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연습

콘서트를 계획하며...

by 교주

대학을 갓 졸업하고 교사로 있던 재활원은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고 복합적 서비스를 장애청소년에게 제공하는 곳이었다. 학교 외에 병원, 직업훈련원, 기숙사까지 갖추고 있었고 행정을 위해 사회복지과도 과장아래 여러 명의 복지사가 있었다. 내가 맡은 학생은 기숙사에 살고 있으며 학교를 다녔고 병원의 스케줄에 따라 수술을 받고 병동에 입원을 하기도 했다. 여러 부서의 서비스를 중재하기 위해 복지과를 중심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각 부서가 함께 모여 케이스 콘퍼런스를 했다.


나는 다른 누구보다도 열심히 콘퍼런스에 참여를 했다. 내 학생이 머무는 기숙사생활이나 병실생활에 대해 들으며 수업 중에 어떤 배려를 해야 하는지를 터득했다. 그 중심이 되는 사회복지과는 거의 매일 들리다시피 하다 보니 그쪽 직원들과 가족같이 친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사회복지과에서 과장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새로 온 지 얼마 안 되는 키가 크고 시원하게 생긴 복지사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어! 월광이네."


월광? 뭐? 그는 방에 흐르고 있던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말하는 것이었다. 평소에 음주가무를 죄악시하던 나였기에 음악이 들리지도 않았지만 귀를 기울였다 해도 그 음악이 월광인지 몰랐다. 너무 창피했다. 그 순간 남몰래 느꼈던 창피함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라디오에서 나오고 있던 월광 피아노곡을 내 손으로 치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하지만 각오를 즉각 실행으로 옮기기에는 삶이 녹녹지 않았다. 유학을 준비하고 미국에서 영어와의 전쟁을 버텨내기에도 허덕이던 중에 월광은 머릿속 깊은 어딘가의 장기기억 속으로 묻혀버렸다.


수십 년이 지나고 중년이 되어 삶이 안정을 찾기 시작될 때 우연히 한인 신문에 "기초가 없는 분에게도 피아노 연주법을 가르칩니다"라고 한 선전문구를 보았다. 전화를 했다. 피아노를 만져본 적도 남들이 말하는 바이엘이나 체르니는커녕 도레미도 모르는데 가르쳐 주실 수 있는지 물었다. 전화 속 강사는 자신감 있게 오라고 했다. 처음 대면을 했을 때 강사는 나에게 피아노를 배우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월광"을 치려고요.


말댓구를 할 필요도 못 느꼈는지 강사는 아무 대답도 안 했다. 각 장조별 1도, 2도, 3도 화음을 건반 위에서 가리키며 시범을 보이고는 각각을 열 번씩 연습해 오라고 했다. 손에 쥐어 준 종이에는 각 코드옆에 열개의 동그라미가 있었다. 한번 칠 때마다 하나의 동그라미에 엑스표를 하며 열개를 다 채워오라는 것이었다. 다음 주 숙제검사를 하려던 강사는 소소라 쳤다. 동그라미 하나에 열개씩의 그은 작대기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어 각 코드를 100번씩 연습했던 것이다.


그날로 강사는 내가 월광을 쳐낼 수 있는 제자로 생각한 듯하다. 3년이 흐른 후 나는 월광 2악장 원곡을 혼자 칠 수 있었다. 콩나물을 제대로 읽지 못하던 나는 악보를 통째로 외워버렸다. 그다음은 “비창”에 도전해 그것도 다 외워서 쳤다. 건반의 "도"도 못 찾던 사람이 3년 만에 월광과 비창을 치니 집념의 제자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문제는 외운 것만 배운 대로 친다는 점이었다. 조금도 스스로 변형을 해서 칠 수 없는 앵무새 반주자가 된 것이다.


강사가 떠나고 나서 나는 배운 것 외에는 칠 수 없었다. 그래도 또 다른 도전곡이 떠 올랐다. 조지 윈스턴의 "가을"이다. 뭔가 외로움이 뚝뚝 흐르는듯한 피아노 선율이 마음을 끌었다. 한 번은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일찍 도착한 나는 파티장 한쪽에 놓여있는 피아노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아! 가을" 귀에 익숙한 프로 피아니스트의 세련됨은 없지만 둔탁한 아마추어의 피아노 소리가 새로웠다. 나는 다가가서 "멋있다"라고 했다. 피아노를 치던 일본남자의 답을 듣자 나는 그곳을 나와버렸다.


"오! 가을! 멋있다"

"나는 결혼한 사람이야"


그래서 "가을"은 나에게 다음 정복의 목표가 되었다. 일단 윈스턴의 가을 악보를 한국에서 공수를 해 왔다. 큼직 큼직하게 그려진 콩나물이 혼자서 도전해 볼만했다. 매일 한 마디씩 혼자 치기 시작했다. 비슷한 음들이 나의 피아노를 통해서도 나온다는 것이 신기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도저히 혼자는 음계를 읽는 것조차 힘들었다. 나는 피아노 강사를 찾았고 한 남자가 우리 집으로 오기로 했다. 오자마자 나는 가을을 펼쳐놓고 이것을 치게 도와달라고 했다.


그는 나지막이 말했다. "이 나이에... 그 수준으로... 이 곡을 친다는 것은 불가능입니다!" 그는 떠났고 나는 잡지 않았다. 그 후 피아노 뚜껑을 덮은 지 10년이 넘게 지났다. 처음 배웠던 노트를 펴보며 다시 처음부터 하겠다는 생각을 다졌다. 이제는 조금만 피아노 앞에 앉아 있어도 허리가 아프고 손가락에 쥐가 난다. 피아노 건반의 손가락은 수전증인지 덜덜 떤다. 하지만 열심히 살기로 결심한 2026년 새해에는 천천히 "도"부터 100번씩 연습할 것이다. 지난주부터 시작했고 10년 뒤에는 작은 콘서트를 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을 초대할 거다.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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