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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 Oct 25. 2024

38. 434일 만의 마침표

발리에 <내 집짓기>

집을 짓기로 마음을 먹고 조로님과 미팅을 진행할 때만 해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팬데믹의 혼란 속에서, 이 계획이 정말 실현될 수 있을지 불안함이 앞섰다.


집이 절반쯤 지어졌을 때는 드디어 첫 백신이 나왔고 불안한 마음은 '내가 원하는 집이 잘 지어지고 있구나'라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집이 70% 정도 완성이 되니 기다림은 기대와 설렘으로 바뀌었고 2차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다. 머지않아 한국을 포함한 몇몇의 국가와 발리의 왕례가 가능하게 되었다.


발리가 완전히 개방되면서 한산했던 등굣길이 더 이상 조용하지 않았다. 고작 20만 원이었던 월세가 60만 원까지 오르고 매일 프로모션을 진행했던 카페들은 이제 그 프로모션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바야흐로 팬데믹이 끝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즈음에 공정률 99%, 드디어 입주 날짜가 정해졌다.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434일 만이었다. 


영원히 올 것 같지 않았던 그날이 왔다. 무엇보다도 더 이상 곰팡이 집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그래도 돌이켜 보면 이 곰팡이 집에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첫 학교 생활을 시작한 것도 이곳이었고, 처음 땅을 계약한 것도 이곳이었다. 그리고 계약한 땅에 첫 삽이 들어가는 순간도 이 집에서 맞이했다. 비록 불편하고 답답한 공간이었지만, 나의 중요한 첫걸음이 모두 이 곰팡이 집에서 이루어진 셈이다. 그렇게 이 집에서 두 해를 보내고, 세 번째 해가 시작된 1월, 나는 마침내 곰팡이 집을 떠났다.

이 날이 오면 미련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날 줄 알았는데 막상 떠나려니 만감이 교차했다. 집을 나서려는 순간, 그동안의 추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짜증 나고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이곳에서 울고 웃고 고민하며 나를 성장시킨 그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새삼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음 한편이 묘하게 저릿하며 시원섭섭한 감정이 들었다.


 애증의 곰팡이 집, 이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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