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First
어릴 때 어디를 가나 나를 바라보는 노인분들의 한결같은 반응 있다. 지금은 비둘기 탭댄스 하는 소리라고 웃으며 농담으로 표현하지만 어렸을 때는 정말 화가 나고 얼굴이 상기될 정도로 창피함으로 속이 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뭔가를 물어본 것도 아니고, 지나가며 그들을 방해한 것도 아니다. 내가 다리를 절며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 노인분들이 무심코 "쯧쯧" 혀를 차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혀 차는 소리는 차라리 나에게 욕을 하거나 시비를 거는 것보다도 아무 생각 없이 즐거운 맘으로 길을 걸어가던 나의 감정을 단번에 흔들어 모멸감의 시궁창으로 밀어 넣곤 했다.
장애를 가진 내 또래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 본 경험일 것이다. 물론 그분들은 상대방의 기분까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하는 소리일 수도 있고, 또는 장애인이 스스로의 열등의식 때문에 왜곡해 듣는 것이라고 일축할 수도 있다. 이해를 하자면 장애인의 감정을 상하게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인간의 기본적인 관심의 표현이며 순수하게 안쓰러운 마음의 표현이라는 것이 맞다. 그러나 내가 불쑥 던지는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에게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 밖으로 표현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해서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는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1990년에 특수교육법을 개정하면서 People First Language (사람 먼저 부르기 용어)로 장애인을 지칭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체장애인은 "physically disabled person"에서 "Person with physical disability"로 사람을 먼저 쓰고 장애특성을 뒤에서 수식하는 방법으로 표기하도록 한 것이다. 수식어가 더 들어가야 하니까 문장이 길어지고 돌려 말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그동안 입에 붙어있던 버릇을 고치는 것이 힘들었지만 "사람 먼저 부르기"를 지난 30여 년이 넘게 실천해 오는 동안 이제는 일상에서 사람 먼저 용어를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사라졌다. 이에 비해 모든 수식어가 단어 앞쪽에 나열되는 한글의 문법 체계에서는 영어식의 "사람 먼저 부르기"를 적용할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부정적이거나 비하적인 장애 표현을 인격적이고 동등한 단어들로 바꾸었다. 예를 들어 한문의 "놈 자"를 사용하는 “장애자”에서 "사람 인"으로 바꾸어 “장애인”으로 지칭하는 변화가 있은지 꽤 오래되어 정착되어 있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기 위해 2016년에 결성된 장애인 모임이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시각장애인 변호사와 몇몇이 시작한 단체로 그 당시 장애인의 교육과 복지를 위한 공약을 한 힐러리를 지지했고 그가 낙선을 하자 그들은 4년을 기다리며 더 큰 전국적인 조직으로 커졌고 결국 2020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바이든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데 일조를 하게 되었다. 나도 그들에게서 정기적인 이메일을 받는다. 어느 날 이메일에 "Disabled Person"으로 표현을 한 것이 눈에 띄어 장애인을 대표하는 조직에서 어떻게 "People First"를 모를 수가 있느냐고 항의성 이메일을 바로 보냈다. 놀랍게도 기성세대는 사람 먼저를 선호하지만 밀레니엄 세대는 장애를 부각해 부르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두 방법을 번갈아가며 사용한다는 답이 왔다. 그 말도 일리가 있다. 듣는 사람의 선호도 반영해야 하지만 최대한 직접 용법을 사용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정치적이지도 법적이지도 않는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어떤 게 좋을까 생각을 많이 한다. 역시 그 답은 한국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름보다 직함이나 관계로 부른다. 지적 장애학생들이 "교수"로 소개받은 나를 어눌한 발음으로 "교주~님"이라고 불렀고, 나는 그들을 교정하려고 하기보다는 "교주"라고 기억하고 불러주는 자체를 마냥 좋아했다. 그것은 영원한 나의 필명이 되어 당당하게 "나는 교주다." 일상생활 속에서는 굳이 "지적 장애아" "자폐아"로 지칭하기보다는 "누구누구의 형" "팀원"등으로 관계나 직함으로 부르고, 모르는 경우에는 그 사람의 다른 긍정적인 특징으로 표현하는 방법이 가장 좋다. 예를 들어 “파란 셔츠 입은 아이” “키가 큰 분” “집사님 딸”등으로 표현해보자. 내가 교회에서도 늘 주장하는 것이 지적장애를 가진 교인들에게 집사, 권사, 장로와 같은 직함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아직까지 왜 교회 주차장에서 주차봉사를 하시는 지적장애인 장로님은 없을까 미스터리이다.
장애인을 대하는 좋은 방법은 장애가 없다면 어떻게 대하겠는가 잠시 생각해보면 된다. 특별히 장애에 관심을 보일 것도 없고 도와주어야 할 것도 없다. 뭔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 것 같으면 일반인에게 하듯이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면 된다. 장애인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양해를 구하고 직접 물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 글은 2021년 5월 13일 자 미주 한국일보에 "장애인 먼저"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던 내용을 교정해 올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