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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주 Jun 02. 2024

닌자 교육

일본여행 투쟁기

미네소타 대학을 다닐 때 일본인 친구 요꼬를 만났다. 나는 교육심리를 전공하고 있었고 요꼬는 경영학을 공부했다. 그 후 그는 석사만 마치고 한참 잘 나가던 일본으로 돌아가 외국계 대기업에 취직을 해 집값이 비싸기가 뉴욕을 방불케 하던 도쿄에 자기 집을 얻어 잘 살았다. 그렇게 잘 나가던 친구와 비교해 나는 여행하고 다양한 휠체어 스포츠에 빠져 5년이 넘도록 박사과정에 있었다. 가끔 일본생활을 이메일로 전하기도 하고 내가 일본으로 방문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며 요꼬가 먼저 정년퇴직을 했고 취미활동으로 댄스동우회에 들어가 열심히 댄스를 연습해 해마다 연말에 발표회를 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건강했던 친구가 인공 고관절 수술을 받고 나보다 한발 빠르게 노화하는 것 같아 지난주 시간을 내어 오랜만에 도쿄를 방문했다. 


그 친구는 골수 일본인이고 나도 그에 뒤지지 않는 애국심 뿜뿜 한국인이다. 가끔 부딪치는 경우가 있지만 요꼬는 주제를 피해버리는 방법을 취해 별로 부딪치지는 않았다. 오랜 친구이기에 같이 하와이도 여행을 했고 미국과 일본에서 같이 많은 여행을 하기도 했었다. 이번이 조금 다른 면이 있다면 우리 둘 다 조금 느려졌다는 것이다. 또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번에는 자신의 엄마가 일제강점기에 광주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를 하며 그 후 일본에 돌아와서도 김에 기름을 발라 소금을 뿌려 구워 주었는데 너무도 맛이 있어 지금도 한국 김을 선호한다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한다. 내 맘은 좀 아렸다. 하지만 나의 방문에 기뻐하던 요꼬는 모든 여행일정을 정했다. 이런저런 옵션을 주며 나에게 물었지만 나는 쉽게 갈 곳을 정했고 취소되고 바꾸고 뭘 해도 나는 다 좋다고 했다. 도쿄 시내관광과 후지산 관광, 홋카이도 관광을 결정하고 일본에 도착했다. 비교하려고 하지 않아도 슬금슬금 한국과 비교를 하게 된다. 전체적으로 좁아 답답하다는 느낌과 너무도 안정적인 분위기가 오히려 무겁게 느껴지는다는 생각이 압도적이다.


나는 여러 나라를 여행을 하며 장애인을 위한 접근권과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보고 만나는 한 사람씩 장애인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시민교육적인 면을 여행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도쿄관광을 택시를 대절해 다녔다. 오래전부터 일본과 영국의 택시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깨끗함과 안내를 위한 운전기사의 지식수준, 서비스의 질, 상냥함 등이 거의 표준화된 듯하다. 택시가 도착하자마자 운전기사가 내 휠체어가 들어갈지부터 고민을 했다. 뭐 일본말이라 못 알아들어도 역시 "구르마"하며 쳐다보는 것으로 의사소통 전체를 가늠할 수 있었다. 내가 먼저 바퀴를 빼고 등받침을 접어 트렁크에 넣고 바퀴는 내가 들고 타면 된다고 한국말과 제스처로 말을 했다. 제스처.. 뭐 서로 대충 알아들을 수 있는 국제어인 만큼 기사가 운전석에서 내려 도와주며 도쿄관광을 시작했다. 길은 진짜 깨끗하고 한국처럼 많은 사람들이 길에 걸어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에도 일본을 왔을 때 휠체어가 있었는데 그때는 지금만큼 제약이 적었던 것 같은데 왜 지금 더 많은 제약을 느끼는 걸까? 


일본에도 휠체어 접근권을 위해 만들어 놓은 램프의 경사각도가 한없이 높고 짧은 경우가 많았다. 미국에서는 1:12 (약 5도) 정도의 경사기울기를 거의 정확히 지키고 있다. 하지만 좀 가파르고 짧아도 그것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장애인이 갈 수 있고 없고를 결정하기 때문에 나는 어떤 형태라도 있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감사한다. 지난번 시청 앞 근처에서 식당을 찾아 헤맬 때 한국의 건물에는 꼭 한 개라도 계단이 있기 때문에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무척 적었다. 일본은 사실상 80퍼센트 이상의 건물에 진입하는 계단이 없다는 것이 나에게는 놀라웠다 (80퍼센트는 나의 개인적 예측치이다). 우리나라도 상업적 건물에 진입을 있도록 작은 경사를 만든 것들이 2000년대 이전보다 훨씬 눈에 띈다. 작은 경사로라도 만들어 놓은 마음에 감사하고 발전한 모습을 느낄 있었다. 그런데 변화하는 것이 무척 느리고 힘든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접근권이 좋다는 사실놀라웠다.


