 이 사회에서의 자리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격리 수용의 대상이 아니라 잘 가르쳐서 자기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줘야 하는 사람으로 인정해야 하는 겁니다. 그렇게 사회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시작이 저는 ‘자립형 복지 공동체’라 생각합니다. 이 아이들에게 맞는 교육을 해 생산성을 만들어 내고, 그 생산품들을 십시일반 우리 가족들이 소비해서 자금원을 만들고, 선배들이 만들고 후배들이 그걸 이어받고, 또 그 후배들이 유지해 나가는 형식의 지속적이고 영속적인 공동체 시스템만이 바른 시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들 심각하고 딱딱한 이야기들을 싫어하고 피하는 것 같아 고민을 많이 해 봤습니다. 그래도 제가 먼저 했던 고민과 생각을 알려 드리는 게 소통의 시작인 것 같아 나름 최대한 간추려 봤습니다.
2014년 정선에서
2020년 12월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