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꿈……. 그리고 희망
여기 산골의 봄은 소리와 빛으로 먼저 다가온다. 겨우내 얼어붙어있던 계곡물 녹아내리는 소리가 졸졸거리고, 진한 잿빛의 충충한 바탕색에 소나무의 푸른색만 돋보이던 건너 산에는 노란 파스텔조의 번짐이 연하게 느낌으로 온다. 동박 꽃이 피었나 보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 주소. 싸리골 올 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임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언제 들어도 구슬픈 정선 아리랑의 노랫가락처럼, 올봄이 오기를 짝사랑하는 처녀 마음으로 기다리던 나는 오는 봄을 맞이할 겸 마실을 나섰다. 들뜬 마음으로 나가려던 내 눈에 집 앞의 산수유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나뭇가지 곳곳으로 노란색 꽃망울이 이슬처럼 맺혀있다.
봄, 드디어 기다리던 봄이 온 것이다.
나가면서 보니 마을 사람들도 여기저기서 봄맞이 준비로 한창이다. 강원도 산골이라 따뜻한 남도보다는 늦지만 지나다니며 보이는 하우스에는 밭에 심을 모종들이 파랗게 싹이 올라온다.
나는 올봄부터 공동체의 물리적 기반을 마을에서 닦을 계획이었다. 귀농 10년 차이기도 하고 또 더 이상 늦춰서도 안 될 듯해서이다. 지난겨울부터 마을 분들에게는 마을기업으로 ‘웰빙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를 함께 해 보자고 제안을 했다. 그동안 단순히 그해 생산물만 판매하거나 건 나물만 판매해오던 마을 사람들이기에 2차 가공이나 완제품을 프랜차이즈 형식으로 직접 사업을 하자는 이야기에 모두들 엄두를 내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유기농만을 생산하는 마을이 될 수가 있고, 청정 마을을 기반으로 ‘웰빙 1박 2일 체험 주말 장’ 등이 가능해진다. 일자리 창출과 안정된 수익성을 바탕으로 젊은 귀농 가족들이 들어올 것이고 우리 마을은 젊고 살기 좋은 마을이 될 것이다.라는 꾸준한 설득에 마지못해 마을 사람들은 나에게 세뇌를 당해가고 있었다. “이해는 잘 안 되지만 남 사장이 한번 해 보면 내 따라는 갈게. 아 참 그렇게 되기만 하면 정말 좋지~” 마을 어르신들의 말들이었다.
내 공동체 구상에 ‘마을기업’이 필요한 이유는 명분과 실리 때문이었다. 공동체의 기반인 마을이 단합될 수 있는 이유와 자생할 수 있는 수입, 그리고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분위기가 적당히 무르익었다는 생각에 마을 회관에 사람들을 모아 마을기업과 공동체에 대한 사업계획을 발표하고 참석자 전원의 동의를 얻었다. 그리고 그 시작을 올해부터 하기로 한 것이다. 또 개인적으로는 집의 데크를 개조해 카페 형식의 간이 세미나실을 만들었다. 그동안 내가 주장하는 공동체 ‘캠프 아라리’에 관심을 가지고 집을 찾아온 사람들을 좁은 집에 재우면서 제대로 이야기할 공간이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껴서이었다. 그리고 좁은 주차장을 넓히고 집터 겸 비닐하우스의 터를 만들기 위한 작업으로 앞의 경사진 밭 터 1,000여 평을 평평하게 정지작업을 하기로 했다. 산을 깎아 평지를 만드는 대공사였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공동체 ‘캠프아라리’의 필수인 공동 거주센터의 터를 닦아 놓으려는 것이다. 그동안 ‘과연 가능할까? ‘를 생각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고, 가능한 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과 계획을 설계하느라 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제 액션을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봄에 씨를 반드시 뿌려야만 가을에 거둘 수 있다. 생각만으론 어떤 일이든 성과를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공동체에 살고 있으면서 공동체가 생소했다. 함께 사는 세상에서 속에서도 무한경쟁만이 성장의 길이라 생각했고 거기서 이겨야만 성공적인 삶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었다. 그러다 내 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내 아이는 남달랐다. 남들과 같이 경쟁을 할 수 없는 아이였고, 그 자신도 경쟁보다는 함께, 같이 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리고 주변을 돌보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내가 생각하는 경쟁만이 성장의 길이 되는 세상에서 내 아이는 행복하게 살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던 방식의 세상에선 경쟁력 자체가 없는 아이. 내 아이가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서 살아간다는 상상은 할 수가 없었다. 답답한 일이었다.
