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N Oct 23. 2024

32. 빗물 처리에 진심인 조로님

발리에 <내 집짓기>

집을 지어야지 생각하고 가장 많이 신경이 쓰였던 부분은 누수와 습기 그리고 곰팡이였다. 발리 기후의 특성상 집이 습해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돌이켜보니 지금까지 발리에 살면서 우리 집이건, 친구의 집이건 곰팡이가 아예 없는 집은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발리에서 진정 습기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동안 무지했을 뿐이지 안 되는 건 없었다. 나의 동료, 조로님은 집이 습해지지 않는 방법을 아주 분명하게 잘 알고 계셨다. 이 모든 건 조로님이 알아서 시공해 주신 건데 사실 이 방법들을 알고 나니 어떤 어려운 기술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그저 기본에 충실한 원칙들을 지키는 것이었다.




첫 째,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막기 위해 지대를 충분히 높였다.

발리의 우기는 매일 비가 오는 건 아니지만 때때로 어마어마한 폭우가 내리고 가끔은 하루 이틀에 걸쳐 장대비가 쏟아진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면 모든 빗물은 땅으로 흡수되는데 습기를 머금고 있는 땅은 낮에 뜨거운 햇빛을 받아 증발한다. 그러면 이 증발된 습기가 건물로 스며들어 집 내부를 습하고 덥게 만드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바닥이 높아야 습기로부터 자유롭고 더불어 제대로 된 바닥 공사를 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최후의 보루로 혹시라도 마을의 배수로가 막혀 배수가 안되거나 역류가 있어서 바닥면에 물이 차오르더라도 집으로 들어오는 출입구와 바닥의 단차를 두어 최종적으로는 물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이웃집 담을 보면 대지의 레벨을 높인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바닥-데크-출입문 단차를 충분히 두어 바닥면에 물이 차더라도 집안으로는 물이 들어갈 수 없도록 했고 애시당초 바닥 레벨 자체도 이웃집보다 현저히 높다.

둘째, 지붕에 빗물받이를 설치해 모든 빗물을 집 밖으로 내보냈다.

바닥이 습한 이유의 가장 큰 원인은 빗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애초에 빗물이 집안에 고이지 않도록 지붕에 빗물받이를 설치하고 모든 빗물은 배관을 따라 집 밖으로 흘려보낼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빗물받이는 빗물로 인해 건물 외벽 및 바닥이 상하는 것을 방지해 준다. 폭우와 바람이 동반되는 비가 내릴 때 이 비가 건물의 본체를 지속적으로 치게 되면 벽이 습해질뿐더러 칠해 놓은 페인트가 금세 벗겨져 보기에도 좋지 않다. 그리고 건물이 이층인 경우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바닥으로 받아내면 그 낙차로 인해 바닥이 파이거나 손상될 수 있다.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녀석이다.

지붕으로 떨어지는 모든 빗물은 파이프를 따라 밖으로 배출된다.

셋째, 모든 창문 위에는 충분한 면적의 비/햇빛 가림막을 주고 빗물이 타고 들어오지 않게 물 끊기 시공을 했다.

창문 위에 설치된 가림막은 비와 같은 물이 창문으로 바로 떨어지는 것을 줄이는 동시에 창문과 벽 사이에 물이 스며드는 것을 방지해 습기가 건물 내부로 스며드는 것을 막는다. 신기하게도 비바람이 태풍 수준으로 내리는 날을 제외하고는 창문에는 빗방울조차 맺히지 않았다.

그리고 더불어 이 가림막 위에 에어컨 실외기를 올려놓아 실외기 청소가 용이하도록 했다. 365일 에어컨을 사용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에어컨 안쪽에 곰팡이가 많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수시로 에어컨 청소를 하는데 사다리를 놓기만 하면 사람이 직접 올라갈 수도 있어 유지 보수에도 용이하다.

일반 건물에 설치된 실외기들, 보수가 필요한 경우 사다리에 의지해 아슬아슬하게 작업해야 한다.

넷째, 공기 순환이 원활할 수 있도록 벽을 배치했다.

일반적으로 발리의 빌라 혹은 타운 하우스들은 ㅁ자로 구성된 경우가 많다. 집과 담이 맞붙어있는 구조로 이는 최소의 면적에 최대의 공간을 활용해 집을 짓기 위함이 있을 테고 또한 최소의 예산으로 최대한 그럴듯한 빌라를 만들기 위함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구조는 공기가 순환되지 않아 곰팡이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앞에 수영장이 있다면 곰팡이 당첨 확률은 배로 올라간다.

모든 벽은 공기가 순환될 수 있도록 삼면이 뚫린 모양으로 벽을 배치하고 실내 역시 공기의 순환을 위해 가급적 크든 작든 모든 면에 창문을 내었다.

공기 순환이 제대로 될 수 없는 구조의 집
벽은 돈이다. 첫번째 처럼 집을 지으면 예산과 공간을 아낄 수는 있으나 곰팡이가 당첨 될 확률도 높아진다.

마지막으로 크고 넓은 지붕을 설치했다. 

지붕이 크면 집이 다소 투박해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넓은 지붕은 강수량이 많은 날씨에서 배수 성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물이 한곳에 집중되지 않기 때문에 누수나 구조적 손상을 방지하는데도 유리하다. 덤으로 건물 주위에 그늘을 제공해 주고 태양열로 인한 과도한 열 상승을 막아준다. 또한 벽에 비나 바람이 직접 닿는 것을 막아 집의 손상 역시 줄여준다. 아니, 이렇게 좋은 지붕을 발리 같은 환경에 살면서 안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다만, 지붕은 비싸다. 큰 지붕 집은 부잣집이라는 옛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습기와 곰팡이를 막기 위해 해야 한 일들은 사실 특별할 게 없었다. 건축 생 초보가 보아도 당연히 해야 할 것들을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하지만 곳곳에 곰팡이 집들이 수두룩 한 것을 보면 이런 기초적인 것들이 지켜지지 않고 지어지는 집이 대다수라는 거다. 그래서인지 특별하지 않은 것들이 더욱더 특별해 보였다.


아무래도 빨리 지어서 빨리, 그리고 비싸게 팔아야 하는 발리 빌라 사업의 특성상 한눈에 보기에 디자인적으로 예쁘게 만드는 게 유리하고 어차피 팔아 버리면 그 뒤는 책임을 안지니 굳이 예산을 더 들여 보이지 않는 것들을 신경 쓸 필요도, 쾌적한 집을 만들려는 노력도 있을 리가 없었다.

또한 뜨내기가 많은 곳인 만큼 발리에 오래 거주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살아보지 않고서야 이러한 불편함을 알지 못하니 덜컥 디자인만 보고 빌라를 계약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문제였다.


지금 당장 1-2년은 크게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처음에 충분한 예산을 들여 기초가 탄탄하게 다져진 좋은 집을 만드는 것이 미래의 내가 덜 고생하며 평온하게 발리 생활을 이어나가는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과정들의 가치를 안다. 가구를 들여놓을 돈이 없어 당장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자더라도 해야 할 건 해야지 싶었다. 누가 뭐래도 나는 곰팡이 없는, 앞으로도 없을 집에 살아야겠다.

이전 13화 31. 2년 만에 이루어진 모녀상봉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