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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실연필 Feb 08. 2022

물레를 돌린 날

제주 서귀포시 도자기 체험 (2022.2.5)

어쩔 수 없다. 세대 인증을 하고 싶진 않지만 물레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있다. 이제는 클래식이 된 '사랑과 영혼'의 오~마이~럽 ost.

패트릭 스웨이지와 데미 무어의 물레를 나도 돌리게 되는 날이 올 줄은 정말이지 한번도 기대한 적 없었다. 


제주는 안 해봤던 일을 하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처음 걷는 거리, 낯선 풍경들, 여행객들의 자유로운 분위기, 세상 신기한 사람들을 보면 나도 약간 딴짓을 해도 괜찮을 것만 같다. 


도자기 체험도 그랬다. 사실 아무런 계획도 생각도 없었다. 서귀포시 지도를 둘러보다 공방을 발견했고 전화를 했다. 물레의 시간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아이들과 도착한 공방에서 여러 가지 모양과 빛깔로 구워진 도자기들을 구경했다. 오늘 난 어떤 그릇을 만들까 곰곰이 숙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빛깔이 오묘한 것부터 깨끗하고 담백한 것들까지 만든 사람의 손길이 닿은 모양이 각기 달랐다.

원하는 모양을 고른 후에는 본격적인 물레 작업이 시작됐다. 아이 셋이 먼저 체험했다. 아이들도 모두 컵을 만들기 원해서 물레 작업으로 시작됐다.


 9살 둥이와 13살 딸내미가 하기엔 난이도가 있었지만 공방 선생님들이 많이 도와주셨다. 

대단위 인원이 참여하는 게 아니라서 서두르지 않고 조용히, 마음에 들 때까지 할 수 있는 게 큰 장점이었다. 시간에 쫓기거나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면 나 같은 성격은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물레를 돌리는 감각과 차가운 흙의 촉감에만 집중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마치 명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남편과 나도 머그를 제작하기로 했다. 직장에서 쓸 수 있는 추억이 담긴 나만의 머그. 적당한 크기의 머그 모양과 오묘한 빛깔의 유약을 선택한 뒤 작업이 시작됐다.

막상 물레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긴장감이 팍 몰려왔다. 손을 조금만 잘못 위치해도 그릇 모양이 비뚤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몇 번을 반복하며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서야 제대로 힘을 줄 수 있었다. 


물레도 예민하고 돌아가는 이 흙도 예민한 것 같다. 핸드메이드 그릇이란 게 그저 휙휙 돌리며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구나 깨닫는다. 


가끔 그릇을 살 때 보면 직접 만든 게 공장에서 만들어진 매끈한 그릇보다 훨씬 비싸서 왜 그럴까 생각했는데,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만큼 애정을 가지고 소중히 다룬, 이 세상 단 하나뿐인 그릇이기 때문이다.

물레로 그릇의 모양을 완성한 후에는 꾸미는 작업을 시작한다. 좋아하는 무늬의 도장을 찍거나 이니셜 도장으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넣을 수 있다. 선택한 유약의 색깔에 따라 무늬나 글씨가 잘 안보일 수도 있지만 일단은 기대해보기로 한다.


아이들은 표현하고 싶은 게 언제나 많다. 그릇 한 면을 도장과 글씨로 빼곡히 꾸며놓았다. 나는 작은 강아지 무늬와 이니셜, 날짜를 새겼다. 


도자기가 구워져 집으로 배송되기까지 꼬박 한 달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 바쁜 시간 속에 잊힐 때쯤 어느 날 띵동 하고 집 앞에 당도할 것이다. 


안 해본 일에 도전하고 새로움을 느끼는 건 여행지에서의 선물과도 같다. 늘 반복되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도전하는 순간의 설렘 때문에 여행을 떠나는 건 아닐까 싶다. 


그릇을 기다리는 마음이 설렌다. 어떤 빛깔과 모양으로 나에게 올지.


봄을 기다리는 마음 어딘가에 예쁜 머그 하나가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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