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하는 날

나를 위한 작은 허영

by 교주

중 고등학교 때 강제로 단발머리를 해야 했던 아픈 기억 때문에 나는 단발머리 외의 다른 어떤 스타일도 다 좋다고 하며 늘 머리를 맡긴 스타일리스트가 있었다. 조금 연세가 있지만 긴 파마머리에 가는 몸매, 그리고 살짝 다 지우지 못한 그로부터 풍기는 찌든 담배냄새가 오히려 거리감을 좁히지 못하면서도 내가 원하는 머리 스타일을 설명해야 하는 수고를 덜어주는 것이 좋아 그 남자 스타일리스를 찾았다.


그가 미용실 위치를 바꿔 우리 집에서 점점 멀어졌어도 한 시간 정도의 운전도 마다치 않고 찾아다녔다. 그 이유는 단지 알아서 스타일링을 해주는 편리함만은 아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척 외향적인 것 같은 나는 새로운 사람을 찾아가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라 그냥 같은 곳을 늘 가는 것이었다. 다행히 두 달에 한 번씩 꾸준히 찾아갔더 그분은 참 열심히 머리손질을 해 주셨다.


이상하게 많은 스타일리스트들은 짧은 머리를 추천한다. 그분도 예외는 아니었고 나는 그냥 단발머리에만 강한 부정적 감정을 표현한 대신 다른 모든 나의 선호도 범위밖으로 나아가는 것을 감수했다. 덕분에 나라면 평생 선택하지 않았을 헤어스타일을 하고 몇 달을 지내기도 했고 많은 호의적인 반응을 받을 수도 있었다. 머리를 하고 미용실을 나올 때부터 이미 최상이던 기분은 마주친 사람들의 칭찬에 한동안 어깨가 으쓱했다.


어느 땐 파란빛이 도는 머리가 되기도 했고 어느 땐 버건디 (burgundy)의 붉은빛이 돌기도 했다. 어느 땐 하이라이트를 여기저기 넣어 힙해 보이기도 했고 어느 땐 정말 짧게 커트로 발랄한 젊음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내가 원한 스타일이 아니라 스타일리스트가 결정했기에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과격한 머리스타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도 했다. 그렇게 다니던 중 희끗희끗 눈에 띄던 흰머리가 점점 많아지자 코딩으로 덮어지지 않는다며 염색약을 쓰겠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네"했다.


그렇게 매번 생전처음 해본 스타일로 즐기던 때가 팬데믹으로 중지되었다. 팬데믹으로 집에 갇힌 동안에는 혼자 집에서 집에서 염색을 해야 했다. 생전 스스로의 머리를 만져본 적이 없는 나는 난감했지만 친구의 도움으로 처음 집에서 하는 방법을 배우고 혼자 해봤다. 혼자 집에서 하는 염색이 그렇게 편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냥 내가 원하는 부위만 원하는 편리한 때 할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흰머리가 감춰지고 깔끔해진 느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미용실에서 나올 때의 몸이 우쭐해지는 기분은 없었다.


팬데믹이 끝나고도 한참 지나서 드디어 아는 분의 소개로 염색을 할 곳을 찾았다. 여전처럼 스타일링까지 맡기지는 않지만 염색을 하러 간다. 문제는 두 달에 한 번씩 찾아가던 것이 어느새 한 달에 한 번씩 가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매번 같은 색으로 가끔 머리끝만 정리하기 때문에 길이의 차이도 느낄 수 없는 정도이지만 역시 스타일리스트의 전문적 손길을 받은 후의 기분은 집에서 혼자 할 때완 비교가 되지 않게 좋다. 뭔가 장원을 해 상을 받은 느낌이다.


큰 변화는 없을 듯하다. 머리를 막 하고 나온 순간에는 깔끔하고 단정해진 기분이 다시는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다시는 미용실을 찾을 필요도 없을 것은 믿음까지 불끈 솟아오르는데 이 믿음의 실제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눈을 의심할 수 없이 완벽하게 가려진 흰머리로 되찾은 젊음이 한 달 만에 꺾일 것이란 생각이 오히려 무리인 듯싶다.


조금씩 스며드는 작은 변화는 어느 순간 참을 수 없는 큰 변화로 성큼 다가온다는 점이 이상하다. 이제는 3주도 되지 않아 미용실을 찾아야 된다. 2주가 막 지나며 흰머린가 하고 거울에 바싹 다가가 봐도 흰머리는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3주에 들어서며 뿌리가 조금 흰색으로 흔들리는 듯해도 무시할 수 있는데 그 3주는 다른 때 보다 긴가. 3주 차 일주일이 끝나는 때는 도저히 참을 수 없이 고랑마다 눈 덮인 밭으로 변한다.


아! 게을러 움직이기 싫은데. 운전을 해서 미용실까지 가는 거리의 부담이 흰머리를 견디는 부담을 누르고 있다. 부담이 적은 편이 늘 이긴다. 그리곤 4주를 맞아 버티다 보면 거리의 부담보다 나에게 아무 관심도 없을 거리의 사람들의 시선까지 담아 부담으로 느끼는 시간이 온다는 것이 신기하다. 드디어 눈밭의 부담이 감당이 안되는 오늘 나는 다시 또 젊음과 늙음의 저울추에서 젊음 쪽으로 옮기기 위해 천천히 몸을 옮긴다.



일상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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