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 함께 하는 수호천사들
나의 가족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긴 했어도 6형제에 엄마가 계셨으니 꽤 큰 편이다. 하지만 나는 작은 군중 속에서의 고독을 혼자 느끼며 살아왔다. 좀 심하게 표현을 하자면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나에게 관심이 있거나 사랑한다고 생각해 본 적조차도 없었고 지금까지 그렇다. 약간의 해석은 필요하다. 어렸을 때 관심을 받기 위해 너무너무 애를 썼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하는 행동이나 마음 씀씀이하고 남이 나를 좋아해 주는 것 간에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싫어하고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 역시 정상이라고 느낀다. 그런데 뜬금없이 나를 좋게 말하고 잘해주는 사람들도 꽤 많이 있다. 그 사람들은 나의 행동과는 무관하게 "비"정상적일 만큼 스스로 좋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좋은 "진국"인 사람인이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으로 그들을 대한다.
그런 전제로 세상을 바라보는 나는 남들이 볼 수 없는 투명인간이란 생각도 한다. 내가 무엇을 하던 나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도 없고 내가 사라져도 없어진 사실조차 모르게 세상은 돌아갈 것이란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덕분에 나는 남의 눈을 인식할 필요조차 없이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 멋대로 자유롭게 하며 살 수 있다. 왜냐면 나는 다른 사람 눈에 보이지 않아서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없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미국을 갔을 때 학교가 시작되기 2주 전쯤에 미리 가서 평화봉사단으로 한국에 와 만난 친구 집을 방문해 머물렀었다. LA 시에 밤이 내리면 옛날 즐겨보던 "요괴인간"이라는 만화영화의 한 장면 속으로 내가 들어간 듯 한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양 옆으로 거대한 빌딩들이 들어 차있는 큰 도로에 요괴인간 삼 남매인 벰, 베로, 베라가 탄 승용차의 헤트라이트만이 길을 가르고 도시를 질주한다. 하지만 차가 한참을 내달려도 온 도시가 쥐 죽은 듯이 인기척조차 없는 "죽은 도시"의 느낌이었다.
아무도 나에게 시선을 두지 않는다는 전제는 LA에서도 지속되었다. 대학 기숙사로 옮기기 전에 2주 정도를 친구 집에 있으며 그 친구와 함께 버스를 타고 내가 다닐 대학교 도서관에를 다녔었다. 어느 날 친구가 혼자 나갔다가 들어와 이야기를 건넸다. 버스정류장에 갔더니 어떤 사람이 "친구는 어쩌고 혼자냐"라고 묻더라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나와 친구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신기했다.
집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샌다는 말처럼 한국에서와 조금도 다르지 않게 미국에서 아무리 활보를 해도 나를 바라보는 친구가 없었다. 내가 발표를 해도 관심을 쓰는 친구가 없었고 뭔가를 잘해도 나보다 더 잘한 친구가 늘 나타나 혹시라도 올 수 있는 관심을 빼앗아 가곤 했다. 그런데 그런 일은 투명인간 경험을 충분히 한 나에게는 가슴 아파할 일도 질투할 일도 아니었다. 그냥 나는 나고 스스로를 즐겁게 하기 위한 일을 찾아 놀았다.
그런데 "비"정상적으로 착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나는 그들을 수호천사라고 생각한다. 눈으로 덮인 세상이 4-5개월씩 지속되는 미네소타에서는 가끔 눈에 차가 미끄러져 눈더미 속으로 갇히곤 한다. 내 차는 해마다 여러 번씩 눈에 빠지곤 했다. 이상하리만치 누군가가 바로 옆으로 다가와 쇠사슬을 걸어 차를 꺼내준 뒤 사라지곤 했다. 수호천사가 아니었으면 구조전화를 하고 추위 속에서 몇 시간씩 기다려야 했는데 너무도 감사하게 구해주곤 감쪽같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얼마 전부터는 혼자 패스트푸드식당 중 중국음식을 파는 곳을 가끔 다니곤 했다. 가서 가장 양도 적고 가장 싼 것을 사 먹는다. 나는 물이나 다른 음식도 시키지 않는다. 그런데 많은 일하는 사람 중 가끔 나를 알아보고 큰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네는 직원이 있었다. 그런 "알아봄"에 익숙지 않은 나는 오히려 잊을만한 기간을 두고 식사를 하러 가곤 했다. 그런데도 알아보는 것이 아닌가?
쑥스런 맘으로 인사를 주고받고는 최대한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지난번 한국을 두 달 동안 다녀오는 동안 자연스럽게 서너 달 그 집에 식사를 하러 가지 않았다. 대충 직원이동이 있기도 하니 그 사람이 있을 것이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크리스마스에 혼자 들어갔다. 그 사람의 얼굴이 내 코앞까지 다가와 커지며 인사를 하는데 나를 본 그의 얼굴에 "안도감"이 돌았다.
마치 그는 내가 나타나지 않자 "혹시나" 아프거나 죽었을까 하는 염려를 한 듯한 표정과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목소리였다. 아! 세상에는 그냥 만나서 좋고 웃고 헤어지는 사람 외에 진심으로 걱정을 해주는 사람도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역시 그도 나의 수호천사이다. 새해가 되고 다음 방문 때는 작은 선물을 준비해 가져다주며 감사함을 전했다.
수호천사가 가지고 있는 몇몇 특성이 있다. 수호천사는 내가 원할 때가 아니라 나에게 그들이 필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할 때 나타난다. 수호천사는 내가 바라는 아는 얼굴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모르는 다양한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또한 수호천사는 늘 우리 주변에 있지만 나와의 컨택은 길게 늘어진 긴 시간 동안이 아니고 대부분 아주 짧은 순간에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또한 세상 어느 곳에나 다 따라다녀준다. 그래서 나는 혼자 세상을 돌아다녀도 두렵지가 않은 것이다.
미국은 차를 타고 다녀도 길가에 걸어 다니는 사람이 없다. 우리 동네는 자동차가 별로 없는 날도 많다. 어느 날 전동휠체어가 길을 건너다 중간쯤에 서 버린 것이다. 몇몇 자동차들이 신호대기에 서있었지만 길에는 나와 도우미견 둘밖에 없었다. 휠체어를 껐다 켰고 또 껐다 켜도 움직일 생각도 안 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수호천사 두 사람이 다가와서 한 명은 지나가는 차량을 막아섰고 다른 이는 휠체어를 밀어 안전한 곳으로 밀어주곤 총총히 사라졌다.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아르헨티나에서 활보할 때 멀리서 볼 때는 그리 가파르게 보이지 않던 길이 직접 가보니 도저히 내 팔의 힘으로 휠체어를 밀고 올라갈 수 없었다. 내려갈 수도 올라갈 수도 없이 바퀴를 잡고 어떻게 빠져나가나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 갑자기 뒤에서 미는 힘이 느껴졌다. 건강한 사나이가 밀어 올려 주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디에서 나타난 사람일까 두리번대며 눈으로 그의 뒤를 쫓았다. 지나가던 차에서 내려 날 도와주곤 급히 가던 길을 재촉하는 것이었다.
마음이 외로운 사람들이 "혼자"라는 생각을 하기보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를 늘 지켜보고 있는 수호천사들의 존재를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있어도 늘 외로운 것이 인간이라고 하지 않는가? 인기가 많은 사람들이 더욱 외로워하고 또 사랑할 때 더 외로운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외로운 존재라고 한다. 늘 나와 함께 하며 필요할 때 "짠!"하고 나타나는 수호천사의 존재를 통해 외로운 마음들이 많은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주님께서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어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시편 9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