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도 경쟁적으로

좀 더 빠르게 행복한 나라 만드는 법

by 교주

나를 42세 때 낳으신 엄마는 늘 남처럼 할머니처럼 냉랭하게 느껴졌지만 내가 유학을 떠날 때 이미 70세를 넘어 점점 늙어가시는 게 눈에 보였다. 일 년에 한 번씩 찾아뵙는 것은 나의 사랑과 배려의 소극적 표현이었고 나 스스로에게 안겨주는 위안이었다. 약간의 로터리 클럽 장학금과 조교로 일하던 가난한 유학생이기에 매 여름마다 오고 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해외입양이 활발했던 그 당시 입양아 세명을 비행기 안에서 돌보며 양부모에게 데려다주는 일을 하면 50%의 비행기 값을 대신 내주었었다. 나는 두 번을 해 봤다. 세명의 아기들을 혼자 돌보는 것이 힘들다고 이해하는 주변의 여행객과 시간이 날 때마다 승무원들도 아이가 울면 안아주며 손을 보태기도 했다.


한 번은 둘이서 6명의 입양아를 에스코트했다. 파트너는 한 아기씩 번갈아가며 꼭 안고 있던 나에게 바닥에 내려놓아도 된다며 자신이 담당하는 세 아이들을 바닥에 눕히고 자신은 잠이 들어버렸다. 아마 베테랑인 듯했다. 입양을 당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떠나는 핏덩이가 우는 것이 송아지도 어미와 떨어지면 운다는데 마치 자신이 모국을 떠난다는 것을 운명적으로 알고 우는 것 같아 나는 마음이 아팠다. 속으로 “많이 울어라 그리고 미국에 도착해서는 다 잊고 행복해라”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여행 내내 아기들이 우는 것을 탓하지 않고 최대한 한국 이야기를 해 주었다.


맨 마지막으로 비행기에서 내리자 입양부모들이 각가지 환영 푯말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한 아기의 엄마는 나에게 오는 도중 많이 안아주었냐고 물었다. 마치 내가 아는 그 아기의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궁금해하는 큰 눈망울을 때문에 13시간 비행동안 알던 아이의 행동을 모두 말해주었다. 이미 한국에서 입양한 아들이 있는데 그가 8살쯤에 입양을 했고 지금은 13살이라고 했다. 아담은 좀 커서 입양을 한 탓인지 의사소통이 힘들고 학교적응도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내가 관심을 보이자 고맙다며 연락처를 주었다. 내가 사는 곳에서 북쪽으로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다.


그 동네에 입양가족들의 모임이 있는데 한 10 가구 정도 참여를 하고 13명 정도의 한인 입양아들이 있었다. 한 번은 독립기념일을 위해 입양자녀들에게 미국국가 외에 우리나라 “애국가”를 부르게 할 예정이라며 도와달라고 했다. 그때 처음 아담을 만났다. 아담 엄마에게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언어만이 아니라 아주 경증이지만 학습장애가 있는 듯하니 학교에 가서 한국어로 검사를 받게 해달라고 하라고 조언했다. 아이들은 4-5세부터 중학생정도까지 있었고 당연히 여자아이들이 많았다. 이미 엄마들이 가르쳤기에 애국가 멜로디는 다 알고 있었고 나에게는 한국어 가사의 발음을 봐달라고 했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휴식시간에 아이들에게 한국 엄마들은 누구나 자신이 죽더라도 끝까지 자식을 돌보고 싶어 한다. 그런 한국엄마가 입양을 택했을 때는 분명히 좋은 환경에서 좋은 교육의 기회가 너희에게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네 엄마들은 너희를 보내고 마음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 오늘도 너희가 잘 되기를 기도를 하고 있다. 그래서 너희들은 절대로 버려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는 입양부모와 멀리서 너희를 위해 기도하는 수호천사 엄마까지 있다고 강조해 말해주었다. 아담 엄마는 그런 말을 해준 나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했다.


우리 대학의 한 교수와 학장도 가끔 자신들은 입양아 출신임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친부모의 성향이나 병력등을 모른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참 좋아 보였다. 유학당시 학부학생이던 백인여자 아이는 학기 중간에 뭔가에 홀린듯한 얼굴로 늘 피폐해 보였다. 그는 대학생이 된 후부터 생모를 찾는 일에만 집착해 모든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공공연하게 입양했음을 밝히는 미국에서도 정체성을 확립하는 사춘기를 지나며 자신의 존재를 묻기 시작한다. 해외입양아들은 자신이 가족들과 피부색 인종이 다른 것을 알게 되며 더욱 갈등의 시기를 갖는다. “버려진 아이”인 나를 키워준 감사함으로 살아가지만 사춘기를 지나 어느 정도 자립이 가능해지면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온 정신을 쏟으며 현실의 생활에 고통을 겪는 것을 보아왔다.


우리나라는 “성공 사례”에 환호한다. 프랑스의 장관에 오른 누가 한국 입양자 출신이라던지 한국 혼혈아 누구가 미식축구의 핫한 선수라며 갑자기 한국인의 정체정과 자부심을 꼬드긴다. 개인적 능력이 다양할 테고 입양가정이 다 좋은 환경과 행복을 가져다 줄리도 없다. 입양서류를 제대로 챙기지 않은 양부모 때문에 경범죄만으로도 한국으로 송환된 경우도 있다. 언어도 문화도 생소하고 한국에 아무런 기록도 없이 국제미아가 되는 것이다. 또한 입양아동의 상당수가 장애아동이라는 점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2년 국내외 입양 아동 통계를 보면 총 142명이 입양되었으며 그중 67.4%가 장애아동이었다. 그들이 겪는 입양사에는 또 다른 문제점을 품고 있다.


미국에서는 입양자의 기록이 18세까지는 봉해진다. 성인이 된 후에는 양측의 동의하에 만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해외 입양자들이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 와서도 완벽히 사라지거나 조작된 서류로 인해 그들의 존재 근거조차 찾을 수 없곤 한다. 마음이 아프다. 이것은 정부뿐만 아니라 온 국민들이 합세해서 해외 입양 한민족을 돕도록 나서야 한다. 관련법도 바꾸어 아기를 팔아 돈을 챙기던 자들에게 엄벌을 내리고 의료체계에도 포함하고 그들이 원하는 부모도 찾아주며 K-사랑으로 흠뻑 적셔줌으로 그들은 한 번도 버려진 것이 아니라 늘 한민족이었고 앞으로도 늘 대한민국의 일부로 자부심을 갖고 살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정부와 공공 서비스 관련 전문인들 외에 시민 전체가 홀부모 자녀, 고아, 입양아, 사생아 등등 그들을 향한 무의식적인 경시풍조를 이제는 훌훌 털어버려야 한다. 또한 내 자식의 성공만을 위한 경쟁에 집중할 것만이 아니라 K-경쟁심을 넓혀서 나보다 덜 가진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에도 최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데도 최일선에 서고, 이질감을 주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달려가 친구가 되어주는 K-사랑의 문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남들이 아직 꺼리고 있는 것이 있다면 과감하게, K-경쟁심으로 앞다투어 서로를 사랑하면 우리나라는 좀 더 빠르게 행복한 사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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