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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주 May 11. 2021

장애인 접근권

우리 오늘영화 보러갈까?

미국에서 휠체어를 타는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오래전에 떠난 한국에서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 것은 어떨까 하고 궁금해졌다. 정부 주도의 복지행정이나 장애인 접근권이 좋아진 것은 알고 있지만 매일 살면서 경험해보기 전에는 지역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얼마만큼 편히 살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모 대학에 재직 중인 장애인 교수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나의 질문은 끊임없이 장애를 가지고 생활하기에 불편함은 없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 교수님은 핸드 컨드롤이 달린 차를 가지고 나와서 여기저기 본인이 평소에 드나드는 곳들로 데리고 다니며 자신이 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휠체어로도 접근이 쉬운 야외 테이블이 있는 식당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수다도 떨고 카페에 앉아 커피 향을 즐기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러다 영화 보기가 취미라고 하기에 어떻게 극장을 가느냐고 궁금해 하자 직접 영화를 한편 보러 가자며 팔을 끌었다. 옛날에 국도극장이라든지 단성사, 피카디리와 같이 단독 건물의 극장들만 있던 때와는 달리 요즘은 미국과 유사하게 한 건물 안에 여러 개의 상영관이 모여 있었다. 상영시간이 가까워지자 입구에 줄지어있는 사람을 뒤로하고 교수님은 갑자기 긴 복도 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팝콘을 사러가는 줄 알았더니 웃으며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한국의 영화관은 뒤편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입구로 입장을 해서 한 계단씩 아래로 내려가며 좌석을 찾아 앉아 관람을 하고, 영화가 끝나면 관람객 모두가 계단을 내려와 맨 아래쪽에 있는 출구로 나가는 구조였다. 그래서 장애 좌석은 입구로 들어가지 않고 출구로 들어가서 계단의 맨 아래 있는 첫 줄에 출구 쪽으로 두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목을 젖히고 초점을 맞추기 어려울 정도로 큰 화면을 봐야 하기는 했지만 장애인도 원할 때 극장 출입이 가능하다는 점이 긍정적이었고 기뻤다. 


일본에서의 경험은 좀 달랐다. 일본인 친구가 휠체어 탄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인지 미리 전화를 걸어 알아보고 진짜 가능한지를 여러 번 확인했다. 극장에 도착하자 건물 앞에서 전화를 해서 관계자를 불렀다. 우리는 옆 건물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극장층 높이까지 올라간 후에 미로와 같은 좁은 복도를 이리저리 구불구불 한참을 돌아 옆 건물 극장으로 연결된 통로를 지나 문을 여니 한국과 같이 무대 앞의 첫 줄이었다. 오래된 건물이라  휠체어를 타고 영화관 건물로 직접 들어갈 수 없었지만 옆 건물을 이용해서라도 장애인의 접근권을 찾아주려는 노력이 좋았다. 


문제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부터였다. 우리를 안내한 관계자는 이미 퇴근을 했고 그 사람 외의 직원 중에는 우리가 들어온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우린 기억을 더듬어 들어온 길을 되짚어 나가야 했는데 너무 꼬불꼬불 돌아 뒤따라 들어간 바람에 방향감각이 없었다. 서로 여긴가 저긴가 기웃거리다가 앞에 있는 문을 열었다. 세상에! 그 문은 아무 보호장치 없이 그냥 건물 밖으로 떨어지게 되어있는 가짜 문인 게 아닌가. 어떻게 그렇게 위험한 문이 있을까 비명을 지르곤 한참을 헤매다가 어렵게 엘리베이터를 찾아 극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극장에 들고 나는 경험이 워낙 강렬했어서 영화를 본 기억보다는 무섭던 문만 아직까지 생생하다. 


미국의 영화관은 출구와 입구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상영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누구나 다 램프로 걸어 올라가게 되어 있고 그 램프는 스크린 앞에서부터 1/3 정도 되는 지점으로 닿아있으며 그곳의 가장 가운데 장애인과 함께 온 비장애인 친구들이 앉을 수 있는 지정석이 있다. 그러니까 비장애인은 장애인과 같이 램프로 영화관으로 들어간 후에 계단을 이용해 위나 아래로 내려가 좌석을 잡게 된다. 장애인 석은 한국보다는 스크린에서  아주 쪼금 더 떨어져 있고 중앙에 위치했다는 점이 조금 다르지만 한국과 미국의 영화관의 접근권은 비슷했다. 차이점이라면 미국의 거의 모든 영화관의 접근권이 일반화가 되어있는 반면, 한국과 일본의 접근권은 미국만큼 모든 장애인에게 일반화가 되진 못했지만 그래도 이미 접근권의 권리 주장이 되고 있고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긍정적인 점이다. 곧 "우리 오늘 영화 보러 갈까"라는 말을 어느 누구나 어느 때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건물의 접근권은 장애인에게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론 메이스 (Ron Mace)라는 건축가는 옛날 건물 중에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데 어려움이 겪는 것을 해결하고자 누구나 편히 다닐 수 있는 건물구조를 디자인하면서 1970년대에 처음으로 Universal Design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처음에는 그러한 구조가 장애인에게 큰 혜택을 주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점차 비장애인이나 건강상의 문제가 있는 사람, 노인, 유모차를 사용하는 사람, 물건을 배달하는 사람 등 많은 이들이 편리하게 사용하게 되었다. 한국에 유현준이라는 건축가의 방송을 통해 인간관계중심의 새로운 건축물과 도시형태에 대한 생각을 들으며 이해를 넘어 감동이 왔다. 그 사람의 새로운 디자인 속에는 분명 모든 사람을 위한 인간관계를 의미할 테지만 그래도 장애인의 접근권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어 한국에 가면 한번 꼭 만나보고 싶은 사람의 리스트에 있다. 이렇듯 건축과 도시개발 시에 장애인 접근권을 고려해야만 하는 이유가 모두에게 필요하고 유익이 되는 시설이기 때문에 서로 관심을 가지고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


이 글은 2020년 8월 25일 자 미주 한국일보에 게재되었던 내용을 새로운 정보로 업데이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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