난 어릴 때 되고 싶은 게 많았다. 위인전기 전집을 읽었을 때 매일 꿈이 바뀌기도 했고 슈바이처가 될지 에디슨이 될지 나폴레옹이 될지를 고민한 적도 있었다. 또 어떨 때는 만화방 주인이 되고 싶었고, 과자 공장 사장이 되고 싶었다. 그러다가 조금 커서 화가들에 관한 책을 읽게 되었고 난 그들의 자유로움과 독특함에 매료되어 화가의 길을 결심했다. 물론 그 배경에는 황금박쥐를 잘 그리고, 미술대회의 상을 제법 받아온 자신감이 있기도 했다. 그 화가의 꿈이 지금의 공동체로 바뀌기 전까지 꽤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결혼할 때도 장사할 때도 사업할 때도 모두 꿈을 이루기 위한 조건을 만들어 간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꿈을 이루기 전에 먼저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장애아이의 아버지가 되어버린 나는 내 개인의 꿈을 가족의 행복과 자식의 미래와 교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 가족의 행복의 조건에는 ‘남다른’ 내 아이의 행복이 가장 중심에 있었다.
어느 사람에게도 자식은 미래일 것이고 꿈일 것이다. 자식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막내아들인 면의 죽음을 목격한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에 ‘하늘이 어찌 어질지 못한가?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 같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마땅한데 천지가 깜깜하고 태양이 빛을 잃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딜 갔느냐?.’라고 그 슬픔을 절규했다. 역사 속의 영웅이나 나나 아버지는 모두가 같은 마음인 것이다.
나도 내 아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냥 보통사람처럼 남들과 어울려 낄낄거리기도 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들을 누리며 말이다. 내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가 내 고민의 주제였었고 나는 그 답을 공동체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부족해도 ‘우리’ 면 그 부족함을 서로 메울 수가 있을 것이다. 모두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능력의 많고 적음을 다양성으로 이해되는 세상, 늙어서 소외당하고 ‘실버’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변화된 현대판 고려장으로 격리되는 세상이 아니라 살아온 경험과 지혜로 참여할 수 있고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 톱니바퀴처럼 하나하나는 보잘것없을 수도 있지만 서로 맞물려 전체가 되는 사회. 크고 작은 각자가 할 수 있는 역할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며 돌아가는 세상. 그런 공동체에서 ‘우리’로 살고 싶은 것이다.
멀리서 볼 때는 있는 듯 마는듯하던 산수유나무의 노란 꽃봉오리가 조금 가까이 가니 아침 햇빛을 받아 크리스마스트리의 작은 등처럼 밝고 아름답다. 꽃봉오리의 작은 면면들이 햇빛을 반사하며 반짝거린다. 이게 살아있는 노란색이다. 너무 예뻐 꽃봉오리를 배경으로 셀카도 찍어보고 꽃만 확대해서 찍어도 본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카메라도 자연의 살아있는 색을 담지 못한다. 살아있다는 것은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실제 꽃봉오리는 머물러있는 사진 속의 꽃봉오리와는 달리 활짝 필 수 있는 미래가 있는 것이다. 이 봄이 이토록 설레는 이유는 내 아이도 꿈꿀 수 있는 세상에 대한 내 꿈이, 희망이 있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