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처럼 술을 많이 안 드시죠?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by 교주

술을 너무도 좋아하는 40이 넘은 노처녀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술에 대한 나의 편견을 깨기 위해 자신은 술은 정말 달고 삶의 즐거움이 넘칠 때 술을 마신다고 설명을 했다. 그럴듯하게 설명을 하는 그는 자주 술에 취해 행복한 얼굴로 노래를 구성지게 해댔다. 술의 대가인 그의 긍정적인 설명과 행동은 평소 사람들이 현실의 어려움을 도피하기 위해 술을 마시고 술은 주변사람을 힘들게 한다는 나의 생각과 맞부딪쳐 나에겐 인지적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내가 모르는 술의 장점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인간관계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 친구는 많은 대화를 통해 점점 자신의 진짜 속 마음을 털어놓았다. 남에게 표현하지 못하고 가슴속 깊이 꼭 꼭 숨기고 산다는 그의 마음 아픈 사연을 듣고 보니 그가 술을 마시는 진짜 이유가 술의 찬가 쪽 설명보다는 나의 편견 쪽 설명이 맞는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꽤 오래전에 많은 친구들과 자리를 한 적이 있었다. 10여 명의 여인들이 둘러앉아 남편과 자식과 자신의 일에 대한 푸념과 자랑이 이어지다 누군가가 커다란 양주병을 테이블 가운데 내놓았다. 그때 내 친구 P 씨의 손이 가장 먼저 양주병을 향해가 병목을 잡았다. 그의 유연한 움직임에 난 섬찟했다. 그의 행동은 술을 꽤 가까이 한 태도로 소위 내가 말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임을 직감했다.


오고 가는 대화를 잘 들어보니 P 씨는 가장 성공한 사람이었고 자녀들도 모두 우등생이라 거기 모인 사람 중에 P 씨는 모든 사람에게 부러움의 대상이라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아직은 꽤 젊은 나이인데 비해 서울의 가장 부유한 동네에 자가 주택을 소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랑꾼 신랑도 퇴근을 하면 바로 부인 P 씨가 돌아오는 지하철 역까지 차를 가지고 마중을 간다는 칭찬이 돌았다. 나의 직감은 빗나간 듯했다.


그러나 술을 향해 내밀던 그 손은 나의 의구심을 벗어나지 못했다. 남달리 조용한 P 씨는 대학때와는 달리 일에 대한 욕구와 경쟁심으로 눈이 이글거렸고 다른 친구들의 입을 통해 들은 아름다운 가족사를 본인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한참이 지난 후 나는 P 씨와 단 둘이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당시 대학생인 딸 이야기며 오랜만에 행복을 매일매일 날라다 준다는 남편이야기와 자신의 직장에서의 활약상을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듯이 자신의 삶에는 부족한 것이 없다며 남의 말하듯이 시작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중학교까지 우등생이던 딸아이가 고등학생 때 마음을 못 잡고 성적이 떨어지는 바람에 좋은 대학을 못 갔다고 모기소리로 말했다.


당장 다음날 나는 그 아이와 함께 만났다. 내 눈에 비치는 그는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미묘한 엄마 아빠의 감정 사이에서 가끔 터져 나오는 아빠의 과격한 언행과 그런 아빠를 무서워하면서도 무시하고 멸시하는듯한 엄마의 모습 속에서 착하디 착한 딸아이는 상처를 입은 것이었다. 집안의 평화와 위로자 역할을 감당하던 아이는 결국 부모 간의 갈등을 자신이 짊어지고 해결 못하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중 이미 현실을 떠나가고 있었다.


잘못된 결혼이라고 생각이 들었음에도 P 씨는 자신만을 바라보는 남편을 내치지 못하고 몸은 가정의 굴레를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가정을 떠난 지 오래됐고 자신이 좋아하는 직장일에 더욱더 집착했다. 부인을 사랑하던 남편은 사랑하는 부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부인이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고 자신의 일을 희생하면서라도 함께 할 시간을 찾기도 했다. 하지만 가정에서 마음이 떠난 부인을 잡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어느 땐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이해 못 하고 겉도는 부인이 야속해 부인을 난폭하게 때리기도 하고 눈물로 마음을 돌리려는 노력을 하며 여태 결혼생활을 유지해 온 것이다. 때리는 남편의 눈치를 보기만 하면서 늘 자신의 일을 향한 욕망으로 채우기에 바빴다. 책임감이 높은 그는 의무감으로 가정의 모든 일을 소홀이 하지 않았다. 그저 가정에 충실한 몸은 두고 마음은 늘 사회 속에서의 성공과 영광에 사로잡혀 있었다.


집에서는 아빠에게 늘 무기력했던 엄마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불안한 모습으로 비쳤고 가끔 P 씨는 술기운을 빌려 남편에게 자신의 불만을 토로하는 정도였다. 술기운이 있을 때만 그나마 부인이 마음속에 감추고 있는 감정표현을 들을 수 있었던 남편은 자주 P 씨에게 술을 마시도록 권유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술병을 잡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내 눈을 피하지 못한 것이었다.


평소 가해자인 아빠와 무기력한 피해자 엄마의 모습과는 달리 술을 마신 후 나타나는 아빠의 측은함과 강하게 반발하는 엄마의 분노가 아이에게 혼돈을 야기시킨 것이다. 급기야 부부의 문제는 자녀의 문제로 표현되는 것이다. 술은 우리에게 헤쳐나가기 힘든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게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문제는 오직 우리의 결단과 그 결단을 실행으로 옮기는 행동만으로 해결될 수 있다.


마음속에 있는 불만과 문제를 입 밖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자녀들이 모를 것이란 생각에 술로 잠시 잊으려 하거나 차일피일 미루며 망설이지 말고 사랑하는 자녀와 가족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신건강과 행복을 위해 과감히 문제해결 방법을 하나씩 생각해 가자.


그래도 요즘은 술보다는 가정이신 분들이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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