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검은 짐승에게 들이 받쳤을 때...
얼마만인지 모르겠으나 마음이 너무 아파 눈물이 날 지경이다.
머리검은 짐승이야기를 많이 들어왔고 겪어 왔으면서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 적은 없었다. 어쩌면 도와주고 거두면서도 나의 깊은 마음을 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이 더욱 자신을 지키기 위해 외골수로 성격이 두드러진다고 했던가… 절대로 바뀔 수 없는 제자였지만 그래도 가끔 조그마한 바뀔 여지가 보여 대화를 끝없이 이어가곤 했다. 그러나 이번 한국여행에서 반갑게 만나보긴 했지만 이젠 대화를 지속할 일말의 여지조차 없을 정도로 그의 마음이 강퍅해졌음을 느낀다. 그와의 대화는 더 이상 매력이 없다. 무의미한 대화로라도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목숨을 거는 일과 비슷한 나의 어리석음일까?
어떤 제자는 아프단다. 오랜만에 남을 통해 소식을 듣고 위로의 말을 전하며 그동안 그가 열심히 내주고 있던 인터넷 서버 사용비를 앞으로는 내가 짊어지겠다며 감사의 말로 응원을 보냈다. 답장으로 덜렁 영수증 사진만 왔다. 바위보다 더한 그의 냉정함에 당혹스럽다. 능력이 있고 젊었을 때 나 나름대로 열심히 도와주었고 그 제자와의 관계가 돈독했었는다. 늘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처럼 세상을 살아가며 남보다 심하게 하는 마음고생을 달래느라 힘에 겹기도 했었다. 이젠 몸까지 병이 든 모양이다. 옛날의 마음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아프다. 그래도 돌아설 수 없는 내 마음도 병든 걸까?
가족도 남들과 다르지 않다. 공부하길 원하는 조카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과 마음을 써서 미국으로 공부를 하러 오라고 권유하고 설명하며 설득하려고 했던가? 결국 본인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두려웠는지 스스로 자신의 꿈을 접겠다는 말을 들으며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본인의 결정을 존중해야 하기에 나는 설득하기를 포기하였다. 하지만 도움이 너무 절실해서 손을 내밀었을 때에 내가 도와 주지 않고 자신을 내팽개쳐서 서운했다고 언성을 높이는데 소스라쳤다. 그의 미국행을 내가 더 필요로 했기 때문에 긴 시간을 두고 설득했건만… 온몸에 힘이 빠진다. 누구를 탓하랴?
돕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정신분석학의 대가인 프로이트 (Sigmund Freud: 1856-1939)는 인류애를 펼치는 사람들은 한사람으로부터의 사랑이 거부당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특정되지 않는 인류전체를 사랑하는 "승화"의 방법을 택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너무 냉소적인 해석에 늘 콧방귀를 뀌곤 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내가 사람들을 도왔던 것들도 사랑받지 못할 무의식의 두려움에서가 아닐까? 의식적으로는 그들이 고마워하거나 나를 계속 찾은 것조차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프로이트 해석처럼 무의식에선 돌려받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의 불순한 의도성을 뒤져본다.
순수하게 조건없이 주는 마음은 아가페적인 사랑이다. 예수님을 닮으려는 마음으로 살면서도 인간에게 아가페적 사랑은 불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에게 허락되는 유일한 아가페적 사랑의 마음은 오직 부모와 자식 간에만 허용된다. 어려서부터 듣고 배운 "군사부일체"라는 유교적 덕목을 늘 되네이며 제자에게 부모의 위치를 자처하면서 진심으로 그들을 조건없이 품으려고 노력했었다. 제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프로이트의 왜곡된 "인류애"로 승화시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퍼주고도 아까워하지 않고, 내주면서도 바라는 것 없이 살려는 게 나름 내 철학이다.
이번에 이렇게 아픈 이유는 여태까지는 머리검은 짐승들이 소극적으로 들이받았다면 이번에는 소름 돋는 차가움, 단단함, 억울함과 같이 적극적인 충격으로 들이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태까지는 흐르는 세월에 따라 그들은 내 곁을 떠나갔고 나는 희미해진 기억 중에 가끔 좋은 추억으로 기억을 해왔다. 그래서 머리검은 짐승을 거두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했었다. 진심으로 건넨 대화에 딸랑 영수증을 들이민 충격은 실로 강했다. 너무도 강하고 예리한 그들의 뿔로 가슴을 찔렸다. 나 홀로 저편에 서있는 느낌이다.
연락이 끊겼던 동안에 겪었을 내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만을 보호하려는 행동에 가슴 아프게 억울했다. 그러나 나는 바로 상황을 뒤집어 생각해 봤다. 그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그들만의 이유가 있으리라… 몸과 마음이 아프니까, 자존심을 보호해야 하니까, 자신이 스스로 이겨내기 힘든 혼돈의 상황이니까. 그들에 비해 아직도 나는 병들지 않았고, 자존심을 보호해야 할 필요도 없고, 오뚝이처럼 바로 일어설 수 있는 문제해결 능력이 있으니 건강한 사람이 짊어지는 것이 도리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들이받음이 전보다 강한 충돌로 느껴진 이유도 강하게 버티는 나 때문이 아닐까?
그래 다 사느라고 힘이 드는 모양이다. 쉬운 삶을 살고 있는 내가 그들의 가시에 조금 찔리더라도 아파하지 않는 것이 맞다. 진심은 이승이든 저승이든 어디에서라도 통한다고 믿고, 머리 검은 짐승들.. 아직도 대환영일쎄! 내 머리도 검은데... 하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