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한 환경에서 곧게 자라는 힘은 엄마의 "사랑"
어릴 적 초등학교를 다닐 때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참 좋아했다. 한 친구는 벽돌로 지어진 커다란 궁전 같은 집에서 살았다. 그의 집에는 작은 놀이터도 있고 형제자매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집에 가면 환하게 웃음으로 반겨주는 엄마의 모습은 늘 상상에 그쳤기에 나는 친구 집에서 많이 놀았다. 친구의 집이 단체생활을 하는 고아원이라는 것을 한참 지나서 알았다. 내가 친구집에서 노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자 고아원 측에서 말렸는지 친구가 나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 후 나는 친구의 집을 못 본채 하고 앞만 보고 지나가야 했다. 단체생활에 방해가 될 정도로 내가 너무 오래 놀았기 때문이라 고 이해하려는 동안 세월은 훌쩍 흘러버렸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용감하게 반경을 넓혔다. 방과 후 효자동 길을 터덜터덜 혼자 걸어서 지금의 세종회관인 시민회관의 미술전시관을 들려 카탈로그에 적힌 설명을 꼼꼼히 읽고 그 내용을 토대로 한 작품 한 작품을 감상하는 폼을 내며 시간을 죽였다. 지루해지면 시청을 지나 신세계백화점 내에 있는 미술 전시관까지 걸어가서 어제 봤던 같은 작품을 새로운 마음과 눈으로 보려고 노력했다. 그 후 코스모스 백화점의 미술 전시관을 갔다가 혹시라도 새로운 작품이 전시돼 있으면 뛸 듯이 신이 나기도 했었다. 중3 때에는 가방에게 학원공부를 대신 맡기고 나는 성모병원에서 아픈 사람들을 보며 감정이입을 하기도 했고 위로 보이는 명동성당의 웅장함과 성물들을 들여다보며 사춘기를 달랬다.
고등학생 때에는 외국 수녀님들과 친해져 구로공단을 다녔다. 수녀님들은 공단에 집을 마련하고 몇몇 여공언니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나는 매주 그들이 하는 성경공부며 노동자 권리연구에 참석했다. 교복을 입고 있어 미운 오리새끼처럼 튀는 나를 스스럼없이 반겨주었고 어느 날 밥을 먹고 가라며 팔을 잡았다. 상을 펴자 한 언니가 커다란 양푼을 안고 들어왔다. 뭐지? 김치와 밥을 섞은 비빔밥을 담은 양푼 안에는 숟가락이 꽂혀있었다. 아니? 내 밥은? 엄마가 입을 댄 물 대접에도 마다하던 터라 잠시 주춤했지만 바로 괴팍을 떨 상황이 아님을 깨닫고 생전 처음으로 양푼에 동참했다. 먹다 보니 옆에 앉은 언니가 펐던 그 자리를 나도 푸고 있었다. 나를 완전히 변화시킨 한 조각의 기억이다.
수녀님들이 떠난 후 나는 입양을 기다리고 있는 혼혈아들을 돌보는 홀트양자회를 다녔다. 친구를 만나러 다니며 같은 또래의 혼혈친구들이 겪는 이야기를 처음 접했다. 그들이 한 방에 여럿이 산다는 것과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외국아빠를 닮은 얼굴과 피부색 외에는 엄마와 가족이 있어도 함께 한 시간이 별로 없는 나와의 차이가 전혀 없었다. 나는 많은 생각하는 시간을 그들과 함께 했다. 되돌아보면 지금까지 살면서 삶에 대한 가장 의미 있고 순수한 생각을 나누던 시절이었다. 그 후 나는 특수교육을 공부하러 대학을 갔고 졸업 후 바로 특수교사로 일하였다.
어느 날 전화가 울렸다. UN총회에서 1981년을 “세계 장애인의 해”로 선포했고 노르웨이 적십자사에서 그것을 기념하는 국제회의를 개최하는데 한국대표로 내가 추천되었다며 인터뷰를 원했다. 며칠 후 교장선생님이 고아라서 안될 것 같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미안한 듯 혀를 찼다. “고아?” “저요?”
대한 적십자사에 들어가자마자 첫 질문은 가족관계였다.
“오빠 넷, 언니 하나”
“오 그래?” 그들은 서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지체 없이 “자네가 가면 되겠네” 했다.
어려서부터 가족과 소원했고 고등학교 말부터 집에서 나와 살고 있었던 나는 고아와 다를 바가 없었다. 오랫동안 연락도 없이 지낸 터라 가족 같지 않은 가족이었는데도 그나마 나라의 큰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나? 피식하는 냉소적인 웃음과 함께 슬펐다. 갖지 못한 수많은 친구들을 버리고 내가 갑자기 가진 자들의 리그로 끌려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런 세상이 싫었다.
