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학습 날 아침
현장학습 날, 그날 벌어질 일은 생각지도 못하고 아침부터 상욱이는 신이 났다. 관광버스를 타고 한 시간 거리의 놀이공원을 간단다.
“야, 상욱아 무슨 현장학습을 놀이공원으로 가니?”
“아빠, 원래 현장학습은 놀이공원 가서 놀고 오는 거야. 선생님이 그랬어.”
아이는 평소보다 목소리가 한 톤 높아져 있다. 신이 나서 이것저것 가방에 챙기다가 어제 가져가지 말라고 한 MP3를 다시 가져가겠다고 조른다.
“아부지 정말 가져가고 싶어. 응? 내가 조심할게. 차 타고 가면서 노래 들으려고 그래. 이번 한 번만 ”
내가 대답이 없자 이번에는 엄마에게 가서 애교질이다.
“너 새 MP3 가져가서 잃어버리거나 깨지면 네가 책임져야 해. 다시 안 사준다.”
아내의 협박성 승낙이 떨어졌다. 결론이 이렇게 날 줄 알았다. 아내는 아이의 애교 공격을 버티지 못한다. 엄마의 승낙으로 기세가 등등한 아이는 나한테 와서 혀를 메롱 내밀면서 엉덩이춤을 춘다. 그래 그렇게 가지고 가고 싶으면 가져가라. 걱정은 되지만 벌어지지도 않은 사고를 염려해서 아무것도 못 하게 하면 무슨 재미로 살까 싶었다. 그래라, 가끔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아야지.
아이의 보물 1호
지난달인가 일요일 아침 아이가 호들갑을 떨면서 나를 찾았다. 컴퓨터에 새로 MP3가 나왔는데 액정이 있다는 거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노래를 좋아하고 따라 부르곤 했다. 누나가 쓰던 작은 MP3가 신기하다며 탐을 내더니 누나에게서 결국 얻어냈다. 그때부터 아이는 어디를 가든 항상 그걸 들고 다녔다. 어느 날 뮤직비디오를 한번 보더니 이번에는 뮤직비디오에 꽂혔다. 자기 방에서 컴퓨터로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춤을 따라 추는 거였다. 뮤직비디오에 빠진 뒤에는 MP3보다는 누나가 쓰는 갤럭시 탭을 주로 빌려 썼다. 그러면서 MP3로 영화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했었다. 그러다가 액정이 달린 MP3가 출시된 걸 발견한 것이다. 그걸 본 아이는 그냥 사랑에 빠져버렸다. 졸졸 따라다니며
“아빠, 나 이 MP3만 사주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하고 춤 연습도 열심히 해서 가수 될 수 있는데….” 하면서 조른다. 노력이 가상하기는 했지만 사주지 않았다.
나는 아이에게 친구들이 눈독 들일만 한 것을 웬만하면 사주지 않는다. 친구들과 그것을 이유로 갈등이 일어나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될 수 있으면 아이 주변에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안 사주었는데 이놈이 사촌 누나에게 전화해서 그걸 선물로 받아냈다. 그 집요함에 감탄하며 절대로 학교에는 가져가지 말라고 하고 그 MP3를 승낙했다. 3인치 정도의 액정이 달린 MP3는 그날부터 아이의 보물 1호였다. 그 MP3를 자랑하고 싶은 거다.
기다리던 관광버스가 도착하고 도움 선생이 차에서 내려왔다.
“아버님 오늘 현장학습은 경기도에 있는 모 인권센터로 가서 인권교육과 성교육을 위한 현장학습을 하는 겁니다. 현장학습을 하고 오는 길에 놀이공원을 가서 조금 놀고 오는 거예요. 모든 비용은 학교에서 부담하고요, 학생들은 용돈 조금만 가져가면 될 겁니다. 아버님”
밝게 웃으며 현장학습에 관해 설명하는 선생님이 씩씩하다.
