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 <내 집짓기>
공정률 90%를 넘기며 하나둘씩 가구가 들어오자 허전했던 집 안이 금세 아늑해졌다. 하지만 집 밖, 정원은 여전히 황토색 흙으로 덮인 채 휑하기만 했다. 집을 완성하려면 아무래도 조경 작업이 필요해 업체를 알아보려고 했는데 얼마 전 가구 업체에게 사기를 당한 기억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라 또 다른 업체를 만나고 계약하는 과정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고민 끝에 '솔직히 조경이라는 게 그저 흙을 파고 식물을 심는 것뿐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내가 직접 해 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조로님과 인부들이 열심히 집을 지어 주셨는데 나도 내 집에 나의 손과 땀으로 이룬 것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난생처음으로 식물 쇼핑을 갔다. 예상했던 것보다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이 있어 당황했는데 조경이 필요한 곳의 사진을 보여드리니 주인아주머니께서는 몇 가지 식물들을 추천해 주셨다. 햇빛이 잘 드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생각해서 환경에 따라 쉽게 잘 자라는 식물들을 추천받고 식물 한 보따리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시원한 물 한 컵을 들이켜고 날이 너무 뜨거워지기 전에 일을 시작했다.
현실은 꽤나 치열했다. 푹푹 찌는 날씨 속에서 흙을 파내는 건 꽤 고된 일이었다. 땅이 생각보다 단단했고, 삽질 몇 번 만에 땀이 뚝뚝 흘렀다. 중간에 땅을 파내다가 배선을 건드려 야외 등이 나가기도 했다. 그래도 하나하나 심어진 식물들이 자리 잡아가는 걸 보니 뿌듯함이 느껴졌다. 그저 푸른 잎사귀들이 조금씩 모여 자리 잡고 있을 뿐인데도 황토색 마당이 초록빛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이 집이 진짜 내 공간이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덕분에 이 집에 더 큰 애정이 생겼다.
창문 너머로 내가 심은 이 초록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건 생각보다 훨씬 큰 행복이었다. 바람에 잎사귀가 살랑거리고 햇빛이 비치는 시간마다 초록빛이 달라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풀과 꽃 그리고 나무들은 계절이 없는 발리에서 유일하게 나에게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였다.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새로운 잎사귀가 나 있고 꽃봉오리가 맺혔다가 다시 지고, 그렇게 부지런히 피고 지기를 반복했다. 이 작은 초록 친구들은 쉼 없이 자기 일을 해내고 있었다. 그렇게 잎사귀 하나하나가 제 몫을 다하며 조금씩 자라나고 나무는 조용히 뿌리를 더 깊이 내렸다. 그리고 나도 본격적으로 발리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