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른 새해 각오

말 수를 줄이고 또 줄여야 하는 이유

by 교주

지난 10주 동안 한국에서 지내고 인생의 큰 깨달음을 얻고 돌아왔다.


내가 박사과정을 마치고 나름대로 3가지 근거를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보다는 미국에 남기로 했다. 국제적 차원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서로 배워야 할 점이 있으니 한국의 교육을 이곳에 가르치고 한국에서는 미국교육의 현장정보를 나누고 싶었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한국교포들이 많이 모여사는 이곳 Los Angeles에 한인 장애인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곳 한인 장애인과 가족들은 영어부족으로 미국사회에서 고립되고 한인사회에서는 장애로 인한 차별에 놓이게 된다.


개인적 차원은 한국어로 싸우는 것보다는 영어가 모국어인 박사들과 경쟁을 해보는 것이 큰 도전일 것 같아 생각만으로도 열정이 끓어올랐다. 나는 이 결정으로 아직까지 도전을 받고 있다. 박사과정에서 책으로 이론은 배웠지만 미국 교육의 실제 현장을 보는 일이 거의 없었다. 연구차 교육현장을 간다 해도 수박 겉핥기 수준이었다. 제2외국어인 영어로 가르치는 것보다도 교육현장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없는 것이 더 큰 도전이었다.


나는 교사를 천직이라 생각하며 "교육은 내가 아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필요한 내용을 가르치는 것이다"라고 굳게 믿는다. 특히 그들이 가르칠 10년 후 20년 후까지 필요한 내용을 준비해야 한다는 각오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매주 강의노트와 슬라이드를 새로 만드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역시 너무 무리한 도전이었을까? 나는 학생들로부터 한 번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가르치는 법도 배우러 다녔고 교육현장도 수없이 다녔다. 나에게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어떤 교수는 20년 전 학부 때 배웠던 같은 슬라이드를 석사, 박사과정에서 스펠링 틀린 것까지 똑같이 사용한다는 학생들의 험담에도 "최고의 교수상"에 빛나는 사람이었다. 또 어떤 교수는 강의에 남의 연구결과물을 복사해 나누어주고 읽은 내용을 서로 토론하라고만 한다. 가르치는 내용이 없다고 학생들이 불만을 했고 하물며 평생 교수임용 계약 전에 퇴출되었다. 그도 역시 나보다는 학생들로부터 좋은 평가점수를 얻어 그 비결이 무엇이지 궁금했다.


우리 대학에는 교수임용 평생계약을 위해서는 학과전체 교수들의 평가점수의 평균보다 좋아야 된다는 불문율이 있다. 가끔 나같이 예외도 있다. 연구를 잘해서 용서를 받은 케이스이다. 평생계약 후 쫓겨날 일이 없다는 여유가 생기자 교수회의 때 내가 평가점수의 평균을 낮추어 너희들이 좋은 교수가 되니 감사하라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낮은 학생평가 점수가 나를 늘 겸손하게 살게 한다고 믿었다. 나는 학생들의 낮은 평가에 대한 답을 깨닫지 못한 채 정년을 했다.


강의내용이 어렵고 깐깐하게 숙제검사도 하고 어려운 시험까지 본다는 소문을 듣기는 했다. 몇몇 교수는 나에게 대학원 학생이어도 대학 수준으로 쉽게 가르치라고 조언을 하기도 했다. 나는 평가점수보다는 내가 지켜야 할 교육 수준을 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의 제출물은 정성스럽게 적은 피드백과 함께 다음 시간이면 되돌려 주었다. 한 박사과정 학생은 이렇게 빠르게 자세한 피드백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왜? 교사는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나?


늘 강의준비에 최선을 쏟아붓던 나는 초창기에는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교육 내용을 최대한 쉽게 설명하겠다고 목표를 정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학생들은 내 강의를 듣는 순간에는 쉬워서 밖에 나가면 모든 게 다 이루어질 것 같은데 교육현장에 나가면 안 되더라고 했다. 그러며 나를 학원의 일타강사 같다고 평을 했었다. 칭찬인 줄 알고 쉽게 설명하는 영어가 부족해도 내 강의를 이해하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며 스스로의 감동과 뿌듯함이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강의가 이해로 끝나서는 안되고 밖으로 나가 실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잠겼다. 내가 가르쳐 준 것을 교단에서 실천하는 사람의 수를 세어 보자 쉬운 강의를 알아듣고 이해한다던 사람의 숫자보다 훨씬 적었다. 열 손가락이면 실천한다는 사람의 수를 세는데 충분했다. 실천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니 강의 중에 실습시간과 실습재료도 갖춰 직접 해보게도 하며 배운 이들의 실천까지 도우려 하는 자신을 기특해했다.


학교에서 아무리 강의를 이해하기 쉽게 하고 실습시간을 활성화했음에도 배우는 것은 옆으로 비켜두고 딴짓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교사로의 적성이 맞지 않아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상담은 일주일에 두 시간만 하면 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많은 시간을 내어 개인상담도 꼼꼼히 챙겼다. 가르치는 일에 많은 시간과 열정을 불사르는 자신을 보며 스스로를 소심하게나마 사표의 반열에 올려보기도 했었다. 최선을 다하는 스스로를 보며 자칭 좋은 교사라고 생각하면서 많은 시간을 지냈다.


이번 한국방문에서 대 여섯 번의 강의를 했다. 강의를 통해 학습자의 이해나 감동이나 실천을 넘어서 각자의 삶에 과감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스스로의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것은 결코 가르치는 자의 수려한 언어로 전달하는 일방적 강의가 아니라 듣는 사람에게 쉬운 한마디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다. 나는 말 수를 아주 아주 현저히 줄여야 한다.


결국 40년이 지나서야 소위 말하는 학생주도학습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깨달았다. 나는 남의 강의를 들을 때도 이해 수준에서 끝나지 않고 내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2026년에는 말 수를 줄이는 실천을 하며 "열심히 살자"라는 각오를 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며 남의 글도 많이 읽다 보니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이 왔고 나의 삶을 변화시키고 싶어졌다.


예수님도 부처님도 그래서 "알아듣는" 귀가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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