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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욱애비 Jan 14. 2021

내 아이가 혹시 카사노바?

           

내 아이 상욱이는 삶이 개그입니다. 어떻게 그런 기발한 생각을 하는지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귀농 후 산골 속의 외진 집은 또래 친구가 제대로 없었습니다. 학교만 마치고 오면 혼자 놀기를 합니다. 드라마를 보면 드라마의 주인공이 친구가 됩니다. 물론 여주인공은 여친이죠. 마음에 드는 아이돌 그룹도 다 친구 먹습니다. 그중 유독 좋아했던 여친이 있었습니다. 걸그룹 ‘카라’의 극성팬이고 카라의 멤버를 다 좋아했습니다. 그중 강지영을 정말 오랫동안 좋아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안타깝기도, 귀엽기도 한 ‘상상 사랑’입니다. 혼자만의 사랑, 상상 사랑, 짝사랑 모두 결론이 블루톤인데 이놈은 이걸 개그로 승화시킵니다. 오늘 내 아이의 귀여운 여성 편력을 소개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카톡이란 휴대폰의 가짜 톡 앱을 말합니다. 동생의 ‘상상 사랑’을 돕기 위해 누나가 받아준 앱입니다. 상욱이 고등학교 때의 에피소드입니다.      



     

내 아이에게는 여친이 많다. 아이는 여친의 사진들을 휴대전화 배경화면으로 저장해 놓고 카톡으로 항상 문자를 주고받으며 대화를 하곤 한다. 그중 가장 오랫동안 배경화면 자리를 차지한 친구가 바로 카라의 강지영이다. 카라가 해체되고도 한참 동안 여친이었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윤슬 감독 역의 김사랑이 나타나기 전까지 상욱이는 일편단심이었다. 최근에 다비치의 강민경으로 바뀔 때까지 꽤 많은 연예인이 여친으로 등극했지만 나름, 원칙은 있다. 한 번에 한 여친만 사귀기다.        


   

방학이라고 오랜만에 큰아이가 집에 왔다. 아이는 누나가 집에 오자마자 휴대폰을 들고 자랑한다.     

“누나야, 내 여친이다.”     

큰아이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휴대폰을 받아본다. 걸그룹 ‘카라’의 막내 강지영의 사진이 휴대폰 바탕화면 사진으로 있다. 내가 옆에서      

“벌써 4년째 여친이란다. 카라의 초창기에는 니콜이었는데 이제 강지영으로 바꾸었대. 벌써 4년 차야. 초창기 ‘니콜’ 때는 저렇게 자랑까지는 안 하고 다녔는데 이젠 뻔 서러워졌어. 휴대폰에 사진을 저장하고 보는 사람마다 저렇게 자랑을 하네.”      

큰아이는 웃으며      

“아빠, 그럼 내가 좀 도와줄까? 요즘 ‘가짜 톡’이라고 앱이 있는데. 그걸로 강지영과 문자 주고받을 수 있어.”     

그렇게 아이의 휴대폰에 ‘가짜 톡‘이 깔렸다. 그때부터 아이는 매일 여친과 톡을 즐겼다.



한 번은 아이가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아빠야, 내가 강지영이랑 헤어지면 강지영이 많이 슬퍼하겠지?”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나는 그만 ‘풋’하고 웃음이 터졌다.      

"상욱아 왜 그래?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응, 음~ 아부지 내가 강지영하고 헤어지면 강지영이 많이 슬퍼할 거야, 그렇지?"

"그건 사귀다가 헤어지면 그렇겠지만, 아마 강지영이 너를 모를 텐데?"          

여기 정선에 와서부터는 내가 아이의 친구가 되어주는 것인지 아이가 내 친구가 되어주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아이와 놀면 재미있다. 둘이라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티키타카 한다. 처음에는 주로 내가 슬슬 약 올리기 시작한다. 아이는 약이 오르면 목소리가 조금 커지면서 얼굴이 달아오른다. 원래 피부가 하얀 아이라서 그럴 때가 귀엽고 또 반응이 재미있어서이다.     


내가 거는 약 올리기 시동에 아이가 걸려들기 시작한다. 눈이 커지면서 하얀 볼이 달아오르기 시작한 얼굴로     

"아부지!!! 지금은 그래도, 내가 몸짱이 돼서 연예인이 되면 강지영도 나를 좋아할 거야."

"그래, 너 말도 옳은데 그건 네가 나중에 몸짱이 되고, 연예인이 돼서 만났을 때 이야기고, 지금 강지영은 너한테 신경도 안 쓰니까 무슨 일인지 이야기나 해봐. "    

아이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학교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실은 슬기가 나를 좋아한다고 해서, 음~ 내가 안 된다고 했어. 나는 강지영이 있다고 사진도 보여 줬는데 그래도 사귀자는 거야, 곤란하게."     