우리나라나 일본은 오래된 건물들이 많아 접근권을 위해 경사로를 만드는 것이 힘들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일본에서도 접근권이 발전한 것처럼 우리나라도 할 수 있었던 것을 경험했던 때가 있다. 1988년 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장애인의 올림픽 축제인 패럴림픽을 같은 나라 같은 장소에서 개최하는 것을 세계에 공식화하였다. 그 이후 올림픽을 개최하는 모든 나라들은 일반 올림픽이 끝나고 2주 뒤에 바로 패럴림픽을 개최한다. 나는 1988년 미국 휠체어 농구팀의 기록담당으로 함께 참가를 했었다. 우리 팀은 하루 경복궁을 찾았다. 진짜 우리나라 고궁은 휠체어를 타고 가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때 이미 나무로 휠체어 경사로를 짧게라도 만들었던 것에 너무도 놀라고 감동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경사로가 있던 곳이 바로 이태원이었다. 외국인이 많이 왕래하는 곳이어도 경사로가 없었는데 패럴림픽 기간 중에 휠체어를 사용하는 선수들을 맞이하기 위해 여기저기 경사로를 만든 것을 보았다. 그래서 장애인을 위한 시설의 변화는 나라가 움직일 때와 돈이 움직일 때라는 것을 깨달았었다. 그러나 시설의 변화와 함께 더 중요한 것은 시민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홋카이도 여행을 위해 요꼬와 하네다 공항으로 나갔다. 요꼬는 여행사 직원을 만나 엄청 오랫동안 대화를 했다. 직원의 말은 장애인 서비스 부서로 가서 휠체어를 체크인하고 그들이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들어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도어체크를 할 거라며 그만 가자고 요꼬를 끌어당겼다. 으잉? 요꼬가 나를 뿌리치고 직원과 한 20여분을 더 대화를 하더니 항공사 데스크까지가 멀다며 나보다 앞서 종종 대며 걸어갔다. 힘차게 휠체어를 밀어 따라가며 내가 아는 방법을 설명하기도 하고 그냥 가면 된다고 말을 해도 일본은 다르다며 일본의 제도에 따라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고지식하고 막무가내인 요꼬가 다른 어떤 사람들 보다 오히려 더 나의 휠체어를 막아서는 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요꼬의 팔을 잡아 세우고 내 보딩패스를 달라고 하고 단호하게 비행기 입구에서 만나자고 하고 혼자 돌아섰다. 장애인 우선 라인으로 들어갔다. 한참 후 요꼬가 검색을 통과해 들어와 나를 발견하고는 놀라며 내 말이 진짜였다는 것을 깨달을 듯 "이제는 너를 믿어"라고 했다. 장애인 서비스가 늘어난 만큼 모든 장애인을 한 서비스에 몰아넣으려는 것이 아마 내가 지금의 일본이 옛날보다 더 큰 제약을 느끼는 이유인 것 같다.


요꼬는 여행사 직원과 공항 장애인서비스 직원들을 탓하며 일본의 고지식함과 전 직원 교육을 통해 다양한 서비스가 있는 것을 가르쳐 올바르게 손님들을 안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뭐 그렇게 과하게 까지... 나는 적어도 장애인을 돕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과 한 가지 방법이라도 정확하게 알린 것이 긍정적이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각각 장애인이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으니 귀기우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듣는 것이 중요하고 장애인들 또한 그들이 받기 원하는 도움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자기주장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요꼬에게 드디어 내 말에 귀기우리고 믿겠다고 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며 나는 그렇게 한 사람씩 변화하는 것을 보는 것이 내 미션이라고 말했다. 여행사 직원이 나중에 들어오자 요꼬는 자기가 새롭게 깨달을 것을 격하게 설명했다. 직원은 자신은 회사에서 알려준 것 외에 몰랐다며 수도 없이 사과를 했다. 나는 다음번에 장애인을 만나면 한번 "물어봐"주라고 했다. 그리고 "게이트 체크"를 원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 됐다고 하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나는 체제와 법적 큰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내 수준에서 내 삶을 그냥 보여주며 한 사람 한 사람 변화하는 것을 추구한다. 내가 휠체어를 타고 오르막 길에서는 좀 멀리서부터 도약하며 속도를 높여 올라가는 것도, 내려올 때는 좌우 지그재그로 내려오며 속도 조절을 하는 거며, 필요하며 엘리베이터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내려갈 수 있다는 것 등 그냥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늘 웃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홋카이도 여행 마지막날 기후가 나빠서 계획된 활동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여행사 직원이 아침 버스시간이 30분 지연되었다며 한 사람씩 일일이 찾아다니며 미안하다고 할 때 나의 대답은 "천천히 여유롭게 아침식사를 즐길 수 있어 최고!"라고 말을 하자 직원이 너무 감사해했다. 고래구경을 위한 보트를 탔다. 역시 휠체어 때문에 옥신각신 말이 있었는데 이번엔 요꼬와 여행사 직원이 내편을 들었다. 그런데 출발 바로 직전에 안개가 너무 심해 보트여행이 취소되었다며 하선명령이 방송됐다. 여기저기서 불평의 말이 터져 나오는데 나는 팔을 들고 파도에 흔들리는 모습을 하며 "상상 속의 고래를 이미 봤다"라고 하며 안내문에 있는 고래그림을 들고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했다. 요꼬는 나의 긍정적인 생각과 대처법으로 여행객들이 모두 좋아했다며 나에게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역시 교육은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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