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 집을 짓고 정착하기까지의 과정과 집에 대한 이야기
눈이 번쩍 뜨여 휴대폰의 시간을 확인하면 신기하게도 언제나 새벽 4시 57분이다. ‘오늘 또 이 시간이네?’ 라고 생각하며 다시금 이불속을 파고드는데 3분 후 알람 소리와 동시에 무드등이 켜진다. 세상 달콤한 3분간의 쪽잠을 내 무의식 역시 좋아하는지 항상 알람 시간 3분 전에 눈이 뜨이는데 바로 일어나는 법이 없다. 이렇게 알람이 울리기 시작하면 고양이 두 마리가 야옹거리며 내 침대로 올라온다. 얘네들은 특별히 나를 깨우거나 하지는 않는데 불이 켜지면 꼭 내 다리 사이로 들어와 똬리를 뜨고 앉아있다. 몸을 일으키면 고양이 두 마리의 귀가 쫑긋 보이는데 이렇게 귀여움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새벽 5시에 일어나도 전혀 피곤하지 않다,라는 건 살짝 과장을 보탰지만 어쨌든 도움이 된다. 제일 먼저 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주고 나는 겨우 세수를 하고 이를 닦는다. 그리고 잠이 깨기 전에 옷을 주섬주섬 입고 무작정 밖으로 나간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은 발리다. 한국은 여름이 되면서 해가 길어지고 있겠지만, 남반구에 위치한 이곳은 반대로 해가 짧아지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새벽 5시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면 아직 어둠이 지천이다. 콧속으로 시원하지만 차갑지 않은 바람이 들어온다. 습습하지 않은 신선한 공기를 맡을 수 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발리의 겨울, 건기가 드디어 왔다. 마치 의식을 치르는 마냥 온몸으로 계절감을 느끼고 킁킁거리며 주변 풀냄새를 맡는다. 그리고는 2m가 넘는 서핑보드를 들고 와 오토바이에 싣는다. 그렇게 나는 매일 새벽 바다로 향한다.
아무도 없는 텅 빈 해변에 반가운 얼굴들이 속속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눈인사를 나눈 후 함께 바다로 들어간다. 수평선 바로 위에는 속이 꽉 찬 보름달이 수면에 반짝이는 금빛 물길을 만들어준다. 달빛을 따라 신나게 서핑하다 보면 이내 몸이 뜨거워진다. 곧 나의 시선도 함께 뜨거워지는데 수평선 반대쪽 하늘에서는 어느새 태양이 올라와 어둑했던 보랏빛 바닷물을 푸르스름한 코발트색으로 밝힌다. 하늘이 맑은 날에는 떠 있는 달과 떠오르는 태양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다. 내가 가장 아끼는 발리의 황금 시간이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나의 시간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스쿠버다이빙 강사인 나는, 서른이 되던 해, 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바다에서 시간을 보냈다. 태국에서 3년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 5년, 평생을 여행하며 발길 닿는 곳을 집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30대 중반이 지나니 그만 정착하고 싶어졌다. 다이빙도 하고 서핑도 할 수 있는 곳, 바다가 천지에 있는 곳, 너무 도시도, 시골도 아닌 곳. 언제부터인가 발리는 내 마음속 살고 싶은 곳 일 순위가 되었다. 이렇게 ‘언젠가는 발리에 정착하고 싶다’라고 생각하던 찰나, 인도네시아 길리 트라왕안 섬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나는 팬데믹을 맞이했다.
이전에는 세상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고 그 속에 나는 항상 정체된 느낌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멈춰버린 세상에서 나의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차게 요동치고 있었다. 불안하고걱정되는 마음속엔 이상하게도 심장을 간질간질하게 하는 설렘이 있었다.
왜였을까?
묘하게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시간이 나에게는 뭐든 해봐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이었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인도네시아에서 팬데믹을 보내며
발리에 집을 짓고 정착하기까지의 과정과 그 동안 겪었던 '집'에 대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