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스페셜>, '1979'
1960년 4.19혁명, 1980년 5.18 민주화운동, 1987년 6·10민주항쟁.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79년, 부마항쟁이 있었다.
1979년 10월 16일부터 5일간 부산과 마산지역에서 박정희 정권 시절 최대 규모의 민주화운동이자, 대학생부터 시장 상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동참한 시민운동이 일어났다. 부마항쟁은 우리나라 4대 민주화운동 중 하나로 꼽히지만 4.19혁명, 5.18, 6·10민주항쟁에 비해 잘 알려지지도, 매체에서 잘 다루어지지도 않았다. 그렇게 제대로 된 진상규명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40년이 흘렀고, 2019년 올해에서야 부마항쟁이 시작된 10월 16일은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MBC, KBS 등 각 방송사에서는 부마항쟁 40주년을 맞아 특집 방송을 제작했다. MBC 스페셜은 부마항쟁 40주년 특집 ‘1979’를 다큐드라마 형식으로 펼쳐 나갔다. 다큐드라마란 말 그대로 과거 사실을 기반으로 각색하여 연출하는 방식이다. 사실을 소재로 극적인 표현을 하는 것이다.
역사적 사건은 한때 실제였던 일이고, 그 일을 자신의 인생으로 겪은 당사자가 존재하기에 극의 형태로 재구성할 때 여러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드라마로 재구성된 장면이 사실을 왜곡시키지는 않았는지, 극적 요소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야기를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조작하지는 않았는지 주의하며 조심스럽게 과거 사건에 접근해야 한다. 이러한 위험요소만 세심하게 건드린다면 다큐멘터리와 극의 만남은 과거 사건에 대한 극적 체험을 제공하며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지 않은 부마항쟁의 경우, 다큐드라마 형식이 가진 서사와 몰입의 힘이 사건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데 있어 효과적일 수 있다.
다큐드라마 ‘1979’는 1부 ‘나는 저항한다’를 통해 부마항쟁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유신정권은 그들을 어떻게 탄압했는지를 보여준 후, 2부 ‘그는 왜 쏘았는가?’를 통해 부마항쟁이 어떻게 유신정권의 끝, 10.26에 영향을 주었는지 살펴본다. 시청자들은 실제 자료나 부마항쟁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인터뷰와 어우러진 극을 통해 부마항쟁 당시를 목격하고 역사적 사건의 흐름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각자 그에 대한 감정을 갖게 된다.
1부 ‘나는 저항한다’에서는 당시 마산 경남대에서 항쟁의 선두에 섰던 최갑순, 옥정애 운동가의 이야기가 극의 주요 부분을 차지했다. 사실 민주화운동에 있어 쉽게 접하지 못했던 이름들이다. 이럴 때 다큐드라마는 힘을 발휘한다.
그분들의 지금 모습과 목소리가 담긴 인터뷰와 마산 항쟁 재연 장면의 교차는 그분들이 역사적 현장에 계셨던 인물임을, 그 외침이 얼마나 용기 있었음을, 당시의 탄압이 얼마나 참혹하고 끔찍했음을 생생하게도 전해준다. 다큐드라마를 통해 만난 최갑순, 옥정애라는 이름이 항쟁 참여자라는 단순 사실을 넘어 감정적으로 다가왔다.
마산 항쟁에 참여했던 최갑순 운동가는 “비 오는 날 피 냄새가 나거든요. 온 사람들이 흘린 눅눅하면서 피 냄새와. 지옥이 있다면 아마 그런 모습인가?”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 당시의 무차별적인 폭행과 고문, 협박을 그리고 이에 고통스러워하는 부마항쟁 참여자들의 모습을 ‘1979’는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해 생생히 보여준다.
이 고통이 실제였음을 알기에 더 마주하기 힘든 상황에서, 거꾸로 매달려 물고문을 당하며 피를 토하고 형사들에게 끌려가며 발이 피범벅이 된 모습을 계속 보여주니 심리적으로 힘이 들었다. 당시의 고통을 시청자들이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서 일지 모르겠으나, ‘1979’를 보며 극적인 연출을 위해서 고문과 협박 장면을 다소 과하게 넣은 것은 아닌지, 그 순간들을 사실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방법은 없는지 좀 더 고민한 장면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부마항쟁에 대한 진상규명 활동은 박근혜 정부 때 시작했으나 사실상 5.16 군사 쿠데타를 찬양하는 발언을 한 인사가 진상규명 위원이 되는 등 제대로 된 규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진상규명 조사 활동은 올해로 끝이 난다. 현재 부마항쟁 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심의위원회가 부마항쟁에 참여한 당사자 신고를 받고 있다. 하지만 부산과 마산에서 연행된 사람만 1,500명이 넘지만 신고자는 300명 정도에 불과하다. 지금껏 부마항쟁에 대해서는 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본인이 참여자라고 밝힐 수 있는 기반도 닦여있지 않았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특집 방송이 나오는 등 40년 만에 부마항쟁이 조명되는 흐름이다. 이 흐름을 타고 방송은 부마항쟁에 대해 사람들은 기억하고 정부는 규명하도록 이야기를 꺼낼 시점이다. 부마항쟁이 왜 일어났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어떤 모습과 마음으로 ‘유신철폐 독재타도’를 외쳤으며, 그 외침이 지금의 대한민국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기록하고 퍼뜨리고 함께 되새기는 작업이 필요하다. 쉽게 비춰지지 않던 역사를 누렇게 바랜 과거가 아닌 생생한 드라마로 되살려낸 MBC 스페셜 ‘1979’가 소중히 다가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