"선생님 오늘 수고가 많으시겠네요.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배웅하며 아이가 MP3를 가져간다고 그 부분에 관심 좀 가져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도움 선생은 괜찮다며 아버님 걱정이 너무 많으세요 한다.
MP3 분실사건
버스가 오후 6시쯤 학교에 도착한다는 전화를 받고 아이를 데리러 나갔다. 차에서 내려오는 아이 표정이 안 좋다.
"아버님 어떡하죠? 상욱이가 MP3를 분실했나 봐요. 친구들에게 빌려주고 했는데 잃어버렸다네요. 죄송합니다."
하며 MP3 분실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선생님의 설명에 걱정이 먼저 되었다. 단순 분실이면 그나마 괜찮다. 무슨 일이 있었나 아이들을 쳐다봤다. 아이들이 내 눈길을 피한다. 상욱이는 아빠가 와서인지 억울한 표정을 과장되게 짓고 있다.
"아빠 대성이가 안 줬어. 그리고는 나한테 줬다고 거짓말을 해."
눈에 물기가 어리고 얼굴이 빨개진다. 받아주면 울음이 터질 게 뻔했다.
"그런 게 아니야, 선생님이 친구들에게 물어봤대. 네가 잃어버린 거야. 이런 경우는 친구들 탓하면 안 돼. 그러게 아빠가 가져가지 말라고 했잖아. 왜 말을 안 들었어!"
먼저 아이를 야단쳐서 진정시키고 마지막으로 MP3를 빌려줬다는 대성이를 찾았다. 대성이는 어색한 몸짓으로 어깨를 들썩이며 자기가 빌린 건 맞는데 돌려줬다는 것이다. 친구에게 빌려주고 못 받았다는 아이와 주었다는 친구의 말이 엇갈리고 다른 친구들은 전부 모르겠다며 피한다. 결국, 선생님은 아이의 분실로 사건을 무마시켜 버렸다. 그렇게 보물 1호 MP3는 아이의 곁을 떠났다.
아버님 상욱이도 거짓말을 해요
문제는 MP3의 분실보다 그로 인한 상황이었다. 내가 상욱이 말만 믿고 아이들을 추궁할 것처럼 보였는지 도움 선생이 옆으로 와 한마디 한다.
“아버님 상욱이도 거짓말을 해요.”
상욱이 말이 거짓말이라는 이야기다. 차분한 톤으로 말하며 나를 쳐다보는 입가에 살짝 미소가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은 뭘까? 인제 그만하라는 결정적인 한 방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황당한 생각에 잠깐 말이 막혔다. 세상에 상욱이를 정말 바보로 아는 걸까? 아님. 천사로 아는 걸까? 자기 방어를 위한 본능적인 거짓말도 못 한다고 생각하는 선생의 화장기 많은 얼굴이 얄밉게 보인다. 도움 선생을 본 첫인상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너무 화장이 진해 거부감이 들었던 생각이 갑자기 났다. 내가 조금 냉정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럼요 선생님 당연히 상욱이도 거짓말을 하죠. 세상에 거짓말을 안 하는 사람도 있나요? 선의든 아니던…. 선생님이 그걸 구분해 내셔야죠. 제 아이가 아니라 이 상황에서는 누가 거짓말을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전부 겁먹고 자기 방어를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상욱이는 무서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은 해도 누군가에게 죄를 덮어 씌우는 거짓말은 못 합니다."
예상 못 했는지 나의 강력한 반발에 선생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확연히 드러났다. 내가 너무 몰아세웠나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나는 이런 일은 아직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선생님의 처리방법에 따라 아이들이 상처를 덜 입는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순간적인 욕심에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이런 기회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돌려주는 용기를 가르치면 된다. 그게 교육이다. 아이들을 범죄자로 만들지 말고 교육적인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 공개적으로 문제를 만들지 말고 아이들과 상담하면서 ‘그럴 수 있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진정한 용기다.’ 고 가르쳐 줘야 한다. 이런 식으로 결론 없이 어정쩡하게 마무리하면 아이들 전부가 상처를 입는다.
