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이라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끌벅적한 대학 강의 실에서 강의가 시작을 해도 친구들과의 대화를 머릿속에서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갖는 기대가 이중적이란 연구결과가 있다. 난 항상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편이었다. 그래서 어렸을 때도 구슬치기며 딱지치기, 자치기, 줄넘기까지 동네 개구쟁이들과 어울려 놀며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되기 일수 있다. 신나게 놀고 다니며 얼굴에 크게 웃는 입만 보여 스마일이란 별명을 가질 정도로 늘 주변 사람들로부터 성격이 밝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어떤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게 날 당황시키는 비장애인들의 기대치가 있었다. 사람들은 한참 정신없이 웃고 있는 나에게 장애를 가진 아이답지 않게 “너무” 밝다는 것이다. 스스로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애가 아니냐며 장애를 가진 아이답게 뭔가 좀 우울해야 하며 주제를 알아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또 바로 그 사람들이 장애 때문에 비관적으로 생각하거나 우울해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밝게 살아야 한다”는 충고를 마다하지 않으니 도대체 뭘 원하시나.
가끔 특수교육과 제자들을 데리고 시설 방문을 한다. 장애인들이 생활하는 그룹홈을 가보면 장애인이기에 비장애인보다 보다 어려운 기대 속에서 산다는 것을 단박에 느낄 수 있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닐 정도의 아이들이 얼마나 자기 방과 집을 깨끗이 청소하며 살까? 우리가 들어선 그룹 홈은 만져보지 않아도 뽀드득 소리가 들릴 정도로 부엌이며 화장실이 깨끗이 청소되어 있고 침실로 들어가 보면 누가 누워서 잤을까가 의심이 될 정도로 침대가 호텔보다 더 잘 정리가 되어있는 것을 보면 난 마음이 아프다. 손님이 온다니 치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 단체생활을 하기 때문에 장애가 있기에 반드시 청소와 정리를 매일 하는 것은 역차별이다.
특수교육개론을 가르칠 때면 나는 항상 메이어 쉐빈 (Mayer Shevin)의 “우리와 저들을 표현하는 다른 언어”라는 글을 소개한다. 그 글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사물을 좋아한다, 저들은 사물에 고착증을 보인다.
우리는 친구가 되려고 노력을 한다, 저들은 관심을 끌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휴식을 취한다, 저들은 이탈행동을 한다.
우리는 권리 주장을 한다, 저들은 반항을 한다.
우리는 취미생활을 한다, 저들은 상동 행동을 한다.
우리는 친구를 현명하게 골라 사귄다, 저들은 사회성이 떨어진다.
우리는 인내심을 보인다, 저들은 집착을 보인다.
우리는 남들을 사랑한다, 저들은 남에게 의지한다.
우리는 밖으로 산책을 나간다, 저들은 밖으로 도망을 나간다.
우리는 주장을 한다, 저들은 억지를 부린다.
우리는 마음을 바꾼다, 저들은 쉽게 목표를 상실하고 집중력이 없다.
우리는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저들은 숙련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인간이다, 저들은???
내로남불이라는 게 바로 이거 아닐까? 우리는 항상 자기가 하는 일은 좋고 아름다운 일이고 똑같은 일인데도 남이 하면 손가락질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이해가 장애인을 볼 때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 것이다. 장애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나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 번쯤 우리의 생각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장애아동을 교육하고 장애인을 위해 봉사를 한다고 하면서도 우리의 행동을 재는 잣대와 그들을 재는 잣대가 다르지는 않을까? 장애아 부모들도 이럴 때는 남과 다르지 않다. 다른 자녀에게는 강요를 할 수도 없고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장애 자녀는 부모의 생각을 그대로 강요 아닌 강요를 늘 하고 있다. 부모는 자신의 강요를 모든 합리화를 동원해 왜 이렇게 못하게 하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지를 스스로에게 설명하기 때문에 장애 자녀의 입장에서 강요라 느끼는 것을 무시하게 된다. 난 장애학생을 가르치는 비장애인의 역할을 하면서도 스스로 장애인으로 쉐빈이 표현한 양쪽 입장을 다 이해하기는 한다. 다만 쉽게 이해받지 못하는 장애인 쪽의 입장에 서서 대변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의무이다.
한국에서는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정하고 여러 가지 행사를 한다. 주마다 다르지만 캘리포니아는 3월 한 달 동안을 미국 대부분은 10월 한 달을 장애인 이해의 달로 정하고 여러 가지 행사를 한다. 한인 교회에서는 한국의 장애인 날즈음의 일요일에 행사를 한다. 하루 건 한 달이 건 특별한 관심을 두고 장애인의 문제점을 나라와 지역사회 차원에서 생각해보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그런 행사날을 기회로 우리가 만나는 사람에 따라 이해하고 수용하는 입장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닐까 돌아보고 모든 사람이 편안하고 넓은 마음으로 함께 사는 세상을 이루는 계기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 글은 2008년 4월 28일 자 미주 한국일보에 게재되었던 내용을 일부 발췌하고 새로운 내용으로 업데이트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