사회와 시민들의 인식과 태도가 바뀌는 과정은 능동적이어야 한다. 때에 따라 파도나 풍랑과 같이 세상이 하루아침에 뒤집히듯이 변화를 만들기도 해야 한다. 변화의 주체는 시민이고 “남”이 아닌 바로 “나”인 것이다. “우는 아이 젖 준다”는 속담처럼 목소리를 아주 크게 내는 일이다. 우리 모두가 당당하고 자신 있게 나의 목소리와 주변에서 들리는 이웃의 큰 목소리에 귀기우리며 함께 힘을 모아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 미국에서 70년대에 장애인들과 부모들의 지축을 흔드는 큰 목소리로 인해 지금의 모든 장애인들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권리를 주장하며 살고 있다. 성소수자의 커밍아웃이 많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지만 아직도 그들의 사회적 보호막은 튼튼하지 않다. 그래도 당당한 목소리를 내면서 조금이라도 이웃과 함께 안전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트럼프는 늘 약한 이민자에 대한 억압이 있었다. 겉모습으로는 불법체류자를 말하는 것 같아도 그는 유럽 쪽의 백인의 이민은 부추기면서 아시아 사람과 아프리카 사람은 마치 못 배우고 잠재적 죄인들로 치부하는 것이 그의 속셈이다. 불법체류자들은 길로 나왔고 그들의 외침은 나를 “계몽”시켰다. “우리는 열심히 일하고 나라에 세금을 내며 자녀들을 훌륭히 키우고 있으며 행복이 목표이다. 우리가 거리로 뛰어나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죄인처럼 방안에 쭈그리고 있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하는 부모의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다.”라고 외쳤다.
우리가 큰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목 풀기로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 준비가 되면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우렁찬 목소리로 한다. 높은 자존감과 당당함은 상대방을 귀기우려 듣게 하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여 시민 전체의 인식의 변화로 이어지게 한다. 심리학에서는 불우한 가정형편 속에서 자랐다고 해도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올바른 미래의 청년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충분한 부모의 “사랑”이 있을 때라고 한다. 엄마의 사랑의 힘, 자녀를 믿어주는 힘이 자녀들에게 도덕성을 가르치고 온화하며 강인한 품성으로 성장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럼 편부모나 엄마 아빠가 없이 자라는 친구들은? 아! 나는 완벽한 답을 가지고 있다. 바로 “지구촌”이다.
아프리카의 속담 중에 “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 (아이를 키우는 데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은 내 마음을 웅장하게 만든다. 고아도 가출한 아이들도 사방에 지구촌 부모들이 “사랑”으로 그들을 키워주는 것이다. 출생률이 0.72로 아이들이 귀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수천 수백만의 부모의 눈과 사랑이 되어 어느 누구라도 건강하게 클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속담뿐만 아니라 “동물의 세계”라는 TV프로를 보면 코끼리들은 현명한 할머니 코끼리를 중심으로 무리를 지어 살며 새끼가 태어나면 무리 전체가 같이 돌보지 않는가? 옛날 트로오돈이라는 공룡들도 그랬다고 하고 사자들도 공동육아를 한다. 한다면 하는 대한민국! 세계 공동육아의 모범! “K-촌”은 당연하다.
좀 더 자세히 성공사례로 소개하고 싶은 친구는 펭귄이다. 지구의 정 반대쪽에 사는 황제펭귄들은 거의 2만 쌍 이상이 군집생활을 하며 새끼들의 탁아소까지 운영을 한다. 그중에 우리나라 초통령이 된 뽀로로라 불리는 펭귄은 유명세를 타기 전에까지 태어나서 가난했다.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엄마의 “사랑”도 없이 홀로 대한민국의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초통령이 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에게는 부모대신에 “파크촌”이 있다! 아기공룡 크롱, 친구펭귄 패티, 비버 루피, 벌새 해리, 백곰 포비, 여우 에디, 용 통통이! 크기와 종을 초월하고 현실과 상상의 세계도 초월한 “지구촌”이다. 더 나아가서 뽀로로도 나처럼 “우주촌”까지 있다. 어리버리 로봇친구 로디와 외계에서 온 삐삐와 뽀뽀까지 모두 하나가 되어 뽀로로를 사랑 그 자체로 키워낸 것이다.
내년 1월 LA에 겨울이 오면, 한참 여름일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에 가서 아르헨티나 대학생 찬양팀과 말로만 듣던 안데스 산맥을 자동차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대학생들이 같이하지 못하면 혼자서라도 갈 계획이다. 안데스 산맥을 따라 여행하며 이 마을 저 마을을 들러 마을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성서적 특수교육 방법을 전하며 어떻게 장애인과 함께하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 나눌 생각이다. 그 계획의 끝에는 뽀로로의 형제자매인 황제펭귄 무리를 만나 뽀로로가 한국에서 초통령으로 행복하게 잘 살면서 대한민국 어린이들에게 사랑을 가르치고 있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머지않아 뽀로로는 첫 세계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희망의 소식과 함께...
뽀로로 가족사진은 뽀로로 파크 ( http://www.pororopark.com/about/concept.php)에서 다운로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