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 <내 집짓기>
내가 당하고야 말았다. 그렇게 안 당하려고 그동안 조심했는데 마지막에 이렇게 가구 사기를 당하고야 말았다. 한화로 100만 원 정도 되는 금액이었다. 이렇게 사기를 당하니 멘탈을 잡기가 어려웠다. 지금까지 일등으로 잘 달리고 있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꼴등이 된 기분이였다. 사실 제대로 된 원목 테이블 하나만 구입해도 100만 원 정도인데 침대, 식탁, 그리고 몇몇에 작은 가구들, 이 모든 게 100만 원이라니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금액이긴 했다. 더욱이 억울한 것은 제대로 따져보지도 못하고 당시 경황이 없어 경찰에 신고할 생각도 못했던 거다. 너무 분하고 속상해서 몇 일을 울었다. 처음으로 발리 사람들이 싫어지는 순간이었다.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발리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라고 했다. 보통 충분히 성숙한 질 좋은 나무는 주로 수출용 가구에 쓰이고 내수용 가구에는 저렴한 어린 나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어린 나무는 대개 수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수축과 팽창의 정도가 크기 때문에 나무의 변형이 쉽게 온다. 그래서 이런 어린 나무는 가구 제작에 적합하지 않다.
추측건대, 내가 받은 가구들은 싸구려 어린 나무로 만들어졌고, 제작 과정 역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무와 나무를 이어 붙이는 풀칠 과정에서 고정 후 충분한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가구를 만들었기에 풀칠한 부분이 갈라지고 벌어지는 일이 생겼다 거기에 나무 자체가 뒤틀리고 부서지니 총체적 난국이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것은 애당초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업체를 잘못 고른 나의 불찰이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알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너무 안일했다. 핑계를 대자면 공사 막바지가 되니 나도 내 나름대로 지쳐 있었다. 단순히 빨리 끝내야겠다는 급급한 마음에 계약서도 쓰지 않았고 품질보증 개런티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미리 주변 친구들에게 한 번만 물어봤어도 알았을 것들을 조급한 마음에 실수를 하고 만 거다.
무엇보다 가장 속상했던 것은 내가 로망처럼 생각했던 6인용 원목 테이블이었다. 나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갈라지고 뒤틀리며 망가졌다. 게다가 1층에서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는 식탁이 이러니 집 자체가 볼품없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식탁을 마주칠 때마다 분해서 울고 속이 상해서 울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울고 매일을 눈이 팅팅 부을 정도로 엉엉 울었다.
그래도 오기로라도 어떻게든 사용해 내겠다고, 100만 원을 날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다른 가구 공방에 수리를 맡겨보기도 하고 식탁보를 씌워 보기 싫은 부분을 가려도 보았다. 하지만 몇 주 후에는 또 다른 곳이 갈라지고 삐걱거림을 반복했다. 나무 결이 갈라질 때마다 내 마음 역시 갈기갈기 갈라지는 것 같았다. 나중에 주변 가구 공방 사람들을 통해 알았는데 이곳은 이런 사기로 로컬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곳이었다.
이건 나중 이야기인데 입주 후, 6개월쯤 지났을까? 결국에는 참다못해 사기당한 가구들을 헐값에 중고 장터에 팔았다. 고쳐보겠다고 돈은 돈대로 쓰고 결국엔 이렇게 됐다. 그리고 보다 못한 엄마가 새로운 식탁을 사주셨다. 그러면서 나를 위로해 주셨다
“너무 속상해하지 마.”
“물론 100만 원이 큰돈이지만 더 큰돈 잃지 않은 게 어디야, 작은 것을 보면 큰 것을 알 수 있듯이 혹시라도 집을 이런 사람한테 지었으면 어땠을 뻔했니? 집을 이렇게 사기당했으면 어땠겠어? 우리 이 정도로 넘어간걸 다행으로 생각하자. 다음에 같은 실수를 안 하면 돼. “
엄마 말이 맞았다. 내가 지은 집이 이 가구들처럼 뒤틀리고 삐그덕거린다고 생각하니, 혹은 집을 사기당했다고 생각하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털이 바짝 서고 얼굴이 화끈해졌다. 아마 그랬으면 난 치를 떨며 발리를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꼼꼼히 따지고 돌다리도 두 번, 세 번 두들기며 왔었는데 이렇게 마지막에 사기를 당하다니 스스로에게 실망은 했지만 이것도 경험이려니, 엄마의 위로를 받고 나니 더 큰 사기를 안 당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이 일을 계기로 하고 싶은 말은 제대로 하고 따질 건 제대로 따져야겠다 싶어 인도네시아어, 발리어 모든 배움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일이 지금 생겼다면 그때 처럼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겠지만 그것도 다 한번 겪어봐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게 아닌가 싶다. 이 경험은 마치 마지막까지, 아니 인도네시아에서 사는 동안 정신줄을 놓지 말라는 경고 같았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