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50일 : 자연 속으로] 라센 볼캐닉 국립공원 편
어디를 가든
어디에 있는
장소마다 정해진 이름이 있다.
내가 이날 도착한 장소의 이름은
"라센 볼케닉 국립공원"
추운 겨울 하얀 눈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던 장소
그 눈의 무게로 사람들의 입장을 못하게 만든 장소
그 닫힌 문 앞에 서있는 사람은
오직 나 혼자 뿐이었다.
하지만
공원의 문은 닫혀 있었지만
자연은 나를 방기며
자연으로 입장할 수 있는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그 이야기를 지금 시작해 볼까 한다.
<청춘 일탈> 저자 Kyo H Nam
나 홀로 떠난 자연 여행 24일
내가 도착한 자연은 미국 캘리포니아 북쪽에 위치한 라센 볼캐닉 국립공원이었다.
날씨는 점점 봄으로 달라지고 있었지만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봄의 기운은 다시 겨울의 기운으로 달라지고 있었다.
처음 공원으로 향하는 길은 고요했다.
길을 달리며 보이는 차들은 없었으며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 또한 찾을 수 없었다.
공원과 가까워질수록 하얀 눈들이 흩날리는 모습과 마주 하기 시작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 공원에 도착했을 때
공원 입구에 보이는 차량은 내가 몰고 있는 차 한 대뿐이었다.
공원 관리 안내소 건물이 보였고
차에서 내려 건물로 다가가 문을 두드렸지만
그 어떤 반응도 들려오지 않았다.
건물 유리 앞에 붙여 저 있는 종이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당연했다.
이 많은 눈이 내려앉은 공원을 오픈한다는 건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험에 빠트리는 행위일 게 뻔했다.
하지만 왜일까?
이제는 공원이 닫혀 있다는 게 오히려 나에게 위안과 편안함을 안겨준다.
여행을 시작하고 사전 정보 없이 흐름에 따라 기분에 따라 자유한 마음으로 여행을 하다 보니
이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힐 때가 많다.
닫힌 공원의 문 앞에서 나는 스스로 한마디를 내뱉는다.
"어.. 닫혔네.."
그리고
실실거린다.
이 얼마나 황당하고 이 얼마나 자유스러운가?
여행 중반,
나의 생각엔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 큰 공원에
사람은 오직 나뿐이라는 생각
그리고
이 거대한 자연이 반겨주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
이 얼마나 영화 같고 멋진 일인가?
공원의 문은 닫혔지만 자연의 문을 통해 나는 레센 볼캐닉의 자연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공원 안내소에 차를 주차하고
나는 수북하게 눈이 내린 숲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눈 밟는 소리와 나의 숨소리가 자연 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때 내 눈 앞에 부러져 쓰러진 나무 하나가 보였다.
마치 자연이 나에게 쉬고 가라고 만들어준 의자처럼..
그 딱딱하고 거대한 쓰러진 나무 위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았다.
숲을 걸으면서 무릎 아래까지 오는 눈을 밟고 오다 보니
이 나무 위에서의 휴식에 참으로 감사함을 느낀다.
그렇게 한참을 자연이 선물해준 의자에 앉아
자연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생각이 없어진다.
코로 들이마신 차가운 공기와
피부로 느껴지는 거친 나무의 질감은
내 마음과 생각으로 찾아들기 시작했다.
지긋이 눈을 감고
느껴지는 자연과 마주한 뒤
나는 다시 숲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숲길을 걷던 중 이번에는 자연이 내 귀를 자극시킨다.
미세하게 들려오는 물줄기의 소리였다.
물줄기의 소리를 따라 도착한 자연은 작은 계곡? 시냇물이었다.
날씨가 점점 따스해지면서
눈이 녹기 시작하고
그 녹아내린 물은 이 계곡을 따라
봄을 맞이할 준비를 시작하고 있단 느낌이 들었다.
장갑을 벗고 계곡에 다가가 손을 담가보았다.
마치 숲에 생명을 전해주러 가는 듯
흐르는 계곡물에서 느껴지는 차갑고도 따스한 느낌은 뭘까?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더 어두워지기 전 왔던 길을 따라 공원 안내소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더 있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그러면 안 된단 건 이미 자연을 통해 배웠기에 아쉬움과 감사함을 느끼며 다음 자연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자연과 마주할 용기가 있다면 자연은 놀라운 것들을 내게 선물해 줄 것이고
자연에게 욕심을 부리면 자연은 나를 위험한 순간으로 인도해 준다.
라센 볼케닉 자연을 뒤로하고 다음 자연으로 향하는 길
내가 달리는 길 위로 붉은빛의 노을이 지는 모습이 보인다.
기나긴 운전이 되겠지만
길 위 노을 지는 석양의 모습으로
나의 마음 가운데 평안과 기대가 공존한다.
태영이 땅 뒤로 숨어버렸지만
짧은 시간 하늘은 아직 나를 기다려 준다.
스멀스멀 어둠이 깔리 시작하는 세상 아래
나 홀로 텅 빈 길 위를 달릴 때 느껴지는 모든 것들이 색다르다.
여행 24일이 지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자유했고
편안했고
여유가 있었다.
밤 12시가 넘어서 달리던 길 옆에 차를 세웠다.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장소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리다 피로감에 차를 새웠다.
차에 시동을 끄고 밤하늘을 바라본다.
수많은 별들이 나를 주시한다.
며칠째 제대로 씻지도 못한 몸했기에
노숙자나 다름없는 내 모습에 웃음이 난다.
하지만 이 또한도 좋았다.
뭔가 재미있는 사진을 담고 싶어 진다.
늦은 시간 산속 어딘가 카메라를 꺼내
플래시 라이트를 이용해 날 노숙자로 이름 지어본다.
자연 안의 노숙자
이날 밤 난 자연이 만들어준 노숙자로
숲의 나무들과 하늘의 별들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