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 <내 집짓기>
인테리어 자재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 상상 속에서만 있었던 집의 모습이 실체가 되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중 마지막까지 긴가 민가 고민을 했던 건 집안의 페인트 색상이었다. 아무래도 흰색 페인트를 칠하면 집안이 밝고 환해 보이기 때문에 일층은 고민 없이 흰색을 칠하기로 했는데 이층의 페인트 색이 문제였다.
회색으로 칠하기로는 마음은 먹었는데 얼마나 진한 회색으로 칠을 하느냐였다. 흰색과 가까운 연회색으로 칠한다면 흰 벽과 차이가 안 날 테고 그렇다고 너무 진하면 집이 어두워질 수 있었다. 고민 끝에 내 딴에는 과감하게! 처음 생각했건 것 보다 진한 회색을 골랐다.
페인트 색을 고르고 도저히 어떤 분위기 일지 감이 안 잡혀 건축현장에 가서 직접 분위기를 살폈다. 실재 회색 페인트가 칠해진 모습을 보니 빛이 있는 곳과 빛이 없는 곳의 색감차이가 생각보다 컸다. 그래서 빛이 비교적 잘 들어오지 않는 드레스룸은 흰색 페인트로 마감하기로 하고 큰 창문이 있어 빛이 잘 들어오는 쪽은 내가 고른 회색 페인트로 칠하기로 했다. 이렇게 하니 빛과 색의 발란스가 맞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층과 일층 계단을 이어주는 벽은 원래 일층에서 보이는 쪽은 흰색, 이층에서 보이는 쪽은 회색으로 반반씩 칠하기로 했는데 전체 벽면 모두를 회색으로 마무리를 하기로 했다. 계단에 티크 나무를 깔 예정인데 회색벽과 티크 나무색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일층에서 보면 흰 벽과 회색벽이 투톤으로 함께 보였는데 덕분에 지루하지 않은 집이 된 것 같아 아주 만족스러웠다.
공정률이 후반부를 향해 가고 있다. 이제는 해야 할 것들보다 이미 한 것들이 더 많아졌다. 기다림의 시간도 더 이상 아득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모든 여정을 나와 조로님, 인부들, 그리고 두 마리 고양이들이 함께했다.
집이 지어지던 첫날밤 찾아온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곧 죽을 것 만 같더니 똑똑하게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조로님은 공사 기간 동안 매일 고양이 남매들의 밥을 챙겨 주셨고 위험하지 말라고 귀여운 방울도 달아 주셨다.
사실 나는 동물을 무서워해서 처음에는 경계하고 있었는데 매번 공사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이 두 고양이는 나를 살갑게 맞이해 주었다.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여러 인부들의 손을 타며 자란 고양이들 인지라 사람을 잘 따랐다. 고양이들은 내가 다가가면 항상 머리를 이리저리 내 다리에 부딪히며 반갑게 인사를 했고 내가 집을 둘러보면 마치 자기들이 집주인인 양 쫄래쫄래 나를 따라와 잔소리하듯 야옹거렸다.
공사 현장이 거칠고 위험할 만도 한데 아무래도 고양이여서 그런지 이 둘은 폴짝폴짝 여기저기 잘도 올라다녔다. 오히려 이곳을 즐기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 현장을 보러 오는 일이 이 고양이들을 보러 오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러던 중 조로님이 고양이들의 거취에 대해 말을 꺼내셨다. 대게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은 공사 현장에서 숙식을 해결해서 거취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도 못 키우는 경우가 많다고, 다른 직원들에게도 입양 의사를 물어보았는데 두 마리를 함께 거두는 게 쉽지 않은 것 같다고 하셨다. 이왕이면 이 두 녀석이 남매이고 함께 버려져서 같이 입양을 보내고 싶은데 조로님 역시 이미 고양이를 두 마리나 키우고 계셔서 다시 두 마리를 거두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조로님은 조심스럽게 “혹시 고양이 키워보실 생각 없으세요?”라고 물으셨다.
일단 나는 동물을 무서워한다. 이상하게 벌레는 안 무서워하는데 동물은 어렸을 때부터 무서웠다. 이런 내가 고양이를 키운다고? 두 마리씩이나? 말도 안 되는 소리! 라며 나의 이성은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동시에 나의 감성이 대답했다.
“제가 키워볼게요”
이 녀석들은 내가 이곳에 살기 전부터 이 필지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일 년 가까이를 살았던 녀석들이다. 마치 이 고양이 두 마리가 이 땅의 주인 같이 느껴졌고 이 아이들을 내 쫒는 다면 안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마음먹고 이 둘에게 ‘홀리’와 ‘몰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조로님은 공사 현장에서 성묘가 된 홀리랑 몰리를 데려다가 중성화 수술을 해 주셨다. 그리고 입주 전까지 임시 보호를 해 주셨다. 야생의 홀리 몰리는 조로님이 집에서 다른 고양이들과 어울려 노는 법도 배우고 집에서 사람과 함께 사는 법도 배우며 우리 집으로 올 준비를 했다.
인테리어의 완성은 고양이라더니!
아무것도 준비할 필요가 없겠어 :)
**HolyMoly! 는 놀라움이나 충격을 표현할 때 쓰는 감탄사로 Oh my god! 과 비슷하고 우리 말로는 세상에! 또는 우와!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아 그런데, 홀리몰리가 중성화 수술을 위해 떠난 자리에 또 다른 고양이가 나타났다.
우리 집 길 고양이들 사이에서 소문이 났나...?
넌 누구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