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에게 지고 싶다

by 상욱애비

나는 너에게 지고 싶다


요즘 아이와 운동을 많이 한다. 무엇보다 내 아이의 건강이 중요하다는 걸 절감한 것은 그 애가 심장 수술과 폐 수술 등 큰 수술을 겪으면서였다. 심장 수술 후에도 아이는 감기를 거의 매일 달고 살았다. 아무리 조심해도 일 년에 두어 번은 폐렴에 걸려 입원을 한다. 뭐 좀 가르치려고 하면 아프니까 제대로 가르치기도 힘이 들었다. 다시 검사를 해 보니 폐의 세균성 물혹 때문이었다. 결국, 왼쪽 폐도 반쯤 잘라냈다. 그때부터 아이는 살기 위한 운동을 해야만 했다.




여기 정선에 오기 전에는 태권도, 해동검도, 수영 등을 배우기는 했지만, 이곳으로 오고 나선 그런 곳을 다니기 어려웠다. 매일 집에서 그냥 생활처럼, 숨 쉬는 것처럼 운동을 시켰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요즘은 하루에 6~8km 걷고, 팔 굽혀 펴기, 윗몸일으키기 등의 운동으로 하루를 보낸다. 일주일에 4~5번은 한다. 아이는 그런 생활운동의 결과로 겨우내 감기 한번 걸리지 않았다. 이제 우리 가족 중 아이가 가장 잔병치레를 하지 않는다.


오늘도 아침 6시에 일어나서 걷기를 했다. 마을 입구의 '개미들 마을' 학교까지 집에서 4.2km 정도니 왕복으로 8.4km를 했다. 아이는 아빠를 이기는 것이 목표고 동기부여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부자, 내가 먼저 출발할 테니 아부자는 화장실 갔다가 우리 개들 먹이 주고 천천히 와"

한다. 상욱이는 자기 나름대로 별명을 잘 짓는다. '아버지' '엄마' '어머니'는 그냥 부르는 것이고 기분이 좋을 때는 아버지는 “아부자” 어머니는 “머니 마” 자기는 이름 남상욱을 성씨만 뒤로 돌려 “욱 짱남”으로 부른다.


아이가 먼저 출발하고 나는 한 10분쯤 있다가 '미루'(강아지 이름)를 데리고 출발했다. 한참을 갔는데도 보이질 않는다. 밭에 약을 뿌리고 계시던 동네 아주머니가 말한다.

"상욱이 혼자 빨리 걸어가던데요, 아빠한테 이긴다고."




처음 상욱이 심장 수술을 하라고 하던 의사가 말하던 소리가 다운증후군에 대해 잘 모르던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고 수술 결정을 머뭇거리게 했었다.


"곧 심장 수술을 하셔야 하고, 경우에 따라 2~3차까지 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심장이니만큼 수술 성공률도 만만찮고요."


그러면서 성장이 더디고, 면역이 떨어져서 계속 병을 달고 살 것이고, 오래 못 살 것이고 등등 자기가 아는 다운증후군에 대한 온갖 안 좋은 상황만 이야기해줬다.


마치 내가 듣기로는 수술을 해봤자 계속 고생만 하다가 빨리 죽을 수도 있으니 잘 판단하라는 소리(하지 말라는 소리)로 들렸다. 30 중반의 나로서는 너무 황당한 이야기였다. 갈등 속에 멈칫멈칫하는 사이 수술 시기를 놓쳐 아이만 힘들게 했다.


수술을 망설이는 나를 보며 아이 엄마는 안달하며 채근했다. 결국, 다른 심장 수술 권위자를 만나서 상담했고 수술하기로 했다. 그는 아이의 몸이 너무 약해서 지금은 수술할 수 없으니 수술할 수 있는 체력조건을 만들자고 했다. 그때까지도 아이는 잘 걷지를 못했다. 요즘 가끔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니세프의 아프리카 아이들처럼 삐쩍 말라 있었다. 그렇게 병원하고 집을 왔다 갔다 하면서 몇 달을 준비하다가 결국은 두 달 정도 미리 입원했다.


“수술 시기가 너무 늦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몸 상태가 좋아지면 수술을 바로 해야 할 겁니다. 더 늦어지면 쉽지가 않습니다.”


의사의 말에 먼저 입원하고 기회를 봐서 수술하기로 했다. 그래서 두 달 정도 미리 입원한 것이었다. 수술 때는 심장의 상태를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 사타구니의 굵은 혈관을 찾아 조영술을 시술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다고는 하나 중환자실에서 또 두 달이나 나오지 못했다.


아이는 가족에 대한 특별한 의지가 있었다. 태어난 지 이 주 만에 걸린 패혈증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특이하게 엄마나 아빠가 함께 있으면 놀랄 만큼 회복이 빨랐다. 담당 의사는 ‘아이에게 엄마가 치료제네요.’ 하며 우리가 중환자실에 좀 더 있어도 된다고 한다. 아이 엄마는 종일 중환자실에 붙어 있다가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수술이 잘 되었다면서 왜 이렇게 중환자실에 오래 있는지….’ 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퇴원할 때 담당 의사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다리 운동을 꾸준히 시켜주셔야 합니다. 조영술 시술로 양쪽 다리가 차이가 날 수 있어요. 걷는 게 조금 이상할 수도 있고요, 운동 많이 해야 할 겁니다."


수술 후유증으로 아이의 한쪽 다리가 가늘어졌다. 나는 제발 좀 제대로 걷기만을 바랐었다.

그랬던 아이가 이젠 나만큼 빨리 걷는다. 매년 심장 체크를 하고 전체적인 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을 갈 때 낯익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너무 좋아한다.


"완벽해! 상욱이는 그런데 살은 좀 빼야겠다. 심각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 소리에 요즘은 살도 많이 빼고 있다. 상욱이 자신도 몸짱이 되고 싶어 한다. 본인은 이제 졸업하면 본격적으로 헬스를 시작해 식스팩을 만들고 싶다면서 요즘 운동 강도를 높이고 있다. 내가 못 따라갈 정도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어가다 보니 학교 입구에 다다른 아이가 보인다. 다리도 짧은 놈이 빨리도 걸었다. 가까이 다가가는 나를 보고는 두 손을 번쩍 들며 소리친다.

"이겼다!"

"상욱아 아직 아니야, 집에까지 가야지."

일단 여기까지는 자기가 이긴 거고 또 집까지 가는 것도 자기가 이길 거란다. 그러면서 나를 놀린다.

"아빠는 다리가 짧아서 늦는 거야, 나처럼 다리가 길어야지."

“알았어, 아빠가 다음에는 꼭 이길 거야.”

“절대 안 될걸.”


참고로 내 키는 180cm이고 아이는 155cm이다. 그런데 계속 놀린다. 실실 웃어가면서. 자신감이 넘치는 자세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이놈아!

집에 오면서 아이를 보니 이제 제법 단단해 보이고, 자세도 바르다. 제대로 걷지도 못했던 아이가 이제 믿음직스럽기까지 하다.



그래, 상욱아 나는 언제나 너에게 지고 싶다.




2012년 쓰고 2020년 10월 최종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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