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싱싱한 거봉을 먹는 법

사랑은 때로, 두 개 중 하나를 고르지 않아도 되는 지혜에서 시작된다

by 노라a

사랑하는 엄마가 포도 다섯 송이를 너에게 보냈어. 택배 배송은 흔들리다 보니 그중 두 송이는 너무 예쁘게 도착했지만 그 두 송이를 안은 세 송이는 알들이 떨어져서 상하기 직전이야. 포도알이 커서 하루 한 송이 정도만 먹을 수 있더라고. 너는 어떤 포도를 먼저 먹을 거야?



싱싱한 거? 내일이면 상해서 못 먹을 알갱이 포도?

싱싱한 걸 먹으면 떨어진 알갱이 포도 모두 못 먹게 돼. 알갱이 포도를 먹으면 싱싱한 포도는 더 이상 싱싱하지 않겠지. 상해서 못 먹을지도 몰라.


어떻게 아냐고? 매 해 여름만 되면 그 택배 박스를 받았고 항상 고민을 했거든.

그런데 어느 날, 와인을 마시다 문득 과일주를 담는 할머니 모습이 생각이 난 거야. 그리고 어김없이 그 해 여름, 포도 택배는 도착했지.

알갱이 포도와 싱싱한 포도를 나누고 슈퍼로 갔어. 그리고 설탕과 슈퍼에선 한 번도 사보지 않았던 담금주를 샀지. 그리고 여름이 오기 전 모아뒀던 유리 용기들을 꺼내 뜨거운 물로 열탕 소독-자세한 방법은 너튜브에 다 나오는 거 알지- 하고 작은 병들을 주르륵 세웠어. 못 먹은 포도 알갱이들은 유리병 속으로 쏙쏙, 설탕과 함께 담금주에 담겼어. 그랬더니 알갱이 포도들이 모두 제자리를 찾은 듯 웃는 것처럼 보이더라. 그날 이후 나는 싱싱한 포도를 편안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었지.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난 후 명절이 되어 집에 갈 때 담았던 포도주를 갖고 갔어. 외할아버지, 아빠 얼마나 맛있게 드셨는지 몰라. 그 마음이 얼마나 기뻤던지.


다섯 송이를 보낸 엄마의 마음은, 내가 두 송이라도 싱싱하고 온전한 포도를 먹길 바라는 사랑이 담겼을 거야. 그 사랑을 알기에 한 송이도 버리고 싶지 않았어.

비록 알갱이 포도와 싱싱한 포도 중 무엇을 먹을지를 묻는 질문이었지만, 나는 네가 그 두 종류의 포도 밖에서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넌, 둘 다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도 알고 있을 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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