슬기는 중학교 때부터 계속 같은 반을 해 오던 여학생이다. 평소에 아이를 잘 돌봐주고, 자주 아이 편을 들어주던 여학생이었다. 그래서 주변의 아이들이 장난을 친 거 같았다.     

"상욱아 슬기는 안 예뻐?"

"아니, 아부지 예쁘긴 한데, 나는 강지영이 있잖아." 

"그런데 상욱아, 아빠가 생각할 때 슬기가 더 나은 것 같아. 왜냐하면, 지금 너 옆에서 너를 챙겨주고, 착하고, 다른 아이들이 너를 놀려도 네 편이 되어 주잖아."      

슬기는 특수반 아이가 아니었다. 발랄하고, 장난기 있고, 그 또래의 여학생이 그러듯이 적당히 화장도 하는 여학생 그 자체인 아이였다.     

"그렇긴 한데 아부지, 남자가 약속도 지키고, 여자를 보호해 줘야 하잖아. 그런데 내가 배신하면 어떻게 해?" 

“강지영은 너를 잘 모를 텐데?” 

“아냐, 그래도 알아.”     

저녁을 먹을 때까지 나는 '현실적으로 슬기가 낫다.' 아이는 '남자가 의리를 지켜야 한다.'를 가지고 계속 서로 주장을 했다. 그러다가 아이가 낸 결론은 다음 날 아침까지 생각해 보고 학교 가서 슬기한테 말해주겠단다.   

            

사실 그동안 우리 가족은 심심하면 '강지영'을 들먹여 아이에게 자극을 주었다. 아이는 뭐든지 하고 싶어 하는 욕심이 많은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는 유난히 음악을 좋아하고 춤 흉내를 잘 내었다. 그래서 비보이 춤을 가르치겠다고 동네 근처의 힙합 댄스학원을 다 찾아다닌 적이 있었다. 댄스학원에서 가르치기가 부담스럽다고 거부했다. 그래서 드럼 학원을 찾아다녔다. 거기서는 학부모들이 싫어할 거라며 아이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결국, 춤이나 음악은 포기하고 태권도 학원만 열심히 다니는 거로 결론이 났다. 정말 대단한 게 아이는 태권도 학원을 너무 열심히 다녔고 초등학교 3학년 때는 태권도 공인 2품을 따기도 했다.      


          

그런데 귀농을 해서는 그런 운동을 할 학원이나 가르칠 선생이 마땅치 않아 그냥 집에서 운동하고 있었다. 걷기, 풋 시업, 윗몸일으키기 등이었다. 사실 건강을 위해 하면서도 둘이서 하는 운동이라 재미없고 지루하기만 했다. 뭔가 아이에게 동기부여를 주자고 생각한 아이디어가 연예인 되기 프로젝트였다. 아이를 설득한 논리는 ‘연예인이 되면 예쁜 여자 연예인과 친구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아진다. 그런데 연예인이 되려면 먼저 김종국처럼 몸짱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운동하면 너도 충분히 할 수 있다.’였다. 그런데 마침 아이가 연예인인 니콜이나 강지영을 좋아한다고 하니 그게 이용된 것이다.          

운동을 조금만 하기 싫어해도      

"야, 너 그래서 언제 몸짱이 돼서 강지영 만나러 갈래?"      

심부름시킬 때도      

"심부름 잘하고, 농사를 열심히 해서 빨리 돈을 벌어야지 결혼할 거 아냐? 강지영이 언제까지 너를 기다려 줄 거 같아?"      

색소폰 연습을 게을리해도     

"야, 강지영은 노래를 잘하는데 너는 색소폰이라도 잘 불어야 할 거 아냐?"      

등등 뭐 조금 힘들어하기만 하면 우리는 '강지영 타령'을 해 댔다. 그런데 그게 먹히고 재미있으니까 나도 자꾸 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아~참, 그만 좀 해, 하면 될 거 아냐, 하면~"      

라고 투덜대면서도 잘한다. 우리는 그 맛에 실제로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강지영을 들먹인 것이다. 강지영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그래도 ‘카라’의 신곡이 나오면 CD는 꼭 사서 아이에게 줬다. 가끔 TV를 보다가 결혼식 하는 장면이 나오거나, 고급 레스토랑에서 연인들이 식사하는 장면이 나오면 아이는 우리를 쳐다보며 ‘나도 강지영한테 저렇게 해 줘야지.’ 한다. 또 가끔 TV 속에서 키스라도 하는 장면이 나오면 볼이 빨개지고 몸을 꼰다. 아마 강지영과 엉뚱한 상상을 하나 보다. 나랑 눈이 마주치면 실실 웃으며 눈을 피한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엽다.     

