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지 않는 도시, 뉴욕의 美
사진작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떠나는 여행은 평범한 여행과는 다르다. 묵직한 카메라를 신체의 일부처럼 들고 다니며 매 순간 마주하는 것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시선을 두며 관찰을 해야 한다. 꽤나 힘든 여정이지만 하지만 그만큼 평범한 사람들이 마주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마주하게 된다.
쉴 틈 없이 마주한 아름다운 미국 대도시 뉴욕에서의 두 번째 여행 이야기를 지금 시작한다.
<청춘 일탈> 저자 Kyo H Nam
뉴욕 여행 3일 차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생각이 든 건 허기진 내 배를 채우고 싶은 생각이었다. 이번 여행의 주제를 정할 때 음식은 그리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배제했었다. 하지만 뉴욕에 도착 후 허기진 배로 찾은 레스토랑들의 음식 맛에 단번에 반해버렸어. 오늘은 맛집을 한번 찾아가 보고 싶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찾은 맛집은 “NAKAMURA:나카무라”라는 일본 라멘집이었다. 윌리엄스 부르크 다리 근처에 위치한 나카무라 라멘집의 규모는 작았다. 오전 11시 반쯤 식당이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추어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1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실내는 조촐하지만 분위기 있게 인테리어가 되어있었다. 나는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라멘과 음료를 주문했다. 주방에서 딸그락 거리는 음식 만드는 소리와 밖에서 들려오는 도시음이 내 귀를 자극시키고 창가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식당 내부로 진한 라멘 냄새가 풍겨오는 게 내 코를 자극한다. 5-10분 기다리자 드디어 라멘이 나왔다. 진하고 고운 색의 육수 안에 고르게 놓인 면, 그 위로 어묵, 채소 그리고 잘 구운 고기 한 점이 보였다. 김은 따끈한 육수 물에 몸을 지긋히 담그며 내게 빨리 맛을 보라고 유혹하고 있었다. 입 안으로 라면이 들어가기도 전에 눈으로 보는 맛이 좋았다.
젓가락을 집어 들고 라면을 휘휘 저은 뒤 면은 한 움큼 집어 들고 입으로 후후 불며 식힌 뒤 내 입으로 라면을 맛본다. 육수의 풍미와 면의 쫄깃함이 느껴졌다. 감칠맛도 있었다. 적당한 짠맛과 약간의 고소함, 미세한 단맛이 차래대로 전해 젔다. 맛집이 분명했다. 셰프의 정성 또한 느껴진다. 맛을 음미하며 라면을 먹고 있는 내 모습이 재밌었는지 서빙을 보던 남자가 나를 힐끗 보며 미소를 짓는 게 느껴졌다. 어느덧 그릇은 깨끗하게 비워지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아직 손님이 나 혼자였기에 나는 주인장을 한번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서빙을 보던 남자는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 주방에 있던 주인장을 내 앞으로 데려와줬다. 나는 너무 맛이 있었다고 말을 건네고 사진 한 장을 담고 싶다고 말했다. 주인장은 너그럽게 좋다고 하고 내 사진에 담겨주었다.
전에는 여행에서 음식을 주제로 하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하지만 뉴욕은 내게 여행의 주제를 음식으로 정해도 좋을 것이라고 입바람을 불어넣어준다. 오늘 찾은 라멘집을 통해 나는 일본 라멘의 매력에 흠빡 빠저버렸다.
늦은 오후 만날 사람이 있었다. 전에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새로운 친구였다. 그 친구의 이름은 제니, 여행을 시작하기 몇 달 전 사진에 대한 질문과 답을 주고받다가 인연이 되었다. 제니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 동생이었지만 어른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여자였다.
첫 만남 시작은 뉴욕 모마 미술관(MOMA Museum)으로 향하면서 이루어졌다. 제니의 첫인상은 이국적이면서도 한국적인 여성상이었다. 같이 길을 걸으며 나누기 시작한 대화를 통해 우리는 조금씩 전보다 편한 관계로 천천히 달라지고 있었다. 화려한 뉴욕의 도시만큼이나 제니의 말투와 행동에서 세련미가 느껴진다. 미국에서 자란 제니의 자유스럽고 유쾌한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다.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에 문이 활짝 열린 성당 안으로 들어가 잠시 감상을 하며 뉴욕 도시의 매력에 같이 젓어든다.
모마 미술관에 도착한 우리는 입장표를 구입하고 미술관 나들이를 했다. 뉴욕 모마 미술관은 줄임말이다. 모마 미술관의 전체 이름은 “Museum of modern Art”이며 그 뜻은 현대 미술관이다. 수많은 유명 작가들의 미술품들이 전시되어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영감과 에너지를 선물해주는 장소이다.
몇 시간 미술관 관람을 마무리하고 모마 미술관 내부의 야외 테라스 쪽으로 이동해 제니의 인물 사진을 담아주기 시작했다. 제니와 나는 사진으로 이어진 인연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자연스레 관계를 이어나갔다. 저녁 시간이 다가오면서 우리는 저녁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 그녀의 추천으로 베네수엘라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내 인생 첫번쩨 베네수엘라 음식을 도전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워낙 음식은 가리지 않고 잘 먹기에 어떤 음식이든 상관이 없었지만 처음 도전하는 음식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그녀가 이끌고 간 레스토랑은 “Caracas Arepa Bar”이라는 이름의 베네수엘라 레스토랑이었다. 우리는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그녀가 추천해준 아레빠 : Arepa와 맥주를 주문했다. 시원하게 서로의 맥주잔을 부딪히고 맥주 한 모금을 마실때즘 주문한 아레빠가 나왔다.