내 어릴 때 종례시간에 '모두 눈 감고 돈을 가져간 아이는 조용히 손 드세요.' 하던 선생님이 떠올랐다. 다음날 우리 반 아이들은 어제 누가 손들었는지 수군거렸다. 소문의 그 애는 평소에 교실 한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던 별로 드러나지 않던 아이였다. 그날 이후로 그 애는 아무와도 친구가 되지 못했다. 나도 그 아이를 따돌리는 일에 동참했었다. 결국, 그 일로 도둑으로 몰려 그 아이는 전학을 가버렸다. 몇 년을 같은 반이었던 그 친구는 졸업앨범에도 흔적이 없었다. 그때의 일이 가끔 그 시절의 동창을 만나면 술잔을 돌리며 한숨을 짓게 했다. 사람은 가끔 나도 모르게 죄를 짓고 산다는 걸 느끼게 되는 일이었다.
사실 상욱이도 가끔 거짓말을 한다. 밥 먹을 때를 놓치고 일을 하면서 시간밥을 먹는 아이에게 미안해서 ‘배고프지?!’ 하면 ‘아니 괜찮아. 아직 안 고파.’ 한다. 엄마 아빠를 배려한 선의의 거짓말이다. 또 장난감이 갖고 싶을 때 사달라고 조르면서 이번만 사주면 다시는 사달라고 안 한단다. 이것도 거짓말이다. 야단맞을 때 또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잘못을 확실히 깨달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양치기 소년처럼 재미로 남들에게 거짓말을 한다든지 누군가를 곤란하게 만들기 위한 그런 악의적인 거짓말은 하지 못한다. 착해서 할 줄을 모르는 것이다. 그런 게 아이가 타고난 천사의 조건인 것이다.
집에 오면서 MP3 사건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아이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상욱아 아까 사실은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한 거는…….”
말을 꺼내자마자 상욱이는 더듬거리며 말을 한다. 할 말이 많이 쌓여 있었다는 증거다. 또 뭔가 많이 억울한 심정이라는 표정이다.
“괜찮아. 나도 이해할 수 있어. 선생님이 나도 거짓말한다는 거잖아. 앞으로 거짓말 안 하도록 할게. 거짓말 안 하면 되잖아. 그런데 아까는 거짓말이 아니야. 왜 안 믿어 나를?"
"그래, 아빠는 네 말을 믿어. 그런데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말을 할 때 너는 누구 말을 믿을래?"
"맞는 말을 하는 사람 말을 믿어야지”
“누가 틀렸는지 맞는지 어떻게 알아?"
"............"
"봐, 곤란하지? 누구 말이 맞는지 어떻게 알겠어? 그러니까 말이 순서가 잘 맞아야 해. 그래야 듣는 사람이 누구 말이 맞는지 알지. 그냥 무조건 내 말만 맞는다고 우기면 안 되는 거야."
또 억울한 모양이다. 뭔가 말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떠오르지 않나 보다. 얼굴이 빨개진다.
"이제부터 상욱이가 책을 열심히 읽고 말을 잘하는 법을 배우자. 다음부터는 이렇게 억울하지 않게."
나도 더는 어떻게 달래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냥 나를 달래듯 말을 하며 상욱이가 받아들이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상욱아, 세상은 가끔 억울한 일도 생긴단다. 아빠도 그런 경우가 많았어. 너무 억울해서 화가 많이 난 경우도 있어.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참는 수밖에. 그러니까 너도 참아야 해."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리는 상욱의 얼굴을 쳐다보기가 힘들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이런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억울함을 겪어봐야 그런 일에 대한 내성도 생긴다. 혼자 살지 않으려면 이 사회의 편견에 대한 내성도 키워야 한다. 씩씩하게 견뎌내고
결말
MP3 사건의 결말은 다음날 액정이 깨진 MP3가 아이 가방에서 발견이 되면서 밝혀지게 되었다. 도움반 친구 지용이가 대성이 그걸 넣는 걸 봤다고 선생님께 말했다. 대성이는 상욱이에게 잠시 빌려 노래를 들었는데 차가 흔들리면서 MP3를 떨어트려 액정이 깨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돌려주지도 못하고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는 선생님의 설명으로 사건은 종결되었다.
