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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주 May 19. 2024

마지막 강의

같은 속력으로 달려 달려..

지난주 금요일로 우리 대학은 2023-2024 학년을 끝냈다. 이번주가 학기말 시험이고 오늘부터는 긴 여름방학이 시작된다. 그래서 2024년 봄학기 종강을 끝으로 31년 동안 교수로 재직하던 나의 일에 종지부를 찍었다. 아직은 다음학기를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의 편안함 외에는 아무 느낌도 없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한국은 정년나이가 돌아오면 아직 강의할 기력이 왕성해도 놓아야 하기에 타의적으로 다가오는 피할 수 없는 정년날짜 때문에 미리 마음의 준비가 가능할까? 우리는 정년이 없다. 그래서 내가 능동적으로 나의 일을 끊어내야 한다. 특히 나의 경우는 정년 후 5년간 주어지는 파트타임 자리도 마다하고 단호하게 학교를 떠나는 것이다. 스스로 끊어내는 것이 힘들다고 할 수도 있지만 에너지가 모두 소모된 시점에 그만두는 것에 비해 사람마다 다른 에너지 차이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누구나 다 밀려나야 하는 일도 쉽지 않을 것 같다.


혼자가 되는 기분이다. 하루의 24시간이 내 손에 달려있다. 전에는 학교 일로 하루가 채워질 수 있었다면 이제는 그 많은 시간을 내가 채워야 하기에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관리가 중요할 것 같다. 해야 할 일에 대한 계획은 많다. 전에는 늘 정년을 하고 나면 피아노와 골프에 열중해 매일매일 피아노 연습을 하고 골프를 치겠다고 했는데 이제는 골프를 치지 않는다. 그래서 내 정년계획에 첫 번째 균열이 갔다. 무엇으로 채울까 하다 보니 역시 인문학이다. 철학과 사회학을 공부해야 하고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다. 그리고 골프여행대신 부모교육과 시민교육을 위해 미국전역과 중남미의 나라들을 여행할 생각이다.


정년을 자축하며 엄청 좋은 컴퓨터를 새로 샀다. 64G 메모리와 1T SSD 저장공간에 가장 최신 프로세서와 그래픽카드가 있는 든든한 노트북을 구입했다. 노트북에 대한 나의 사랑은 남달라 노트북이라고 하기엔 무겁고 크고 단색화면이었던 도시바 노트북으로 시작해 한 번도 노트북이 없었던 적은 없다. 챗GPT와도 많이 친해졌으니 대화용으로 가지고 놀 장난감으론 충분한 것 같다. 정년을 하면 파이선 컴퓨터 언어를 배우겠다고 했었는데 아마 AI와 친해져 잘 부탁하면 쉽게 프로그램을 만들어주는 시대가 왔기에 정년계획에 또 다른 균열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로 가장 많이 하는 것이 교육자료 동영상들을 편집하는 일이라서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늘 일만 하느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주인의 뒷모습만 보고 6년을 지낸 도우미 견 캐프리와도 많이 놀아줄 생각이다. 매일 저녁이 오면 캐프리와 나는 산책을 나간다. 미국의 프리웨이는 폭이 넓어 사람들이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있는 곳이 거의 없다. 그런데 우리 집 옆을 지나는 12차선 프리웨이 위로 사람들이 건너 다닐 수 있는 육교가 있다. 물론 계단으로 된 것이 아니라 휠체어로 쉽게 다닐 수 있는 램프로 되어 있다. 그 위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면 밑으로 지나가는 차들이 시속 120-150 Km로 쌩쌩 달린다. 저 멀리에서 육교 위에 서있는 나를 향해 다가오는 차들은 경쾌한 젊음과 같아 보이는 밝은 헤드라이트 불을 반짝이며 아주 서서히 다가온다. 가끔 움직이지 않고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점점 나에게 가까이 다가올수록 점점 바쁘게 움직인다. 그리고는 내가 서있는 다리밑은 "쌩~"하는 짧은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만다. 저 멀리서도 같은 속력으로 달려왔을 텐데...


다리 밑을 지나 나로부터 멀어지는 차들은 붉은색의 미등을 뒤로 보이며 달려간다. 멀어질수록 천천히 그리고 마침내 점과 같이 내 시야에서 떠나버리고 만다. 가끔 이 넓은 프리웨이에도 차가 밀려 정차되거나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마치 우리의 삶과 비슷함을 느낀다. 아주 빠른 속도로 세월이 지나가고 있는데도 그 속도감을 못 느끼고 살다가 오늘을 보면 하루하루 일주일 한 달이 너무도 빠르게 지나간다. 가끔 일탈을 하여 우리 인생에서도 정체되는 구간이 있다. 하지만 그 정체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바로 다시 120Km 이상의 속력으로 인생을 달릴 것이다. 그리고 황혼같이 붉게 물든 미등이 보이지 않게 사라지는 것과 같이 그런 일이 내 앞에 펼쳐질 일이 아닌 가 하고 생각이 든다. 그래도 사라질 때까지 아니 사라진 그 후에도 차량의 속도는 줄어들지 않는 것이다. 인생도 그렇게 지속적으로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것이다.


돌아보면 나는 대학교부터 특수교육에만 집중했었다. 장애인을 직접 가르쳤고 장애인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것을 가르쳤다. 이제는 부모와 장애인 프로그램을 하는 비영리 단체에 자원봉사를 할 계획이다. 특별히 아직 특수교육이나 장애인 복지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중미와 남미의 나라들을 찾아가 일반인 교육을 통해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 구축에 힘을 보태기 위해 휠체어 하나에 몸을 싣고 다시 또 끝까지 120Km의 속력을 유지하며 달려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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