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우리 중의 한 명 (Just Fit-in!)
미네소타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할 때 나는 학부강의도 꽤 들었다. 한국에서는 장애로 인해 할 수 없었던 의대공부를 해볼까 하는 생각에 생물 화학 물리등의 기초 의예과 공부를 하기도 했고 미국 대학생들을 위한 영문과 수업도 들었다. 그 외에 다양한 체육 미술 음악등의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교양과목을 듣고는 했다. 한참 테니스에 몰두하고 있던 나는 테니스 수업을 신청했다. 물론 나는 휠체어를 탄다. 나는 첫날 수업에 그냥 갔다. 당연히 강사는 나에 대한 지식이 없었고 휠체어 테니스를 가르쳐 본 적이 없었다. 나를 처음 본 강사는 아주 짧은 시간 "어쩌지?" 하는 고민이 그의 머릿속을 맴도는 것 같았다. 나는 휠체어 테니스 선수로 미국 서북부 휠체어 테니스 대회를 출전했었고 복식 Open경기에서 우승을 한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 설명은 강사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잠시 움찔했던 강사에게는 내 휠체어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테니스 장으로 들어오는 길에 계단이 있는 것을 걱정했던 것이다. 잠시 후 테니스장 끝에 잠겨있는 철문을 열면 들어올 수 있다고 웃으며 알려주었고 그렇게 한 학기 일반 테니스 수업을 들었다.
튀르키예에서 휠체어를 타고 한 유명한 사원을 갔다. 관광객이 무척 많아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그들은 긴 줄을 서서 기다리며 걸었고 나는 휠체어를 타니 그들의 가슴 정도에 내 머리가 있었다. 나는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사람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휠체어에 앉아 있어 편하게 가는데 너는 서서 걸어야 해서 힘들겠다고 말을 하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기 나라의 말로 "맞네 맞아"하며 웃으며 (못 알아 들었지만 "맞네"라고 하는 것으로 해석했음, 결국 "웃음"은 국제적 공용어였음) 편안해질 수 있었다. 주변의 사람들이 휠체어를 탄 생소한 모습의 나를 보고 어떻게 하나 하는 작은 불편함을 나는 한순간에 유머로 웃고 넘기고 그들 속에 일원이 될 수 있었다. 현실적 불가능도 있었다. 웅장한 성전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계단밑에서 신발을 벗고 올라가야 하는 것이었다. 역시 국제적 관광지인 만큼 계단옆에 휠체어를 올려주는 리프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근엄하게 꼿꼿이 서있는 경비원에게 눈짓 손짓으로 리프트를 사용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아! 난색을 표하며 고장으로 사용불가라고 했다. 뭐 고장이 날 수도 있고 세계적인 흐름을 따라 눈요기로 만들어 놓은 것일 수 도 있겠다 생각하고 먼발치에서 성전 안으로 들어가 절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여기저기 고개를 돌리며 구경하는 사람들을 모습을 통해 나는 이미 다 본듯한 느낌으로 다른 곳을 향해 즐거운 관광을 했었다.
헝가리에서는 머물던 호텔이 오래된 건물이라 복도가 좁았지만 조금 뚱뚱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정도의 폭이면 내 휠체어는 당연히 쉽게 들어갈 수 있다. 부다페스트는 다뉴브강을 따라 위치하고 있어서 많은 유람선들이 관광객을 싣고 도시를 안내한다. 다양한 유람선 관광프로그램 중에 표를 구하고 택시를 잡아 포구로 갔다. 배에 오르는 선착장에는 리프트도 램프도 없었다. 하지만 생각을 할 틈도 없이 기다렸다는 듯한 두 명의 건장한 아저씨들이 나와서 나와 휠체어를 함께 번쩍 들어 가마처럼 배로 이동을 했다. 배 안에서 갈 수 있는 곳과 갈 수 없는 곳은 미안한 마음으로 설명을 해주었다. 배를 탄 비장애인이라고 배 구석구석을 다 훑듯이 다니지도 않을 테고 나라고 모두 다 갈 필요는 없었다. 풍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뱃머리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않아 오르락내리락하며 강기슭 양쪽의 산등성이에 위치한 고적들을 보며 설명을 들었다. 어떤 면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처우가 많이 발전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냥 "누구나" 속에 함께 살 수 있는 것도 좋다. 모든 장애인을 위한 접근성이 확보되지 않았어도 건장한 직원분들의 도움으로 남들처럼 배에 탈 수 있던 경험이 좋았다.
한국에서 골프를 치러 간 적이 있다. 미국에서는 휠체어를 타는 사람이 골프를 칠 수 있도록 고안된 카트가 있다. LA시에서 운영하는 골프장에 서너 대가 준비되어 있어서 미리 예약을 하면 내가 가려는 골프장으로 가져다 놔준다. 나는 허벅지까지 오는 브레이스를 신고 서서 치기 때문에 그런 카트까지는 필요 없다. 다만 카트가 페어웨이와 그린 근처까지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은 필요하다. 그것은 장애인 외에 노인분들이나 잠시 걷는 것이 힘든 사람들도 체크인을 할 때 말을 하면 장애인 깃발을 주고 그린 근처까지 가도록 허락해 준다. 한국에서는 캐디가 각 팀마다 있고 카트가 페어웨이에도 들어갈 수가 없다. 대전의 회원제 골프장과 몇몇 골프장이 가능하다지만 한국의 거의 모든 골프장은 갈 수가 없다. 나는 장애인도 골프를 칠 수 있게 접근권을 마련해 달라고 주장을 해야 한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은 장애인이 돈도 없는데 무슨 골프냐고 할 거라며 비웃었지만 한 친구가 "돈 있는 장애인도 접근권이 필요하지"라고 동조를 해주었다. 교육과 취업의 기회가 적은 장애인들이 저소득층에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복지"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는 사실이며 모든 사회활동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접근성과 편의성이 사회 활동과 환경에 보편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세상을 장애인과 노약자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 대신에 나는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세상을 이해하고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받아들이고 협상을 잘할 줄 안다. 난감해하는 비장애들에게 주어진 시간과 상황 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하고 내가 하지 않을 것을 말한다. 또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남이 한다고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의 장애를 할 수 없는 일을 미리 일일이 미리 알려야 하고 다른 비장애 참가자의 양해를 구하지 않고도 그냥 어느 누구와 마찬가지로 사회에 일어나는 활동에 스스럼없이 참여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누군가는 한 발 앞서서 세상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면 그중 한 명은 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