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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욱애비 Jan 02. 2021

정기검진 나들이

부제 한 아주머니의 자랑

정기검진 나들이     

    


세밑에 상욱이 정기검진을 받기 위해서 서울에 다녀왔다. 아이 정기검진은 여기 정선으로 오기 전부터 연중행사였다. 정선에서는 서울의 병원에 가기가 쉽지 않아 날을 잡아 종합적인 검사와 치과, 안과, 이비인후과 등 부분 검사를 모두 하루에 한다. 아이의 심장 수술을 집도한 이후로 계속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삼성의료원의 J 선생은 아이의 성장과 건강에 대해서 마치 자기 일처럼 좋아한다.      

“야, 상욱아 너 정말 멋있어졌다. 이제 청년 티가 나는데, 운동 열심히 하는구나. 정말 좋아졌다.”     

  

   

우리는 정선으로 온 이후로 아이 몸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고 있었다. 아이는 어릴 때 심장 수술을 했고, 폐를 절개하는 큰 수술도 했다. 심장 수술을 할 당시에는 체력이 안 돼서 두 달 정도 입원해 체력을 보강한 다음 수술을 하느라 육 개월을 꼬박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그다음에도 일 년에 반 이상을 감기를 달고 살며 병원을 안방 드나들 듯했다. 그랬던 아이가 올겨울에는 감기 한 번 안 걸렸다. 일 년 반 만에 간 치과에서도 치석 하나 없이 깨끗하다고 무사통과였다.      



나는 그동안 아이와 같이 병원을 드나들며 나름 터득하게 된 것이 있다. 첫째는 가능하면 큰 종합병원으로 가는 것이 좋고, 둘째 되도록 한 분의 의사를 선택해서 꾸준히 다니는 것이 아이를 위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아이가 아프든, 안 아프든 정기적으로 건강 체크를 하면서 의사에게 아이에 대한 정보를 계속 이야기하다 보면, 의사도 상욱이에게 조금 더 관심을 두고, 조금이라도 더 세심하게 관리해줄 것 아닌가.     



병원 대기실에 앉아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아이를 보더니 아내에게 슬쩍 말을 건다. 

“아이가 몇 살인가요? 우리 아이는 이제 대학 졸업하고 취직한 지 3일 됐어요.” 

아주머니는 아내의 대답은 듣는 둥 마는 둥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분의 아이도 다운 증후군인데, 그 아이를 대학의 사회복지학과에 보내서 졸업을 시키고 이제 관련 직종에 취업까지 시켰다고 한다. 전부 안 된다고 하는 아이를 잘 가르치고 다듬어 대학에 보냈고 취직까지 시켰으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어머니의 인간 승리, 그 가족의 대단한 힘이다. 얼마나 오래 그 자리를 유지할지, 아이가 자기 일에 얼마나 만족할지, 등은 나중 일이고 일단 취업을 시킨 것이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그 아주머니의 얼굴엔 자랑스러워하는 기색이 넘쳐흘렀고, 자신감에 가득 차 보였다. 마구 자랑하고 싶은데 자랑할 데는 정해져 있다.     



취직이 끝이었으면 좋겠다. 그 뒤부터는 그냥 신경 안 써도 잘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취직하고, 친구들도 생기고, 좋아하는 이성도 만나고, 결혼도 하고 해서 그냥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동안 가정이라는 목장에서 보호받던 새끼 양이 이제 야생의 동물들이 우글거리는 정글로 내보내 졌다. 착한 초식동물들도 있지만 약은 여우도 있고, 늑대도, 호랑이도, 악어도 있다. 이제 커서 대학도 나오고 했으니 그 정글에서도 잘 적응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야생의 정글에서는 약한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무리를 지어 맹수에 대응하며 산다. 이 아이들도 무리 지어 서로 도와가며 살면 좋을 텐데….     



이 세상의 구조는 경쟁의 구조이다. 야생의 밀림에만 있을 거로 생각했던 약육강식의 형태로 사람의 사회도 구성된 것이다. 오직 강자만 살아남는 세상인 것이다. 요즘 들어 더 느끼는 것은 예전에는 신사적인 면도 있었는데 이제는 마구잡이 싸움이다. 아예 어릴 때부터, 집에서부터 그렇게 가르친다. 아이가 유치원 가서 맞고 울고 들어오면 ‘왜 맞고 왔니? 너도 때려주지’하며 오히려 맞고 온 아이를 야단친다. 왜 싸웠는지를 물어보려 들지 않는다. 학교에서 싸워서 불려 가도 내 아이가 가해자면 집에 올 때 ‘잘했어, 맞는 것보다 때리는 게 나아’하며 등을 다독거린다. 시험 칠 때 커닝해도 안 들키면 되고, 학교 선생님도 부모도 들키지 않는 반칙은 칭찬해준다. 운동경기에서도 반칙은 안 들키면 되는 거다. 그뿐만 아니라 적당히 반칙하라고 허용도 해준다. 오히려 그게 관중들에게 더 인기가 있다. 우리 편이면 아무리 반칙을 해도 이기면 된다. 이제 반칙은 반칙이 아니고 특기이고 장기인 것이다. 나쁜 짓을 해도 우기면 되고, 정치가들도 거짓 공약이든 진실이든 당선되기만 하면 된다. 방송의 오락프로에도 ‘나만 아니면 돼!’라고 포효한다. 옆에서 누가 죽거나 말거나, 누가 굶거나 말거나, 누가 폭력을 당하거나 말거나 나만 안 당하면 되고 나만 손해 안 보면 된다. 이런 세상이다. 전부가 잔인한 사각의 링에 올라가 싸우고 있다.     