바삭하면서도 쫀득한 식감의 따끈한 빵 안으로 간이 잘 배고 향이 좋은 토핑들이 넣어져 있는 맛있는 음식이었다.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평범해 보였지만 아레빠를 한입 베어 물자 왜 제니가 나를 이곳으로 이끌고 왔는지 알 수 있었다. 너무나도 맛있는 음식이었다.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마무리하고 디저트로 아이스크림까지 사 먹고 나서야 우리의 저녁식사는 마무리되었다.
날이 저물면서 뉴욕 도시의 화려한 조명들이 찬란하게 빛날때즘 나는 제니의 사진을 더 담아주기 시작했다. 뉴욕 중심가인 타임 스퀘어 쪽으로 걸으며 오색빛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조명을 받는 제니의 모습을 카메라 안으로 담기 시작한다. 오히려 낮보다 밤에 담기는 사진이 묘한 매력이 담기는 느낌이 든다.
완벽히 하늘은 어두워졌지만 뉴욕 땅위는 낮보다 화려하게 빛난다. 저녁시간이 더 늦기 전에 나와 제니는 해어졌다. 하루 반나절을 같이한 제니와의 첫 만남에서 다시 한번 뉴욕 도시의 새로운 매력에 빠져든다. 하루 종일 화려 했던 순간을 기억하며 추억한다.
다음날 아침 일찍 뉴욕 도시를 걷기 시작했다. 전날 밤의 화려했던 제니와의 만남의 기억을 품고 새로운 기대를 품으며 걷기 시작한다.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는 인파 속에 숨기도 하고 길 옆으로 삐져나와 잠시 그들을 바라보기도 한다. 내가 잠들어있던 순간에도, 느리게 걷는 순간에도, 멈춰 선 순간에도 뉴욕 도시는 쉴 틈 없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오늘 점심은 혜수 친구와 같이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먹기로 했다(뉴욕 1/5 편에 소개된 친구) 식당에서 먹는 것이 아닌 뉴욕 공립 도서관 뒤에 위치한 브라이언트 공원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공원 안은 점심 식사를 하러 나온 뉴요커들로 북적였다.
잔디밭에 자리를 잡고 누워있는 젊은 남자, 여유롭게 태양빛을 받으며 렙탑을 들여다보는 여자, 심각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아저씨들, 인상을 쓰며 통화를 하고 있는 커리우먼상의 여성 등등.. 어떤 사람은 물구나무 연습을 하고 한 아이는 오페라의 주인공처럼 공원 안에 설치된 회전목마 워에서 고래고래 노래를 부른다. 전혀 어울릴 거 같지 않은 다양한 풍경들이 한 공간에서 하모니를 이루며 뉴욕스러운 에너지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내가 여행을 떠나와서 일까? 아니면 뉴욕만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일까? 아마 내가 여행을 떠나와서이기보다는 뉴욕만이 지니고 있는 다양함을 하나로 연결해주는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혜수와 점심식사를 끝내고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여행의 주제 중 도시 건축이 하나의 주제였기에 혜수와 뉴욕 거리를 걸으며 도시 안에 자리 잡은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들을 바라보고 사진으로 담는다. 일정하게 나열된 창문들이 가득한 건축물, 반대편 건물 창에서 빛이 반사되어 벽면을 아름답게 장식한 건축물, 모서리가 절묘하게 각진 건축, 줄지어 나열된 아파트지만 다양항 색과 미세하게 다른 질감이 느껴지는 건축물까지… 길을 따라 단순하게 걷고 바라보는 시간 속에 뉴욕 건축물의 숨결이 묻어난다. 그 묻어나는 숨결에 아름다움이 전해진다.
혜수와 몇 시간 동안 걷고 또 걸어서 우리는 그리니치 빌리지 : GreenwichVillage 쪽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니치 빌리지는 혜수가 와보고 싶어 하던 동내였다. 노을이 지면서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를 맞이하는 시간의 그리니치 빌리지는 근사했다. 그 근사한 분위기를 무대 삼아 혜수의 사진을 담아주기 시작한다. 오늘 그녀가 입은 새하얀 원피스가 노을 지는 그리니치 빌리지의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렸다.
만약 나 홀로 이 장소를 찾았다면 이처럼 따뜻하고 아름다운 장면의 사진을 담지 못했을 것이다.
뉴욕의 밤이 찾아올때즘 혜수와 헤어졌다. 늦은 저녁 홀로 뉴욕 밤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중심가 쪽이 아닌 외각 쪽 거리를 걸으며 뉴욕 도시의 또 다른 매력을 감상한다. 늘 북적이고 산만할 거 같던 뉴욕 도시가 아닌 한산하고 잔잔하게 흐르는 뉴욕의 모습을 마주한다. 도로 위로 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지나가는 노란색 택시들과 조명 킨 차량들 소리는 여전히 우렁차지만 그 소리마저 어두운 뉴욕 도시를 아름답게 만든다. 전철역 근처에서는 야근을 하고 퇴근한 사람들의 무거운 어깨들이 느릿하게 움직이고, 달달한 연인들은 운치 있게 상대방을 바라본다. 너무나도 다르고 너무나도 상반된 모습이지만 그 누구도 자신 이외에 사람들에게 간섭하지 않는다. 그 조화가 뉴욕을 더 뉴욕스럽게 만들고 더 아름답게 만든다.
내일의 뉴욕은 또 어떤 풍경으로 내게 다가올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