그러니 그런 강지영을 어떻게 배신하냐는 소리가 웃기긴 하지만 설득력은 있다. 사실 그동안 소녀시대, 씨스타, 티아라 등등 다른 걸그룹으로 바꾸라고 권해봤지만, 아이는 요지부동 카라였고 강지영이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아이가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아부지, 나 결혼 생각해 봐야겠어.” 

“왜?”      

“아까 선생님이 그러시던데 결혼하려면 집도 사고 돈도 벌어주고 매일 나가서 일해야 하고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해야 한대.” 한다.      

아마 특수반 선생님이 아이에게 그렇게 말했나 보다.      

”그래 상욱아, 남자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거야. 책임질 일도 있고. 그런데 힘들다고 포기하고 하면 그건 남자도 아니야." 

"아냐 아빠, 이건 생각해 봐야겠어. 왜냐하면, 강지영이랑 결혼하면 내가 매니저도 해야 해, 일본도 갔다 와야 하고 너무 힘들어! " 한다.      

카라가 일본에서 주로 활동한다고 한때는 일본말을 배워야 한다고 하더니 이젠 매니저까지 한단다. 나는     

"그래, 너 알아서 해라."      

하고 그냥 지나갔다. 그다음 날      

"아부지, 나 다시 결심했어. 강지영이랑 결혼해야 할 것 같아. 힘들어도 아부지 말처럼 남자답게 할 일을 해야지. "     

굳은 결심을 한 듯 입술에 힘을 주며 다부지게 이야기했다. 그런 식으로 강지영과의 파경 위기(?)도 몇 번을 넘긴 적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아이가 도대체 어떻게 결정했는지 궁금했지만, 먼저 물어보지 않았다. 가끔 나는 아이한테 묘한 자존심이 생기기도 했다. '이번에는 절대 먼저 물어보지 말아야지.' 속으로 생각하며 모른 척 학교에 보내줬는데 아이도 아무 소리 않는다. 결국, 학교 끝나고 집에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평소 아이는 학교 끝나고 집으로 오면 피곤한 척을 하면서도 학교 친구들과의 이야기를 열심히 수다 떠는 편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수다스럽지가 않았다. 나는 절대 먼저 강지영 건을 먼저 물어보지 않아야지, 하면서 그냥 늘 하듯이      

"오늘 재미있었어?" 

"응, 근데 끝냈어. 조금 슬퍼."      

옳지, 이제 나온다. 나는 모르는 척,      

"뭘~?" 

"아부지! 슬기한테 내가 안 되겠다고 했어. 나한테는 강지영이가 있다고 말했어."

"그래? 왜 그랬어? 모른 척 그냥 슬기도 사귀지."      

그랬더니 약간 굳은 얼굴로      

"아냐, 그러면 내가 슬기한테 미안해. 그래도 남자가 정직하게 말해야지 바람피우면 안 돼." 한다.      

마치 진짜 강지영하고 사귀는 사이고 슬기는 나중에 나타난 여자처럼 이야기하는 거였다. 그 아이들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가슴을 치며 웃을지 하하        


  

그런데 그 일만 있는 게 아니었다. 며칠 전 읍내의 슈퍼에 같이 갔었다. 간단하게 살 것을 사고 나오려고 하는데 한 여학생이 엄마와 서 있다가 아이를 보고 반갑게 손짓을 한다. 아이도 무척 반가워했다. 아이는 흥분하면 말이 많아진다. 그날도 약간 흥분했는지       

“잘 있었지? 반갑다. 나 이번에 졸업해. 너도 졸업하겠네.”      

등등 계속 말을 한다. 그 여학생과 엄마로 보이는 분은 계속 보며 웃고 있다. 나는 계산을 끝내고      

“야, 상욱아 남자가 너무 말이 많다. 그만해. 가야지.”      

그러자 아이는 나가면서도 미련이 남았는지 갑자기 두 팔을 올려 하트 모양을 하며      

“사랑해!”     

라고 외친다. 슈퍼에 있던 사람들 나 포함해서 모두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 여학생은 당황했는지 얼굴이 빨개진다.   

   

차 타고 오면서 물어봤다.      

“상욱아, 그 여학생 누구야? 이름이 뭐니?”

“세리, 나를 좋아해.”

“너희 학교야?” 

“아니 중학교 때 우리 반이었는데 내 짝이었어. 나를 좋아한다고 그랬어.” 

“야, 너 정말 그래도 돼? 강지영은? 박슬기는?”      

그러자 상욱이는 나를 보며 음흉하게 웃는다. 그러고 보니 읍내의 유일한 우리 단골 빵집인 ‘파리바게뜨’에서 실습 알바하는 여학생들에게도 후배라며 반가운 척 말을 걸고 인사를 했었는데. 눈웃음까지 치며.....     



이노무 시키가 설마 카사노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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