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95km의 긴 거리를 완주해야 "마라토너"이다.
나는 모든 삶에 일어나는 일이나 사물에 있어서는 늘 "새로운"것을 추구한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 나온 것을 사용해보고 싶어 하고 머리를 쥐어짜서라도 새로운 구상을 해보는 것을 좋아하는 소위말해서 초기채택자(Early Adoptor)거나 좀 더 멋있게 표현하면 선구자인 셈이다. 그러나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좀 보수적인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다. 한번 만나 마음에 들면 평생단골이 되는 것이다. 각 영역별 단골집 주인들이 있다. 친구도 40-50년은 기본이다. 아! 그래도 가는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을 막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떠나는 이들은 축복으로 기꺼이 보낸다.
당연히 미용실도 한 집을 다녔다. 이사라도 가버리면 좀 멀어도 차로 갈 수 있는 곳이면 찾아서라도 쫓아다닌다. 한수십 년을 드나들던 멋쟁이 헤어 디자이너가 있었다. 단골이 좋은 것은 편하다는 것이다. 요렇게 조렇게 잘라달라고 말할 필요가 없이 교수생활 30여 년 동안 나의 머리는 그의 손에 의해 결정이 되었었다. 어느 날 짧게 잘라놓으면 숏커트가 되어 생기가 돌아 보이고, 조금 길이를 두고 단발로 멋을 내주면 전문여성의 모습으로 변하기도 했다. 가끔 크리스마스엔 빨강 머리 앤이 되기도 하고 여름엔 푸른빛이 도는 바다를 연상시키는 시원한 스타일이 되기도 했다. 마음에 안 들어도 한두 달만 지나면 머리는 또 자라고 또 자르게 되기에 맡기고 또 맡겼다.
수십 년을 짧은 머리를 하고 다니다 어느 날 머리를 기르고 싶다고 했다. 머리가 난 모양과 방향만 보고도 내 성격이 엄청날 것이라며 말로 표현하길 거절했던 디자이너는 기를 수 없을 거라고 못 박았다. 기르다 보면 어깨쯤 내려오는 길이가 되면 뻗치고 지저분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포기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자신이 있었지만 말댓구는 하지 않았다. 진짜로 나에게도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왔었다. 그래도 한다면 하는 나는 그 견디기 힘든 시간을 버텨내고 내가 원하던 긴 머리를 얻었다. 그래도 매달 디자이너의 손으로 내 머리는 늘 새로운 색으로 채색되곤 했다. 나쁘지 않았다.. 그 견디기 힘든 시간을 견디어 내니 내가 평생소원하던 긴 머리를 즐기게 된 것이다.
내 이야기의 시작은 지금부터이다.
70년도 후반 대학 때 봄가을에는 강촌, 청평 쪽으로 과 선배들과 친구들과 함께 MT를 가는 날은 늘 설레고 즐거웠다. 한 번은 마장동 시외버스장에서 모여서 버스로 가기로 했다. 대충 올 사람들이 다 모이자 우리 팀은 시외버스에 올랐다. 나는 창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밖을 내다보며 혹시 좀 늦게라도 도착하는 친구들이 있는지 두리번 댔다. 그때 갑자기 내 눈을 사로잡는 남자가 있었다. 아마 그분은 막 지방에서 올라오신 분 같이 모시한복 두루마기에 머리에는 갓을 쓰고 있었고 얼굴은 햇빛에 타서 검게 빛나고 있었다. 얼굴 전체가 하회탈 마냥 굵은 주름으로 가득했고 숱도 별로 없는 흰 수염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두 가지 생각으로 머리를 강하게 맞았다.
하나는 마라톤 그 차체였고 다른 하나는 마라톤을 끝까지 완주한 진정한 승리자인 마라토너였다. 그 할아버지를 보자 왜 마라톤이 생각났을까? 버스주차장에서 본 그의 모습은 마라톤을 완주한 승리자의 얼굴이었다. 깊이 파인 주름과 환한 웃음이 너무 압도적이어서 그날 내 맘 속에 노년의 모습은 긍정적으로 각인되었다. 성공기쁨이나 실패의 어려움 그 모든 희노애락을 이겨내고 끝까지 완주한 마라토너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할아버지는 승리자였고 나는 완주한 인생이 인간에게 주는 고귀한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나에게는 나이 듦이나 노화가 두려움으로 다가 오기보다는 "다 가봤고 다 해봤고..." 희로애락을 모두 견뎌내며 완주 후 쟁취한 묵직한 메달의 무게를 느껴 보고 싶다.
오늘 미장원에 들렸다가 한분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늙은 모습이 너무 생소하고 싫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70 즈음에 들어서는 그분이 바로 "견디기 힘든 순간"에 있음을 나는 알았다. 요즘 70은 막 주름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깊지 않다. 얼굴에 고생과 행복의 순간이 완전히 새겨지지 않고 완성되지 않은 그는 지금 막 숨 가쁜 마지막 구간을 달리는 중이기 때문이다. 마라톤을 완주했다는 것이 죽음을 뜻하지 않는다. 마라톤을 뛰고 나면 승리의 면류관을 쓰고 경기장 밖에서 살아야 할 나날들이 기다리고 있다. 늙어감에 "견디기 힘든 순간"을 이겨내고 완주해야만 이겨낸 고비고비의 서사가 얼굴에 깊고 확실한 골로 새겨지면 승리자로서의 아름다움을 얻게 되는 것이다.
나는 노인들의 깊은 주름과 환한 미소가 잘 어울리며 너무 멋있어 보인다는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 이미 마지막 구간으로 들어선 마라톤을 계속하기에 힘이 부치는데도 불구하고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은 아직은 설익은 모습이라 내가 보기에 견디기 힘들 수 있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노인들이 아름답듯이 그들의 눈에도 내가 아름답게 보일 거라고 믿고 산다고 했다. 난 지금의 내가 너무 좋다. 살아낸 것이 스스로에게 장하다. 또 쉼의 여유와 감사함을 느끼는 것이 좋고 어린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미소로 관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 좋다. 더 이상 악착같이 모으지 않고 여유롭게 베풀 수 있는 마음을 갖는 나의 노년이 좋다. 그들이 살며 찾을 수 있는 행복이 여기저기 널려있음을 알기에 말없이도 확신의 눈빛을 보낼 수 있어서 좋고 아파해도 일어설 수 있는 청춘들임에 든든하다.
학생 중에 가끔 LA 마라톤을 완주하고 받은 메달을 가져와 교실에서 무용담을 말하곤 한다. "기록"과는 무관하게 완주했다는 사실만으로 대단한 업적을 세운 것이다. 세상풍파를 이겨내며 포기하지 않고 완주한 노년의 모습이야 말로 그 자체가 대단한 업적이다. 첫 1, 2, 3등뿐만 아니라 맨 꽁찌로 들어와도 온몸이 터질 것 같은 순간을 지구력으로 이겨낸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난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본 할아버지가 너무도 감사하다. 힘들다고 목숨을 내 버리지도 않고 화난다고 얼굴에 흉한 주름으로 남기지도 않고 노년의 아름다움을 나에게 일깨워 주신 분이다. 노년들이여! 이미 살아본 청춘을 그리워 말고, 지금 막 승리의 화관을 쓰기 위해 입상대에 오를 당신들... 시상이 끝나면 아름다운 모습으로 모든 젊은이의 가슴에 각인되도록 박차고 밖으로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