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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실연필 Feb 04. 2022

제주엔 봄이 왔더라.

두 계절을 지나 다시 제주에 왔다.

나는 가을과 겨울을 지나는 동안 여름 제주의 시간들을 줄곧 그리워했다.


그리워하는 뭔가가 있다면 꽤 버틸만한 게 인생이기에.

나는 그렇게 한 해를 버티고 살아냈다.

2022. 2월 지금의 제주, 유채꽃이 한창이다. 제주민속촌에서.

지금 묵고 있는 숙소는 표선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거실 창 밖으로 파란 제주 바다가 연신 넘실댄다.


보이는 게 달라지면, 느끼는 바도 달라진다.

바다를 보고 투명한 하늘을 바라보면 일순간 마음이 시원해진다.


이번 제주는 남부에서 지내기로 했다. 따뜻한 남쪽에서 길고 긴 겨울을 잠시 잊고자 했다. 2월이라 해도 아직 바람은 차다. 그래도 햇살은 이미 겨울이 아니다.


제주 유채꽃이 더 할 수 없이 싱그럽다. 작은 꽃망울이 노랗게 팝! 하고 터진 모양이 이렇게나 사랑스러울 수 없다. 프리지어와는 또 다른 들꽃 같은 수수함과 귀여움, 쨍한 그 모습에 한 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제주 남부 지역을 여행하면 어디서나 동백을 만날 수 있다. 한 겨울에 만나는 꽃이 반갑고도 또 반갑다.

동백도 빼놓을 수없다. 반질한 잎과 붉은 꽃잎이 어디를 내놔도 빠지지 않을 양갓집 규수와 같은 자태를 뽐낸다. 우아하고 고혹스럽다.


언제부터 내가 꽃에 이렇게나 홀렸었나.

그래서인지 한참 동안 꽃밭에서 머물고 있노라면 큭큭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취향의 변화, 보는 것의 변화. 피어야 할 때를 알고 피는 것들에 대한 애정과 존경의 마음이 우러난다.


저 꽃들도 이미 알고 있는 피어야 할 때를,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나는 언제 피어야 할까. 이미 피었었나. 필 준비만 하고 있나.


꽃망울이 팝! 하고 터지는 인생의 그 순간은 정말 올까.

제주에 성큼 다가온 봄을 느끼며 나는 내 인생의 봄 한 자락을 만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정방 폭포에서 서복 전시관을 향하는 길. 지천에 꽃나무다. 꽃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더 이상의 빨강은 없을 정도로 빨간 꽃에 홀린다. 너는 참 어여쁘구나.

2월의 제주는 여름 제주와 많이 다르다. 꽃은 피고 감귤이 이미 익어간 계절.


어떤 햇살과 바람이 귤과 한라봉, 레드향 같은 큰 열매들을 탐스럽게 했나. 한 겨울에 푸른 나뭇잎들과 귤나무들이 새삼스럽게 신기하다.

제주 남부의 귤 농장 까페와 한라봉 농장. 어딜가나 귤,한라봉, 천혜향, 레드향들이 지천이다.

귤은 이미 수확을 마친 농장이 많아 한라봉 수확 체험을 다녀왔다. 한라봉 따는 가위를 들고 잠시 농부의 마음으로 어떤 게 잘 익었나 나무들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달콤하고 적당히 신 맛. 내가 딴 한라봉을 맛볼 수 있는 순간이 2월의 제주인가 싶다.


앞으로 다시 6개월을 버티게 할 맛이, 살다가 지칠 때 꺼내먹어야 할 맛이 바로 이 맛이던.


나는 지금.

햇살은 따스하고 바람은 찬, 이제 막 겨울을 통과한 제주의 봄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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