어느 책에선가 본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라는 말의 어원이 생각난다. 옛날 중국에 양반이 한 사람 있었는데 더러운 때가 몸에 너무 많아서 때 놈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때 놈은 이상한 습관이 있어서 변을 참지 못하고 아무 데서나 실례를 했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길 가운데 똥을 싸다가도 누가 지나가면 체면치레를 하기 위해 손으로 하늘을 가렸다는 것인데, 이때부터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송나라 사신 서긍의 고려도경이라는 책에 나왔다는 내용이다. 부끄럽되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안무치한 짓거리를 말할 때 이 말을 쓴다. 다시 말해 어설픈 수작으로 진실을 가리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의 세상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정부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 만들어 쓰는 복지예산마저 전부 자기네들이 더 약자라고 우겨 받아간다. 진짜 약자들은 소리도 제대로 내보지도 못한다. 가난해서 굶는 아이도, 급식이 쓰레기 같아서 못 먹겠다는 아이도 모두 무상급식을 한다. 5세의 이하의 아이면 전부 생육 비를 지급한단다. 신청만 하면 다 준단다. 그 아이 중에는 그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한 아이도 있지만, 또 그 아이 중에는 몇백만 원 하는 유모차 타고, 전부 수입 옷만 입고, 수입 유기농 이유식만 하는 아이도 있는데 그게 공평한 복지란다. 그런 식으로 복지를 하면 사회적 절대 약자인 우리 아이들의 복지는 과연 이루어지기나 할까? 이 아이들은 복지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인데…. 옛말에 “짐승은 수치를 모르지만 만족할 줄 알고, 사람은 수치를 알지만, 만족을 못 한다.”라고 했다. 그런데 요즘은 수치도 모르고 만족도 모르는 반인반수들이 사회 각층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렇게 변해가는 세상에 우리는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을 해야 이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나라 인구는 2012년 7월 1일 기준으로 50,004,441명이고, 보건복지부가 발행한 각 년도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추정 장애 인구는 2011년 268만 명이다. 이 가운데 지적장애인 수는 2011년 현재 17만 6000여 명으로 추정된다. 다들 아시다시피 미등록 장애인 수가 많아서 아마 실제 숫자는 훨씬 더 많을 거로 생각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 장애인 전체에서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는 경우는 49.7%이고, 절반가량은 치료를 포기한 채 방치되고 있었다. 또 장애등록을 통해 정부로부터 혜택을 받고 있다고 대답한 이는 37.6%에 불과했다. 그 혜택 또한 이들이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예산도 적지만 그 예산이 대부분 확대 재생산을 위한 건설적인 자금으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소비성 자금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 것이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 한다’고 했다. 요즘으로 치면 ‘가난 구제’라는 것은 복지라고 봐도 무난할 것 같다. 가난한 사람이나 사회적 약자를 도와주는 것이 옳은 일이지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고 고기를 주는 방식의 우는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을 쓸모없게만 만들고 있을 뿐이다.           



현재의 복지 현실이 더 좋아지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복지예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이들이 욕심들을 낼 것이고, 결국 사회에서 약자인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더욱 소외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준비가 필요한 것이고 우리의 생각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우선 이들의 문제를 사회의 문제나, 나라의 문제로 만들기 위해 우리가 뭉쳐야 한다. 한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한 가정의 문제로, 먼저 가정을 뭉치고 같은 처지의 우리가 똘똘 뭉쳐 우리의 문제로 만들어야 한다. 그다음 이 아이들의 가능성을 만들고, 교육과, 삶의 방식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 정책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육아나 교육에 대한 정보를 서로 교환해야 하고, 그 정보를 모아야 한다. 그리고 이들도 존중받아야 하는 인간임을 증명해야 한다. 대의명분을 가지고 우리의 힘을 모아 그동안 외로웠고, 각자가 혼자 해야만 했던 일들을 우리가 같이함으로 큰 힘을 만들어야 한다. 분노를 혼자 삭이지 말고, 그렇다고 포기하지도 말고, 모아서 표출해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들의 미래를 희망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의 가슴속 응어리를 풀 수 있을 것이다.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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