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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냥 빚

쉽게 빚 갚는 방법

by 교주

젊은 사람들도 한소리를 또 하고 또 하고 하기도 하지만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것은 노인들의 두드러지는 특징 중의 하나다. 한 제자는 나도 모르게 언젠가 한번 했던 이야기와 같은 첫 단어만 내뱉어도 어떻게 그리 잘 알아차리는지 바로 소소라치도록 냉정하게 "하셨어요!" 하며 단박에 내 말을 끊어버린다. 가끔은 억울하다. 같은 이야기라도 강조하려는 점이 다를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강조점이 아니라면 나는 억울해도 대화 상대자인 그를 위해 입을 다무는 편이다.


그와는 반대로 나는 대부분 같은 소리를 듣고도 또 듣는 편이다. 반응도 마치 새로 듣는 사람처럼 한다. 왜일까? 나의 주장은 이렇다. 결국 한 사람과 만나는 시간은 짧으면 1-2시간이고, 길면 3-4시간이다. 그 시간은 오톳이 그 사람에게 할애한 시간이고 주제는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사람과 나와의 고정된 시간을 채우는 내용이 레코드처럼 반복하는 내용이던 새로운 내용이든 간에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다면 그것으로 이미 만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도 없이 많은 말을 쏟아내며 산다. 어느 때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느 누구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조차 기억을 하지 못한다. 요즘 나는 "정년 축하 집안 치우기 행사"에 여념이 없다. 정년을 새로운 기분으로 출발하기 위해 돈 안 들이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가구 재배치와 쌓여있던 물건들을 정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누가 곱게 짜준 수세미가 들어있는 비닐봉지가 나왔다. 너무 고운 색깔의 수세미를 버리긴 아깝고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주려고 부엌에 가져다 놓았다.


한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 어느 정도 비즈니스 관계였던 그는 아직도 나에겐 조심스럽긴 하다. 혹시 예쁜 수세미가 필요한지 슬쩍 물었다. 갑자기 그는 내가 언젠가 수제 수세미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했다. 본인도 여기저기 아는 사람들이 준 수제 수세미가 너무 많아 싫어하는데 내가 "샤워할 때 사용하면 좋아요"라고 새로운 용도를 이야기해서 그렇게 사용하고 있지만 더 이상은 필요 없다고 정중히 거절을 했다.


깜짝 놀랐다. 그 내용을 들으니 내가 한 말은 맞다. 하지만 난 그 말이 누구에게 전해졌는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갑자기 나는 말을 하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갖는지를 생각하자 떨렸다. 당연히 강의를 할 때 의도적으로 나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교육비법이 학생의 교직경력 내내 강한 영향력을 갖게 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전달해야 하는 교육목적과 내용에 부합하지 않고 교사가 학생에게 무심코 던지는 언어폭력의 사례를 꽤 빈번하지 듣는다.


부모가 자녀에게 또 자녀가 부모에게, 남녀 간에,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에, 그냥 사람과 사람사이에 서로에게 의도치 않게, 때로는 의도적으로 상처를 주는 말이 얼마나 많을까? 당하는 사람에게 남겨질 그 영향력을 생각하니 아찔하다. 특히 부모의 폭력적인 언어환경 속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좋은 대학을 나오고 훌륭한 직장을 잡고서도 제대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다행히도 언어폭력을 당했더라도 모든 사람이 엇되지는 않다. 나름대로 살아가며 잘 성숙하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어린 시절에 부모나 교사와 같이 통제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서 받은 언어폭력은 깊은 상처를 내곤 한다. 부모가 행하는 남의 집 자녀와의 비교, 형제자매 간의 차별, 어린아이가 감당하기 너무 지나친 기대, 그리고 어른의 눈에 차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무시하는 것 등은 어린 자녀의 성숙에 방해가 되는 요인이다.


언어폭력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자녀들이 무엇을 하든지 성에 차지 않아 하며 인정하지 않는 미성숙한 부모들이 휘두르는 가장 무서운 폭력이다. 내가 힘을 가지고 있는 위치라면 책임감을 가지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적 듣기와 긍정적인 언어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우리 속담과 비슷하게 성경은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언 15:1)라고 말한다. 동등한 사람들 간에도 그 사람을 묘사하거나 평가하고 비평하는 말을 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속담과 성경은 상대방과의 의사소통 중에 대처하는 방안법은 내가 보기에 좀 소극적이란 생각이 든다. 불교 '잡보장경'에 나오는 돈 없이 베풀 수 있는 7가지 보시 중에 '언사시(言辭施)'는 남의 반응이나 의사소통의 시간과는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항시 적극적인 언어활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것이 돈 한 푼 안 들이고 타인에게는 도움을 주고 나 자신에게는 마음을 정화하고 깨달음을 준다니 늘 적극적으로 실천해 봄직하다.


보시는 널리 베푼다는 뜻이니까 일단 "언사시" 실행의 대상은 나와 대화를 하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자녀와 제자를 넘어서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언사시의 내용은 남에게 친절하고 사랑과 칭찬이 담긴 따뜻한 말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다. 바로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단련을 통해 자녀에게는 더욱더 큰 언사시를 실행함으로써 본인들의 빚청산과 마음의 정화뿐만 아니라 자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환경에서 건강하게 키울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 아닐까?


일곱 가지 보시 중에 "좌시(座施)"는 자리를 양보하는 행위인데 우리나라 사람이 이미 잘하고 있다. 이미 잘하고 있는 것을 모델로 삼아 천냥빚도 면제받고 남에게도 도움이 되는 "언사시"를 몸에 배게 하자. 언사시를 실행할 때 부드럽고 자비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안시(眼施)"와 온화하고 부드러운 얼굴표정을 하는 "화안시(和顔施)"까지 겸비하면 최고다. 밖에서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표현될 것이고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건강지킴이가 될 수 있으니 꼭 실천해 볼만한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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