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N Oct 25. 2024

37. 발리 신령님들, 인사드리옵니다.

발리에 <내 집짓기>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무슬림 인구를 가진 나라로, 이슬람교가 주요 종교다. 하지만 유일하게도 발리섬은 이슬람교가 아닌 힌두교가 대 다수인, 인도네시아 안에서도 굉장히 특이한 지역이다. 발리 힌두교는 인도의 힌두교와는 차이가 있는데 발리의 토착 신앙과 힌두교가 혼합된 형태로 인도와는 또 다른 발리만의 독특한 종교적 문화가 있다.

그리고 발리의 종교는 일상과도 굉장히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발리 인들은 하루에 세 번 이상 차낭사리라 불리는 작은 공양 의식을 진행한다. 아마 발리에 한 번쯤 여행을 와 본 사람들은 길가에 작은 잎사귀로 만들어진 바구니를 본 적이 있을 거다. 그 외에도 동물, 자연등 주변에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위한 의식과 제사가 존재한다. 이를 알고 발리를 보면 왜 발리가 '신들의 섬'으로 불리는지 이해할 수 있다.

건축을 하는 데 있어서도 발리인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종교의식이 행해지는데 보통 집을 짓기 전과 집을 완성한 후, 또 이사하기 전에 행해지는 의식들이 있다. 나는 힌두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발리에 터를 잡고 살기로 다짐한 만큼 가능하면 발리의 문화를 따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집이 거의 완성되었을 때 발리식 힌두 세레머니인 멜라스파스(Melaspas)를 하기로 결정했다.

멜라스파스(Melaspas)는 신성화하는 의식으로, 집이나 건축물이 완성된 후 그곳을 정화하고 축복하는 과정이다. 이 의식은 보통 집주인과 가족, 지역사제가 참여하는데 감사하게도 땅 주인아저씨의 가족들도 이 세레머리에 참석해 주셨다.

본격적으로 세레머니가 시작되었는데 먼저 페다깅간(Pedagingan) 의식이 시작됐다. 인부들에게 집 입구의 콘크리트 블록을 한두 개 정도 들어내 달라고 부탁을 하고 땅을 파내 그 속에 다양한 종류의 제물 (예를 들어 쌀, 동전, 꽃, 성수, 부적 같은 게 포함된다). 을 넣은 후 이를 다시 묻었다. 이 제물은 땅과 건물을 신성하게 하고 보호와 번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발리인들은 땅에도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어 집을 짓기 위해 거두어진 이 땅의 각종 나무들, 등 그 안의 생명들과 토지의 영혼이 불쾌하지 않도록 제물을 묻고 의식을 통해 그들을 존중하는 절차였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한 반텐(Banten)이라 불리는 제물을 집 밖, 집 안에 쌓아두었다. 이 과정은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악령을 쫓아내는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 그 공간이 신성해지도록, 보호받고 축복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는 절차였다. 그리고는 모든 방과 집구석에 성수를 뿌리고 향을 피워 부정적인 에너지를 정화하는 의식이 계속되었다.

세레머니를 지켜보고 있으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참 평온해졌다. 실제 이 땅의 신들이 나를 보호해 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이 땅에서 자라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존중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나는 본격적으로 발리의 신령님들께 신고식을 치루었다.

 

“Om swastiastu 잘 부탁드립니다"                                                                                            




세레머니를 끝내고 집이 하나둘씩 정리가 되어 갈 때쯤 미리 주문했던 이케아와 각종 집기들이 집으로 배달이 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루는 택배 기사 아저씨에게 연락이 왔다.

“혹시 너네 집에 있던 고양이 네가 키우는 거야?”
”아.... 점박이 고양이? 내가 키우는 거 아닌데..?”
“그럼 내가 대려가 도되?”
“아 그럼 잠깐만 기다려봐, 혹시 동네 주민 중에 주인이 없는지 확인 먼저 해 볼게”

이 새끼 고양이는 주인이 없는 고양이였고 결국 우리 집에 택배 배달을 와 주시는 택배 아저씨께 입양이 되었다.

그리고 이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하루는 모르는 번호로 부터 연락이 왔다. 택배가 도착했는데 집에 사람이 없는 것 같다며 집 앞에 두고 간다는 메시지였다. 감사하다고 답장을 했는데 아저씨께서 대뜸,

“기억해? 예전에 내가 고양이를 데려가도 되냐고 물어봤었는데? 고마워 “
“아!!!! 고양이는 잘 지내고 있어?
“응, 이제 다 컸어! 너무 고마워!”

발리도 한국 처럼 택배 아저씨들이 지역이 지정되어 있어 매번 오시는 아저씨가 항상 오시는데 그때 고양이를 데려간 아저씨가 연락을 주신 것이었다. 고맙다고 계속 말씀하시는 걸 보면 이 고양이가 아주 애교도 많고 귀염둥이 인가보다. 참 다행이다 싶었다. 기사아저씨는 간혹 우리 집에 들르실 때마다 고양이 안부를 전해주셨다. 새로 이사 올 곳에서 좋은 일을 한 것 같아 괜시리 마음이 뿌듯했다. 좋은 곳으로 잘 입양가서 다행이다. 아가야! 행복해라.

이전 18화 36. 초록의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