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의 또 다른 해석, ’ 가능한 목표’

by 상욱애비


내 아이를 키우면서


‘이 아이들이 제대로 인정받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아이를 어떻게 교육하면 이사회에 잘 적응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런 종류의 화두가 항상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결론은 ‘현 사회 시스템으론 불가능하다.’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 사회의 구조가 평균 IQ 100 정도의 사람들이 살기에 적합하게 만들어져 있어서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살기에는 이사회가 너무 능력 우선주의, 개인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치 전문 육상선수들이 뛰는 경기에 유치원생 어린이를 참가시키는 격입니다. 게다가 경주의 룰도 뛰는 방법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고 말입니다. 정말 너무나 UNFAIR 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리더나 정부는 ‘사회복지’라는 큰 틀에서 이 문제를 다루어 버립니다. 이 아이들을 교육해 개발해 보거나 근본적인 문제에서 다루지 않고 말입니다. 특히 정부는 이 아이들 문제를 개인 가족의 문제로 다루어 이 아이들의 탄생과 더불어 육아, 교육, 취업 등 삶의 전반적인 문제와 노후 문제를 아이들의 부모가 모든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 거대한 사회에서 각 개개인이 문제 해결을 해야 하니 그 불가능한 미션에 결국은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절망적인 표현이 나오는 것입니다.  



많은 부모가 자신의 아이들을 어떻게든 사회에 진출시켜 보려고 합니다. 아이의 능력을 극대화해 사회에 진출시켜 보려 하지만, 그건 아이 시각에서 보면 ‘슈퍼맨’을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그렇게 교육해 봐도 ‘나중에 부모가 없을 때 그 아이 혼자 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에 의욕을 잃게 되고 맙니다. 결국, 지금 사회의 전반적인 시스템은 우리 아이들 측면에서는 전혀 맞지 않는 것입니다.  



현재 사회에서 장애인들을 포함한 사회의 소외계층이 완전한 시민으로(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사회 속에서 살 수 있을까요? 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사회 불필요한 존재로 얹혀사는 것이 아닌 조금 부족하지만,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을 받고 살려면, 그런 사회로 사회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회가 저절로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기존 사회를 인정하고 기존 사회 속에 또 하나의 ‘세미 사회’를 만들 것을 제안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경쟁이 아니라 같이하는 사회, 서로를 존중하고 조금 부족한 것을 인정하며, 빠른 것보다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사회 노동생산성에 따라 인간의 가치가 결정되지 않는 사회. 그런 사회면 좋겠습니다. 그런 개념을 기본으로 마을을 만들어야 합니다. ‘캠프아라리’라 함은 그런 작은 사회를 통칭하는 개념입니다. 서로 도와가며, 서로 인정하고, 서로 사랑하는 모두가 공동책임인 마을.  



우리 장애인 가정들의 삶의 패턴과 장애아동들의 성장 과정을 보면 정말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형제에게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교육하고 나중에라도 그 아이에 대한 부담과 책임을 지라고 가르치기도 하지만 과연 그런 방법이 옳은 방법일까요? 이 사회의 상황에서 보면 장애 형제를 돌봐야 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을 배우자로 맞이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결국, 형제가 부담인 상황이 되어버리는데 그런 상황을 만드는 게 과연 옳은 걸까요? 아이들의 미래에 관한 생각을 진지하게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장애인과 같이 사는 사회란 어떤 사회일까요?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정신과 철학, 문화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삶의 패턴을 보면 부모의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태어난 가정에서조차도 혼자 알아서 해결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까요. 그래서 자기의 미래에 관한 주장을 전혀 펼칠 수가 없습니다. 부모님들은 아이를 위한다고는 하지만 결국 자기 생각 범위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들 또한 고정관념에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부모는 혹독한 훈련과 교육으로 기존 사회에 적응시키려고 노력하고 어떤 부모는 아예 처음부터 포기하기도 하고 하지만 아이가 결국, 성인이 되었을 때는 다 똑같은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 스스로 결과가 뻔한 아이의 미래를 그냥 내버려 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기존의 사회에 아이들을 적응시키고 살게 하려는 노력보다 아이들을 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 하여야 합니다. 우리 아이가 기존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가기보다는 사회가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으로 변화하는 게 가능성이 더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이 ‘캠프아라리’ 기본계획을 보고 ‘꿈’이라고 말씀들 하셨습니다.

그런 곳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저보고 꼭 만들어 보라고 말씀들 하셨습니다. 그 말씀들 속에 녹아있는 뜻을 저도 압니다. ‘불가능한 일을 한다고 떠들며 힘 빼고 있네.’ 저도 힘 빼지 않고 누군가가 그렇게 만들어 놓으면 그냥 나중에 들어가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 ‘불가능’이란 말을 누가 만들었을까요? 지금도 아닌 옛날에 만들어진 말이고 그때는 불가능이었던 일들이 지금은 많이 현실이 되어 있습니다. 신화 속의 달이 오늘날의 달이 되었고, 지구 반대편과 걸어 다니면서 서로 대화하는 불가능이 가능해진 세상입니다. 정말로 많은 ‘불가능’들이 지금 이루어져서 우리가 별다른 감동 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주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불가능’이란 말의 깊은 뜻은 부정적인 ‘안 된다'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반드시 해야 할 가능한 목표‘였던 것입니다.



왜 그런 불가능이 가능해졌을까요? 그건 많은 사람의 염원과 노력이 모여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지구는 네모다’라는 압력에도 ‘지구가 둥글다’를 주장했고 또 지구 반대편에 사람이 산다는 것을 알아냈고, 전기를 발명하고, 전화를 만들고 등등 수많은 사람의 아이디어와 노력이 결국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겁니다. 마치 수백 년 동안 떨어진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이 말입니다.



그렇듯이 우리 하나하나의 아이디어와 노력이 모이면 우리 아이들의 참여도, 인권도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JUST DO IT' 나이키 광고에 나오는 말입니다. 저는 ’MUST DO IT' 이라고도 생각합니다. ‘MUST DO IT'는 마음가짐이고 ‘JUST DO IT'는 액션입니다.



얼마 전 사회적 기업가 K 씨와 통화를 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상욱이 아버지는 당사자고, 우리(복지나 장애 정책 관련자)는 관련 직업인이야. 절실함에서 차이가 나지.”

하셨습니다. 그분은 나의 ‘캠프아라리’ 동지로써 ‘캠프아라리’ 때문에 알게 된 많은 분 중의 한 분입니다. 결국, 그런 분들도 우리 당사자의 움직임을 갈구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결국은 우리가 시작해서 나가야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사회를 변화시키자!’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옛날부터 계속 사회는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변화가 되는 중입니다. 이 사회란 거대한 배와 같아서 방향만 살짝 틀어 놓으면 그 방향으로 가는 겁니다. 이 사회에 우리 아이들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우리 스스로 참여를 하고, 의견을 내고, 또 그러한 사람이 나오면 크게 손뼉을 쳐서 그런 이야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음을 알리고 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진정 '우리 아이는 이러한 곳에서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고민과 의견을 내주어야 하는 겁니다. 억지를 쓰지 않고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겁니다. 그러한 염원이 모이면 사회가 동참할 것이고 그러한 것들이 사회의 방향을 바꾸는 겁니다.



MUST DO IT!!! JUST D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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