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적 특수선교 1

하나님이 나에게 오시다

by 교주

개구쟁이 오빠 4명의 괴롭힘과 무관심 속에서 커온 나는 예수님이 남자란 이유만으로도 거부감이 있었다. 믿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을 때 성당을 찾았지만 영세반을 몇 번씩이나 자퇴를 하다가 ”에잇 그냥 받아봐!“ 하는 마음으로 영세를 받았다. 믿음보다는 의지로 영세를 받던 날 성당으로 향하던 중 "변화"될지도 모른다는 작은 믿음이 영세식 시작과 함께 움터 올랐다. 주변은 다들 싱글벙글하며 새로운 희망에 찬 예쁜 눈들로 반짝거렸다. 그런데 영세식이 시작되어 꽤 시간이 지나서도 나의 옛 모습에는 조금의 변화도 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다. 아직은 좀 이른가? 작은 희망을 갖고 기다렸다. 실눈을 떠 전후좌우를 살피며 마치 변화해 가는 듯한 영세동기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초조해졌다. 아마도 성수를 이마에 뿌리고 신부님의 축도를 받고 나면 변화될 거야라고 생각하며 과거의 나에게 여유를 줬다.


내 차례가 되자 내 앞으로 성큼 다가선 신부님이 성수를 머리에 뿌리시며 "죄를 사하고..." 나는 나의 변화되는 과정이 너무도 궁금해 "뭘까? 뭘까?" 하며 초단위로 과거의 나와 새로운 나의 모습 간의 변화를 재고 있었다. 머리 위에 축성을 하시며 새사람으로 태어나라고 강조하듯 묵직하게 찍어 누르며 신부님의 손길이 느껴졌다. 순간으로 느껴지던 축성의 손길이 내 머리 위에서 들어 올려지는 순간 "안돼" "조금 더!"를 속으로 외치는 과거의 나는 아직도 변화하지 못한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아니! 성수도 뿌려졌고 신부님의 축성도 모두 지나갔건만 변화된다던 나는 영세식 전의 그 모습, 그 생각, 그 믿음등 모두 그대로였다. "예수님이 나를 건너뛰셨다!" 완벽하게 새로운 사람으로의 변화를 기대했던 나는 실망과 억울함을 넘어 버림받은 것 같은 불안함까지 솟구쳤다.


영세식에서 예수님이 나를 건너뛰신 덕분에 나는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더욱더 노력해서 예수님을 찾아다니는 숨바꼭질을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는 여러 두려움이 생겼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이 옆에 오셨는데도 못 알아보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었다. 한가했던 어느 날 나는 명동성당으로 올라가는 길에 놓인 조그만 바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내 앞을 지나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똑같은 사람인데 그 전체를 감싸고 있는 뭔가 성스러운 아우라가 보였다. 뭐지? 다시 눈을 부릅뜨고 확인해 보았다. 진짜 그분을 감싼 환한 기운이 걸음걸이에 따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알아볼 수 있는 눈을 주실 거라는 확신이 생겨 첫 번째의 고민이 해결되었다.


나의 두 번째 두려움은 예수님을 알아본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달려들면 나는 예수님 근처에도 갈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늘 언니 오빠에게 치어 살던 경험으로 인해 나는 모든 경쟁에서 포기가 빨랐다. 성경에 키가 작았던 삭개오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보려고 나무 위로 올라간 구절이 있다. 나무 위로 올라가니 예수님의 눈에 띄었고 그래서 그날 예수님이 그의 집에 유하셨다(룩 19:3-6)고 한다. 나는 다리가 불편해 나무에 올라갈 수도 없으니 예수님을 직접 볼 수 없다는 현실적 좌절감에 있었다. 그런데 한번 참가했던 세족식에서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손과 마음을 빌려서 나의 곁에 오신 다는 것을 경험했었다. 내가 가지 못해도 예수님께서 언제든지 늘 가까이 계시다는 든든함이 생겼다.


세 번째는 노년에 들어서면서 아파서 밖에도 못 나가고 교회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나는 하나님도 모르게 혼자 쓸쓸히 죽겠구나 하는 두려움이었다. 그런데 전 세계를 강타한 팬데믹이 오자 모든 예배가 온라인 예배로 대치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가정에서 온라인으로 들이는 예배는 해이함이 들어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교회에서 신성함을 느끼며 드리는 예배가 그립다고 했다. 그때 나는 그들과는 정반대의 경험을 하고 있었다. 침실에서 예배를 보면 마치 하나님이 나의 침실로 들어오셨고 부엌에서 모니터를 켜면 부엌에 함께 계셨다. 어느 때는 지저분한 집안 때문에 얼굴이 화끈거렸고 아무것도 없는 누추한 곳이지만 마다치 않고 찾아주시는 하나님이 너무도 좋았다.


그래서 깨달았다. 여호와 삼마(Jehovah Samma): 어디든 계시는 하나님! 나의 공간까지 찾아주시는 하나님이 주일날 교회에 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계신 하나님을 먼발치에서 보는 느낌보다 훨씬 강한 하나님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하늘은 우리들의 머리 위에 있고 땅은 우리가 발을 대고 서있는 곳의 아래라고 하지만 사실은 땅과 하늘은 붙어있다. 물이나 공기처럼 땅에서부터 모든 빈 공간을 채우며 하늘은 시작되는 것이다. 결국 나는 땅을 딛고 하늘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공간을 메꾸듯이 꼼꼼하게 감싸고 계신다는 생각이 행복함을 가져다준다.


장애인 사역은 함께 모여 가르침을 배우고 성도 간의 교제 (행 2:42)를 할 수 있어야 하고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20)"의 말씀처럼 단체기도 중에 하나님을 믿음으로 배울 수 있는 장소와 프로그램이 모든 교회에 마련되어야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실행되는 장애인 선교방법 외에 좀 더 다가가는 프로그램이 특수목회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많은 장애인들은 교회를 나올 수 없는 경우도 많고 매주 참석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나이가 들면서 사회로부터 가족으로부터도 소외된 외로움에 처한 삶을 사는 그들의 환경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서적 특수선교는 장애인 한 명 한 명이 실생활중에 "나에게 오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도록 가정방문이나 재가 장애인의 시설 방문등을 통해 목회자는 물론 자원봉사자들이 그들의 시간과 환경 속으로 찾아가 스며들어야 한다. 또한 지역사회 내에서 "여호와 삼마"를 직접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경험과 기회를 설계하여 장애인이 평범한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알려주는 것이다. 장애인이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느끼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선교가 되기 위해서는 체험위주의 다양한 실질적 생활환경 속의 활동으로 구성하는 것이 성서적 특수선교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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