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생명을 구하다.

아이는 부모를 본 대로 따라 한다.

by 교주

“드르륵”

아침이 되면 정확한 시간에 여지없이 창문이 열렸다.


찬 겨울바람이 방으로 몰려 들어오고 아직 덜 깬 의식으로나마 이불속으로 몸을 숨기며 바람을 피하려 했다. 곧이어 이불을 빼앗긴 나면 나는 요 밑으로 몸을 숨겼고 요마저 빼앗기고 나면 베개를 끌어안고 좀 더 자고 싶은 마음에 안타까웠다. 이불과 요를 모두 빼앗은 엄마는 따뜻한 방바닥에서 아직도 몸을 떼지 못하고 누워있는 나에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평소 냉정한 엄마의 모습에 비추어 볼 때 춥다는 엄살을 조금도 배려치 않고 아침마다 이불과 요를 사정없이 빼앗는 것은 엄마의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지는 잠 깨우기 방법이었다.


그 뒤엔 냉정한 이미지와는 너무도 대조적으로 부드럽고 고운 엄마의 대화소리가 뒤따르곤 했다. 우리 엄마인가 놀랄 정도로 너무도 다른 감정을 실은 목소리로 창가에 놓인 화분들에게 아침인사를 건네시는 소리인 것이다. “어쩜 이렇게 고우신가?...”


아침마다 일어나는 일이지만 평소에는 들을 수 없는 또 다른 엄마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정신을 바싹 들게 했다. 다행히 아직 빼앗기지 않은 유일한 나의 바람막이인 베개를 끌어안은 채 엄마가 꽃들과 나누는 대화에 정신이 팔리곤 했었다. 매일 보는 꽃이지만 엄마가 대화를 하고 있는 꽃은 엄마가 말하는 것에 따라 더 고와 보이기도 하고 더 건강해 보이기도 했다. 어제보다 불쑥 더 자란 꽃은 장해 보였고 물이 곧 뿜어 나올 듯하게 탱탱한 모습으로 함빡 피인 꽃은 내 눈에도 행복해 보였다.


한참 꽃과 나누는 엄마의 대화를 통해 이렇게 저렇게 달리보이는 꽃만큼이나 내가 평소에 어려워하며 결코 가까이 가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은 큰 놀라움이었다. 항상 바쁘고 지친 엄마가 꽃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은 왠지 주변에서 느껴야 했던 나의 긴장감까지도 모두 풀어내는 여유로움으로 번졌다. 하지만 엄마에게서 냉정함을 유전받은 나는 꽃과 자연과 나누는 대화까지는 전수받지 못해 주변에 있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늘 관심 있는 뭔가에 몰두하며 살던 나는 자연과는 멀어도 너무 멀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로 일하던 재활원은 전체가 잘 정돈되어 있었고 잔디밭과 정성껏 가꾼 나무들이 멋있게 각자 뽐내고 있었다. 혹시라도 운동장에 떨어진 휴지나 간식포장등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면 집어다 휴지통에 넣기에 급급했던 나에게 친한 선생님들은 청소부로 취직을 했느냐고 물으며 놀리곤 했다. 그냥 깨끗한 곳이 더럽혀지는 것이 싫었다.


어느 날 재활원의 전경이 바로 다 내려다 보이는 교무실에서 밖을 내다보는데 누군가가 코를 풀어 뭉친 휴지덩어리를 나뭇가지 여기저기에 걸어놓은 것이다. 나도 모르게 "누구야! 저렇게 휴지를 걸어놓은 사람이!" 하자 한 선생님이 "뭐가? 뭐가?" 하며 옆으로 다가와 내가 바라보는 쪽을 쳐다보았다. 나는 손으로 가리키며 "저기 저 나무에 휴지를..." 안 보인단다. 에혀! 팔을 더 길게 벋쳐 그의 눈길을 유도했다.


"목련?"


나는 그날 목련을 처음 만났다. 한 번쯤 들어봤던 "목련화" 노래 속의 가사를 듣고 했던 상상과는 달리 나뭇잎 하나 없는 민둥 나무에 흰 꽃이 여기저기 달려있는 것이 쓰레기로 보였으니 미안했다. 뻘쭘함때문에 목련화는 알아보게 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식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꽃다발을 받으며 곧 시들어 죽는 것이 마음 아파 싫어하는 게 좀 이상했다. 엄마로부터 식물을 대하는 상냥함을 절대로 배우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내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건축자재상을 가도 정원관리 쪽에 기웃대는 자신을 쉽게 발견하기도 했다.


얼마 전 아파트 건물 주변의 정원의 수목들을 다 뽑아버리고 새로운 선인장과 여러 식물들을 심기 시작했다. 아마 관리가 쉬운 것들로 바꾸는 모양이다. 거기에 심긴 선인장 한 포기에서 옆에 나오던 새순이 부러져 곧 죽을 것 같았다. 다음날 정원사가 보면 그냥 잘라내 쓰레기통에 버릴 것이 뻔했다. 나는 경비원에게 내가 가져가 키워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소중히 모시고 들어와 화분에 심고는 중환자실 환자 다루듯이 자주 들여다보며 건강히 살아나길 비는 내가 신기했다.


아무리 닮지 않으려고 하고 배우려 하지 않아도 엄마는 어느새 내 삶의 곳곳에서 가르치고 계셨다. 자녀들은 스스로의 정체감을 이루기 전에는 부모를 통해서 자신을 이해한다. 또한 부모가 좋게 말한 것은 한없이 좋은 것으로 눈에 비치고 나쁘게 말한 것은 가까이 하기에도 부정스러운 것처럼 자신의 생각으로 자리 잡는다. 부모의 생각과 언행은 자녀가 세상을 보는 눈을 결정하고, 일을 하는 방법도, 사람을 대하는 방법도, 세상과 대화하고 살아가는 모든 방법을 결정하게 된다.


바쁘고 여유 없이 살아가는 부모의 모습은 평소 자녀에게 항상 긴장감과 두려움을 갖게 하고 심한 경우에는 자신 때문에 부모가 힘들어하는 것 같은 생각에 죄책감까지 느끼게 한다. 자녀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부모 자신을 위해서도 스스로의 삶을 한번 돌아보고 자신이 원하는 길로 제대로 가고 있는지 경로를 재 설정하는 새 마음으로 새해를 시작하면 좋겠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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