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씽크 2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주 Nov 12. 2019

나이 든 뽀뽀뽀 친구는 옛날이 그리워

Latte는 뽀뽀뽀가 말이야~



나는 뽀뽀뽀 친구


 케이블을 단 집이 몇 없던 나 유치원 때. 유치원을 다녀오고 나면 집에서 TV를 봤다. KBS, SBS, MBC, EBS. 주요 방송국 4사 중, 어린이 프로그램을 7시까지 틀어주는 곳은 EBS뿐이었다. 혼자 TV를 볼 때는 EBS에 채널을 고정했지만, 엄마는 다른 채널을 틀어 주셨다. [TV 유치원]과 [혼자서도 잘해요] 같은 어린이 프로그램 중에서도 [뽀뽀뽀]는 독보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다.


 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

 엄마가 안아줘도 뽀뽀뽀

 만나면 반갑다고 뽀뽀뽀

 헤어질 때 또 만나요 뽀뽀뽀


 중독성 있는 훅으로 뭇 어린이들을 사로잡은 국민 동요 뽀뽀뽀송 덕분이었다. ‘뽀뽀뽀’라는 귀여운 발음에 뭇 엄마 아빠들은 자식 애교로 잠 못 이뤘다는 후문이 있다. 유치원에서 누가 ‘아빠가 출근할 때’ 하고 운을 떼면 노래가 줄줄 이어져 나왔더랬다. 96년생인 나와, 대여섯 살 차이 나는 언니들이 함께 공유하는 [뽀뽀뽀] 감성이 있었다. 아동은 뽀뽀뽀. 어린이집 다녀오고 나면 뽀뽀뽀.


뽀뽀뽀 친구가 느끼는 세대 차이


 기억이 미화된 탓도 있겠지만, 그때의 아동은 진짜 '아동'이었다. 어른들을 따라 하려고 해도 어딘가 서툴고, 순수하고 그랬다. 핸드폰으로 할 만한 게임도 없고(애초에 핸드폰이 없었다) 컴퓨터 게임에도 시간이 정해져 있었으니(우리 집 진돗개 컴퓨터는 켜지는 데만 30분이 걸렸다) 같이 나와서 뛰어노는 수밖에. 저녁 먹기 전, 동네에서 뛰어놀고 있으면 아파트 창문을 열고 엄마가 밥을 먹으라고 불렀다. 얼마나 아날로그하고 따뜻한 풍경인가?


 그리고 TV보다 유튜브를 더 많이 시청하는 으-른이 된 지금,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유치원 다닐까 싶은 나잇대의 아가(내 눈에는)들이 먹방을 선보이고, 엄마가 사준 장난감을 언박싱 하는 모습. 심지어 모 유명 아동 유튜버는 강남에 건물까지 올렸다고 하니 어딘가 달라진 어린이의 생각에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말고도 유치원 때부터 학원을 돌리는 부모님들도 있다고 하니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요즘 애들이 하는 어른 따라 하기는 너무 어른 같아서 무서울 정도고.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다. 그때 내가 보던 프로그램들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내 기억 속의 어린이 프로그램도 어린이들이 바뀐 것처럼 바뀌어 있을까? 요즘 애들이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것처럼 어린이 프로그램도 바뀌었을까?


뽀뽀뽀 친구가 생기지 않는 이유


 정말 바뀌어 있었다. [뽀뽀뽀]에서 [뽀뽀뽀 아이 조아]를 거쳐 [뽀뽀뽀 모두야 놀자]로 변해온 뽀뽀뽀에는 옛날의 그 느낌이 없었다. 우선 시청률 저조로 일주일 중 월 화 이틀만 편성되어 있었고, 프로그램도 옛날의 연극 느낌보다는 리얼리티 예능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교육적인 부분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언급뿐이었다. 아이들과 진행자가 게임을 하고 체험을 하는 장면에는 내가 기억하던 몽실한 따뜻함이 없었다. 농장을 체험하는 에피소드는 어르신을 겨냥한 정보 프로그램과도 비슷해 보였다. 옛날에 봤던 인형들이나 과장된 행동으로 주의를 끄는 캐릭터도 없었다.


 요즘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성숙해져서 그런 것일까? 일찍 철이 들어서 프로그램도 변화한 것일 것? 내가 너무 옛날 생각을 하고 있어서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 걱정이 무색하게도 뽀뽀뽀의 시청률은 아주 저조했다. 인형이나 만화 캐릭터가 등장하는 아동 대상 유튜브 채널의 조회수가 올라가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TV에서 유튜브로 콘텐츠의 유행이 이동했다고는 해도, 과거 TV에 등장했던 인형탈 캐릭터나 손 인형, 아이 같은 진행자는 여전히 유튜브에서 활약하는 데에 반해 뽀뽀뽀에서는 그 역할이 줄어들었다. 구연동화와 율동 코너가 있지만, 프로그램과 시청자가 분리되어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콘텐츠는 아니다. 이전 [뽀뽀뽀] 시청자의 입장에서 본 [뽀뽀뽀 모두야 놀자]는 건조하고 심심한 프로그램이었다.


뽀뽀뽀, 어린이들의 친구가 되려면


 교육의 중심 EBS 출신 캐릭터 펭수는 초점이 나간 눈과 불량한 말투로 종횡무진 방송사를 돌며 활동하고 있다. 아이들의 사랑은 몰라도 어른들의 사랑은 확실히 받는 듯 보인다. 과거, 만화를 보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도 현재의 시니컬함을 잃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플로우라고 생각한다. 펭수의 예시처럼 아동 프로그램을 성인이 보는 경우도, 성인을 타깃에 넣어 제작된 아동 프로그램도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아동 프로그램의 주 시청층은 여전히 아동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그동안 뽀뽀뽀를 지켜온 뽀미 언니는 훌륭한 놀이 진행자임과 동시에 보호자였다. 놀 때만큼은 순수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 유튜브나 다른 프로그램이 어른을 염두에 둔 콘텐츠를 만든다고 해서 뽀뽀뽀까지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 (물론 어른으로서 봤을 때도 그냥 예능보다 경쟁력이 떨어진다) 어른의 유행을 따라가는 것은 아동 프로그램의 정체성과 목적을 모두 해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뽀뽀뽀의 역사를 되짚었을 때, 어떤 것이 어린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는가를 생각한다면 결정은 쉬운 일일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이건 드라마야? 웹드라마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