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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주 Apr 28. 2024

장애인은 좀 더 장애인처럼(?)

장애인의 틀에 끼워 맞추려는 사람들 

대학을 들어가 천방지축이던 새내기들이 재잘거리며 강의를 기다릴 때 한 교수님이 들어왔고 그 교수님의 말씀 중에 책을 들어 눈 가까이 가져가는 맹인학생에게 특수교사가 "맹인이 왜 눈을 드리대 손가락으로 읽어야지"라며 학생의 머리에 알밤을 때리더라는 말씀을 하며 뭔가를 보고 읽어야 할 때 무의식적으로 잘 안 보이는 것을 눈 가까이 가져간다는 것은 아직도 사용할 수 있는 잔존시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셨다. 그분이 강조하는 것은 가끔 우리는 장애라는 틀이 씌워지면 그 장애의 특성에 걸맞은 행동을 요구게 되는데 "장애"의 구분을 짓는 것은 정책과 재정을 정하기 위한 것이지 장애인 자체를 그 틀에 묶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장애라는 구분 안에서도 각 개인의 능력과 특성이 너무도 다양하기 때문에 그에 맞는 교육이 마련돼야 한다는 점이다. 


또 그 교수님은 지적장애가 무엇인지를 이해시키기 위해 "우리는 청각장애인에게 '왜 못 들어, 왜 못 들어?'하지 않으며 또 시각장애인에게 '왜 못 봐, 왜 못 봐?'하고 추궁하지 않는다고 했다. 맞다. 눈에 보이는 감각에 장애가 있는 경우에는 그 손상된 감각을 보상하는 다른 감각을 통해 학습할 것을 기대한다. 당연히 지체장애인에게 "왜 못 뛰어?"라고 채근하며 강요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지적장애인에게는 "왜 못 알아들어?"라고 말을 하느냐며 다른 보상방법을 생각해 내서 교육을 하는 것이 맞다고 우리 대학 새내기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셨던 것이 지금까지 머릿속에 막혀 있다. 못 듣는 청각장애인에게는 보청기나 인공와우를, 시작장애인에게는 확대경이나 점자로 일반교육을 받는데 도움이 되는 보조장치를 이용한다. 그러니 지적장애인들에게도 "학습능력"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시각적 자료나 그들이 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 교육해야 한다. 


나는 지체장애로 휠체어를 타기 때문에 램프가 달린 차량을 탄다. 정부의 재활과에서 장애인 차량을 제공받기 위해서는 운전자 평가를 한다. 사실 나는 휠체어를 쉽게 실을 수 있는 램프 외에는 비장애인들과 같이 자동변속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다. 물론 오르막 언덕길에서 정지했을 때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 자동차가 뒤로 조금 흐를 수 있기 때문에 가속페달을 밟기까지 핸드컨트롤을 사용해 브레이크를 잡고 있으면 좀 더 안전함을 느낀다. 처음 운전평가를 위해 재활과에 갈 때는 혹시라도 검사자가 특별한 장치가 아무 필요가 없다고 하며 자동차를 안 주면 어쩌지 하는 생각까지 하며 찾아갔다. 생각과는 달리 이것저것 내가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로 필요이상의 것을 다 추천하면서 운전석의 좌석을 빼고 휠체어에서 운전할 수 있도록 자동차를 개조해 주었다. 


조금 과장하면 손가락 힘만 있어도 운전을 할 수 있게 개조를 한 뒤에는 나에게 운전면허 시험장에 가서 그런 기계장치들이 없는 차량은 운전하면 안 된다는 제약조건들을 기재한 면허증을 새로 발급받으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권해 만든 개조차량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니 결국 나는 그 개조차량 이외의 차량을 운전하면 안 되는 것으로 나의 자유를 완전히 막아버리는 처사인 것이다. 휠체어에 앉아 운전을 하기 위해 운전석 바닥에 휠체어 고정 자동 잠금장치, 힘을 들이지 않고 돌려도 휙휙 돌아가는 저항력 제로의 운전대, 살짝 밟기만 해도 엔진브레이크처럼 자동차를 순간에 세워주는 힘 제로사용 브레이크 시스템, 버튼하나로 휠체어 경사로를 펴주는 자동램프 시스템, 경사로의 각을 줄이기 위해 차제를 기울여 주는 시스템, 힘 안 들이고 밀고 당기는 방법으로 운전하는 핸드 컨트롤등 많은 보조장치가 되어있는 차량이다. 그 많은 보조장치들이 운전하기에 편리할 수는 있어도 내가 운전하는데 필수적인 것들은 아니라며 나는 반발했다. 


평가자들은 자신들이 필요이상으로 "추천"한 내용으로 차량을 개조하고 나서, 나에게 그런 장치에 맞는 장애인이 되도록 요구하는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나의 반발에 그들은 내가 안전하게 운전을 할 수 없으니 차량을 당장 회수해 가겠다고 위협을 했다. 개별화된 복지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사람들이 한 가지 틀을 만들고 나서는 오히려 나에게 그 틀에 맞게 행동하기를 요구하는 것이 현재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 차량을 회수하겠다는 것이 충분히 장애인을 자신들이 만든 틀 속으로 넣을 수 있는 도구라고 믿는 것 같았다. 나는 그동안 잘 사용했으니 지금 당장이라도 가져가라고 답했다. 그러자 갑자기 설득으로 돌아선 그들은 그렇게 좋은 차량을 왜 거부하느냐며 본인들은 나를 위해 내 편에서 일을 한다고 강조를 했다. 그들은 차량회수 방법보다는 법적인 문제를 들었고 얼마나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말했다. 오히려 거부하는 내가 더 단호했다. 그들은 나에게 하룻밤을 지내며 생각해 보고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다. 


나는 다음날부터 차량구입을 알아보았다. 그러며 특수교육과 복지담당자들이 본인들이 장애인에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장애인을 오히려 구속하는 것이 아닐까 하며 많은 생각을 했다.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빌미로 전문가들이 장애인에게 횡포를 부린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느낄까? 나는 며칠을 연락을 하지 않고 차량구입과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의 단호함에 그들이 먼저 연락을 했다. 너무도 너무도 부드럽고 자상한 내용으로 마치 아이를 달래듯이 나를 달래는 톤으로 적은 이메일이었다. 그러면서 평소에 사용하던 핸드 컨트롤만 알리고 운전면허 시험장에 가서 오히려 자기들이 "추천"한 모든 내용은 입도 뻥긋하지 말라고 했다. 또한 평가내용은 절대로 그들에게 보내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렇게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특수교사나 장애인 복지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장애인들에게 필요이상으로 장애의 틀에 맞추어가도록 강요하는 일을 어떻게 해야 줄일 수 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장애인을 복지의 대상으로 보고 비장애인보다 부족하고 무능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복지는 국민 모두의 권리이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동등한 사람으로 보는 사회적 시각으로의 변화가 필요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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