이 사건으로 힘들었던 것은 아이와 친구들의 마음이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었다. 변명하기 위해 아이에게 잘못을 덮어 씌우는 친구, 책임을 회피하려는 선생님과 아빠의 말다툼이 그날의 즐거웠던 기분을 일시에 날려버렸다.
사과
나는 이번 사건이 아이의 학교생활에 나쁜 기억으로 남지 않기를 바랐다. 이 사건으로 남은 학교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노력해야 했다. 먼저 선생님께 언성을 높인 부분에 대해 아이들 앞에서 사과하기로 했다. 선생님 권위를 세워주고 달래주는 게 좋다는 생각이었다. 그날의 아이들 마음도 달래줘야 하고……. 그래야, 아이의 남은 학교생활도 행복해질 수 있다. 아이가 볼모인 양 비굴하지 않아야 한다. 만만해서도 안 된다. 장애가 죄인 양 약점으로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당당하게 잘못한 사람들을 이해하는 넓은 자비심으로 포장해야 한다. 만남은 인연이고 관계는 만들어 가야 한다. 아이 주변을 좋은 관계로 인한 행복한 세상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그날 제가 너무 흥분해서 언성이 좀 높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도움반 아이들이 쳐다본다. 아이도 눈을 크게 뜨고 보고 있다. 아이에게도 아빠도 사과하는 것을 보여줬다.
"얘들아, 그날 아저씨가 너희들한테 미안해. 잘못했어. 한 번만 봐줘라. 내가 사과의 의미로 피자 사 왔거든, 그거 맛있게 먹고 용서해주는 거다."
아이들이 환호성과 박수를 친다. 피자의 인기다.
"저는 특히 도움 선생님이 장애에 대한 편견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날 제가 선생님을 오해하고 흥분했었나 봅니다. 그리고 사실 미성숙한 아이들에게 그런 잘못된 일은 항상 발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잘못된 행동을 고쳐주기 위해 교육이 필요한 것이고 선생님이 계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날은 내가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아버님 제가 더 죄송합니다. 이번에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먼저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좀 더 자신에게 정직하고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늘따라 화장기가 별로 없는 선생님의 밝게 웃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날 선생님은 상욱이와 친구들을 화해시키고 피자파티를 했다. 피자를 먹는 아이들이 시끄럽다. 나와 선생님에게는 신경도 안 쓰고 자기들끼리 떠들고 논다. 아이 목소리가 가장 크게 들린다.
에필로그
며칠 뒤 아이는 MP3 사건을 스스로 정리했다.
"아빠 오늘 내가 도움 선생님께 말했어. 내가 잘못했다고."
"응? 뭐를…."
"으응 현장학습 갔을 때 내 거 그 MP3 깨졌잖아. 그거 내가 사과했어. 앞으로 그런 거 학교에 가져가지 않겠다고. 괜히 가져가서 선생님만 화나게 만들고 죄송하다고 했어."
갑자기 뭐라고 대꾸할 말이 생각이 안 났다. 자기 때문에 아빠도 선생님도 힘들게 했다는 생각을 하는 아이가 어른스럽게 보인다. 아직 그 생각을 마음속에 넣고 있던 내가 더 좀스럽게 느껴진다.
"선생님이 나를 안아줬어. 선생님도 미안하대. 나한테 그런 말을 해서."
"그리고 친구들도 전부 화해했어. 다들 사이좋게 지내자고 했어."
마음 한구석이 후련해진다.
"아빠 나 잘했지? 나중에……. 음 서울 갈 때 아빠가 MP3 사줘. 알았지? 흐 ”
남자애가 떠는 애교질도 징그럽지 않고 귀엽기만 했다. 분명 상욱이는 두뇌 활용도가 나보다는 높은 것 같다.
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